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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이 한국항공우주(KAI)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한화는 KAI의 지분 매집과 함께 경영 참여 계획까지 내비쳤다. 추후 KAI의 민영화가 본격화할 때를 대비해 대주주로 지위를 굳히고, 경쟁업체들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을 세운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KAI 주식을 본격적으로 매집하는 주체는 그룹 주력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다. 연말까지 5000억원을 투입해 300만주가량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그룹은 현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등을 포함해 KAI 지분 5.09%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KAI의 최대주주는 한국수출입은행(26.4%)으로, 한화그룹의 계획대로라면 올해 연말 국민연금(8.3%)에 이은 3대주주로 등극하게 된다.
KAI 주가의 변동에 따라 확보할 주식 수는 줄어들 수도 있지만, 한화그룹이 KAI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오르는 건 확실해 보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로 설명했다. 2대주주인 국민연금의 KAI 투자목적은 단순투자보다 한 단계 높은 일반투자 목적인데 경영에 적극 개입하는 건 사실상 제한적이다. 3대주주인 피델리티(Fidelity Management)는 단순투자자로만 등재돼 있다.
한화그룹은 "구체적인 경영참여 계획은 검토중"이라면서도 "의사결정에 참여할 필요가 있을 경우, 주주로서 적법한 절차와 방법에 따라 회사의 경영 목적에 부합하도록 회사 및 주주, 이해관계자들의 사정과 이익을 충분히 감안할 방침이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한화그룹이 경영에 개입할 수 있는 방안은 단순하다. 이미 지분 5% 이상을 확보한 주주로서 주주제안을 할 수 있고, 주주총회에 이사 후보를 추천해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것도 가능하다.
현재 KAI의 이사진은 사내이사 1명과 사외이사 4명, 총 5명으로 구성돼 있다. 정관에는 최소 이사수(3명)만 규정돼 있을뿐 이사 수의 상한이 없기 때문에 후보 추천을 통한 이사회 진입도 노려볼만하단 평가다. 한화그룹의 추천인사가 경영진에 합류하게 된다면 KAI의 속사정을 낱낱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
한화그룹은 애초부터 KAI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돼 왔다. 다만 최대주주가 수출입은행인만큼 공개경쟁 입찰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민영화 과정에서 다른 후보들의 참여를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화그룹이 10%에 육박하는 지분을 확보했을 땐 얘기가 달라진다. 잠재 인수후보 입장에선 '방산공룡' 한화그룹의 눈치를 살펴야하고, KAI 이사진에 한화그룹이 합류한다면 더 복잡한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결국 이번 한화그룹의 지분 매집은 민영화 시작 전부터, 다른 후보들의 참여 의지를 꺾어버리겠단 의도로 읽힌단 평가도 있다.
KAI의 민영화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이와 관련 논의는 점점 불이 붙는 모양새다.
공적자금 회수란 대의명분을 차치하고도, 수출입은행이 최대주주이지만 경영에 깊게 관여하지 않는 상황에서 KAI 경쟁력 강화에 대한 논의가 지속돼 왔다. 인사철마다 거론되는 낙하산 논란 역시 민영화에 대한 필요성이 언급되는 배경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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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과거보다 우주·항공·방산 부문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단 점에서 민영화의 시기가 점차 다가온단 평가도 있다. 불안한 국제 정세 속에서, 최근 주변국 일본이 평화헌법 개정과 함께 무기 수출을 추진하고 있단 점은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키우는 요인이다.
한화그룹은 이 부분을 절묘하게 파고들고 있다.
한화는 "중동,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분쟁 심화, 지능화 되는 전장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 주요국들은 독자적인 육·해·공·우주 통합 대형 방산기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며 "덩치를 키운 국가대표 기업이어야만 글로벌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한화그룹은 ▲불안한 국제정세로 인한 초대형 방산기업 필요성 ▲KAI와의 긴밀한 협업 관계 ▲대주주의 지위 등의 배경을 KAI 경영권 인수를 위한 포석으로 활용하고 있단 평가다.
물론 이 같은 한화그룹의 노력(?)이 자연스럽게 정부(수출입은행)의 퇴로를 열어 줄 명분이 될 수 있을진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한화그룹이 초(超)국가 방산기업으로 거듭나는 것과는 별개로, 공정거래위원회의 독과점 심사는 예상보다 까다로워질 수 있다는 평가다. 이미 공정위는 한화오션(대우조선해양) 인수와 관련해 경쟁제한 우려가 해소되지 않았다며 지난 4월, 시정조치 이행기간을 3년 연장한 바 있다. 수십년간 국가가 전략적으로 육성해 온 기업을 특정 그룹에 넘기고, 이런 과정이 해당 그룹 승계의 지렛대 역할이 될 수 있단 점에서 특혜시비가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단 지적이다.
당장 KAI의 민영화가 추진되지 않더라도, 한화그룹이 대주주로서 공개매수 등을 통해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단 전망도 있다. 든든한 대주주가 등장한다면, 수출입은행 역시 비교적 부담을 덜고 블록딜 등으로 보유 주식을 줄여나갈 수 있단 평가다.
투자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한화그룹이 공개매수를 통해 지배력을 높이고, 반대로 수출입은행은 비중을 줄이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민영화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며 "다만 그룹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정확하게 예상할 수 없고, 정책적 리스크가 크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화그룹이 자체적으로 KAI 주식 비중을 늘리든, 경쟁입찰을 통해 최대주주 지분을 사오든 비용 부담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현재 8조원가량의 현금을 보유해 인수 여력은 충분해 보이지만, 앞으로 늘어날 재부 부담이 변수다. KAI의 수주잔고는 쌓여있다. 단 내부 현금은 600억원에 불과하고 부채비율(446%)은 전년도에 비해 큰 폭으로 치솟았다. 한화그룹 차원으로 확장하면 한화솔루션 등 계열회사 자금소요가 크기 때문에 대규모 지출이 부담스러운 상황이기도 하다.
최근 국회에선 상장사를 인수할 때 대주주 지분뿐 아니라 일반주주 주식도 의무적으로 공개매수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대주주와 같은 가격에 주식을 팔 기회를 보장하겠단 취지인데 법안이 통과할 경우 한화그룹의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노조의 반발 역시 변수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한화그룹의 지분 확대와 관련해 KAI 노동조합은 7일 "경쟁사가 지분을 확보한 상태에서 경영 참여 의사를 밝히는 것은 단순한 주주 권리 행사를 넘어 핵심 의사결정 구조를 그들의 이해관계 아래에 두겠다는 것"이라며 "노조는 경쟁사의 경영 참여 시도를 결코 용납할 수 없으며, 이사회 참여 반대를 비롯해 회사 핵심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강력히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