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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화학 기업들은 중동 전쟁 장기화로 원재료 수급에 애를 먹고 있지만 신용등급 하향 압력은 완화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전쟁 발발 후 석유화학 제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1분기 양호한 실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기존에 싸게 확보해뒀던 원재료가 소진될 때까지의 일시적 현상이다. 본격적인 신용도 평가는 중장기 원재료 수급 상황과 국내외 산업 지형 변화에 따라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2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신용평가사들은 주요 기업들에 대한 정기평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석유화학 산업을 주요 점검 대상으로 꼽아온 만큼 신용등급 변경 가능성에 시선이 모인다.
주요 석유화학 기업 중에선 신용등급에 부정적 전망이 달린 곳들이 많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 재편이 지연되고 국내외 수급 불균형이 이어지는 터라 신용등급 하락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우세했다.
미국-이란 전쟁도 악재다. 세계 나프타 물동량의 3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며 기업들이 원재료 수급에 애를 먹었다. 지난달 정부는 나프타 수출을 전면 제한했고, 일부 기업은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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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이지연)
전쟁은 만 2달을 지나 장기화하고 있는데 현 시점 석유화학 기업들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1분기 중 예상 밖 호실적을 거둔 곳들이 많은 분위기다.
한화솔루션은 케미칼 사업부문이 1분기 영업이익 341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2023년 3분기 이후 2년 반만에 흑자전환했다. 이외 기업들은 대부분 실적을 아직 발표하지 않았지만 기존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점쳐진다.
미국-이란 전쟁 발발 초기에는 나프타 가격 상승과 수급난 속에 설비 가동 중단 우려가 컸다. 그러나 석유화학 기업들은 설비 가동률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면서 기존에 확보한 나프타를 활용해 제품을 생산했다.
주요 기업들은 통상 1~2개월치 원재료 재고를 보유한다. 기존에 싸게 사둔 나프타와 가격이 급등한 석유제품 사이 마진률이 급격하게 높아졌다. 주요 기업들은 올해 2월까지 적자였지만 전쟁이 본격화한 3월에 적자 폭을 만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흐름은 이달, 나아가 2분기까지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기존 재고 물량 일부가 4월까지 활용됐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2분기 나프타 도입 물량에 대해 전쟁 이전 수입 가격과 차액 일부를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기업들의 부담이 줄어들 전망이다.
신용평가사들은 석유화학 산업에 대해 보수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조정하는 데 신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실적이 개선됐는데 등급을 내리거나 부정적 전망을 다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석유화학 업황 자체가 좋지 않다는 판단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지금도 계속 악화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1분기 일부 기업들이 흑자전환했고, 4월에도 실적 개선 흐름이 확인되는 만큼 당장 신용등급을 내리기 애매해진 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엔 석유화학 기업의 신용도에 변동이 없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하향 압력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와 기업들이 원재료 수급처를 다변화하면서 나프타 수입량과 설비 가동률도 점차 전쟁 이전 수준으로 돌아오고 있다. 마진율도 낮아지고 있어 기업들의 실적은 점점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구조적 공급과잉 상황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중동 전쟁으로 석유화학 관련 설비가 얼마나 타격을 입었느냐도 변수다. 불확실성에 따른 설비 중단이 아니라, 물리적 손상이 있었다면 앞으로 상당 기간 높은 가격에 원재료를 수입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가동률은 낮아지고, 고정비는 계속 나가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다른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나프타 기반 원가 부담, 수요 부진 속 고정비 부담이 계속되고 있어 석유화학사들이 오래 버티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업황이 좋아졌다기보다는 이번 실적 반등으로 시간을 조금 벌었다는 정도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