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500조' 삼성전자은행·SK하이닉스운용이 온다
입력 2026.05.12 07:00

年 300조 반도체 머니 시장에 유입될 전망
M&A·주주환원·성과급으로도 소화 불가능
한해 국채 순발행 다 받아주고도 남을 규모
현금 홍수 걱정…"파장 어떨지 가늠 어렵다"
이미 여전채·외환시장부터 수급 변화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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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올해에만 도합 350조원 규모 신규 현금을 창출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금융권이 유동성 쇼크를 걱정하고 있다. 연말께 양사 보유 현금이 시중은행 한 곳의 총자산 규모로 불어날 텐데, 이 자금이 금융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 금융권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연말 현금성 자산 보유액을 쉽사리 추정하지 못하고 있다. 벌써 10개월여 동안 양사 실적 추정을 상향 조정하고 있지만 인공지능(AI) 기술이 업데이트될 때마다 메모리 반도체 수요처가 새로 등장하고 있다. 당장 컨센서스는 양사가 올해 각각 340조원, 250조원 수준 영업익을 남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이보다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한두 달 전까지 양사 합산 영업익을 500조원 정도로 가정하고 계산했는데, 이제 600조원을 넘어서고 있다"라며 "10조원을 투자하면 1년 만에 15조~20조원 이익이 발생하는 수준까지 왔다. 메모리가 비정상적인 속도로 현금을 찍어내는 사업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말 양사 현금성 자산 500조 육박할 가능성

    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현금 창출력은 이미 지난 1분기 실적 발표에서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3월 말 기준 보유 현금성 자산은 147조원을 넘어섰고, 같은 기간 SK하이닉스 현금성 자산은 54조원으로 불어났다. 양사가 3개월 만에 나란히 20조원 이상 현금을 쌓은 것이다. 

    법인세, 임직원 성과급, 주주환원 및 예정된 설비투자(CAPEX)를 모두 차감하더라도 올해 양사 내부에 새로 쌓일 현금성 자산 규모는 삼성전자가 200조원, SK하이닉스가 130조원 이상으로 평가된다. 기존 보유 현금을 합치면 연말에는 양사 보유 현금성 자산이 450조원에서 500조원 사이에 달할 전망이다. 

    4대 시중은행 중 하나인 우리은행의 총자산(약 470조원)에 맞먹는 규모다. 제조 대기업 두 곳이 대형은행 한 곳에 버금가는 유동성을 자체적으로 보유하게 되는 셈이다. 은행 자산이 예금과 대출로 구성된 것과 달리 양사 현금성 자산은 대부분 즉시 운용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앞으로 수년간 이 같은 현금이 해마다 추가로 쌓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융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미 4월부터 양사가 벌어온 막대한 달러화 때문에 외환시장 체질이 바뀌는 현상까지도 시장에 오르내리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1년에 은행 하나씩 세우는 속도인데 국내에 이만한 유동성을 받아줄 곳이 있느냐가 문제"라며 "이미 예금은 안 받아주기 시작했고, MMT·MMF나 1년 미만 유동성 상품도 금세 동이 날 수 있다. 정부가 1년 미만 단기국채 발행을 검토하는 것도 양사 때문 아닐까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M&A 등 재투자도 제약 커…결국 시중 풀려날 유동성

    양사 모두 올해 CAPEX를 대폭 늘리고 주주환원 확대 계획을 내놓고 있지만 현금 벌어들이는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 가능성이 높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반도체 산업 특성상 클린룸 등 인프라 확보와 인허가, 장비 리드타임을 고려하면 CAPEX를 단기간에 급격히 늘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는 자금을 일시적인 주주환원으로 소진하는 것도 중장기 재무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수합병(M&A) 역시 한계가 명확하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이미 글로벌 1, 2위 메모리 공급사인 만큼 동종 업계 내에선 인수 대상 자체가 많지 않다. 이종 반도체 산업에선 각국 기업결합 승인을 통과하기가 어려워 사실상 유의미한 M&A가 막힌 상태다. 장비·소재 기업에 대한 지분 투자나 합작법인(JV) 설립은 이어지고 있지만, 이 역시 투입 가능한 자금에 비하면 규모가 제한적이다. 

    외국계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M&A에 따른 통합작업(PMI)이나 시너지 창출에도 막대한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덮어놓고 기업 쇼핑을 하라는 것도 말이 안 된다"라며 "과거 애플이 그랬듯 2~3년치 CAPEX 커버리지 등을 제외한 적정 순현금 규모를 설정해놓고 나머지 자금을 직접 운용하면서 중장기 주주환원책을 꾸리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한다"라고 말했다. 

    금융권 실제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두 회사가 이 자금을 본격적으로 시장에서 운용하기 시작할 경우 어디까지, 어떻게 파급력을 보일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단기 국채 발행 확대 등 다양한 흡수 방안이 검토되고 있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올해를 시작으로 양사 순현금 증가량이 기획재정부의 국고채 총 발행 한도(약 225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양사 보유 유동성은 여러 경로로 시장에 유입될 전망이다. 규모도 해마다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전례 없는 시장 환경 속에서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고민도 커지고 있다. 

    대형 증권사 한 임원은 "작년 상법 개정으로 그룹 내 계열사끼리 현금을 같이 쓰는 경로도 사실상 막혔다. 결국 밖으로 흘러넘치게 된다는 얘기"라며 "어떤 형태로든 조달 환경에 영향을 미칠 텐데 규모나 방식에서 어떻게 굴러갈지 예측이 잘 안 된다"라고 전했다.  

    여전채·외환시장 등은 이미 '반도체 머니' 효과 시작

    벌써부터 양사 막대한 현금이 자본시장 일부를 흔들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최근 여신전문금융회사채(여전채)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AA+급 우량채를 중심으로 물량을 대거 흡수하기 시작했다. 당장은 제한적인 운용 조직을 바탕으로 회사채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은 여전채를 선별적으로 매입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벌써 채권시장 중개인들이 발행사와 삼성전자 사이에서 금리 조건을 조율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라며 "삼성전자가 사실상 경쟁을 유도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데, 반대로 장래를 위해 수익성이 낮더라도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한 '삼성 영업'에 적극적인 증권사도 있다"라고 전했다.  

    외환시장에서도 변화 조짐이 감지된다. 은행권 외환(FX)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보수적으로는 1400원대 초중반을 예상하는 시각이 여전히 우세하나, 양사 수출 대금이 외환 수급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확산하면서다. 

    실제로 이달 들어 외화 보유 한도 등의 제약으로 환전이 지연되는 사례도 전해진다. 통상 해외 매출이 발생하면 이를 즉시 원화로 환전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양사가 벌어들인 달러가 누적되면서 외환 수급 구조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향후 달러 비중을 줄이기 위한 매도 물량 역시 시차를 두고 시장에 유입될 가능성도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