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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대통령실발 '포용금융' 과제를 두고 은행권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은행이 가장 먼저 '중금리 대출' 카드를 꺼내 들며 정면 돌파에 나섰지만, 나머지 은행들은 대응 카드를 찾지 못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금융권의 포용금융 역할을 지적하자 KB국민은행은 곧바로 민간중금리대출 취급 현황과 대규모 공급 계획을 발표하며 화답했다.
KB국민은행은 올해 총 1조5300억 원 규모의 민간중금리대출을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특히 올해 1분기에만 3068억 원(2만1288건)을 신규 공급하며 4대 시중은행 전체 공급량의 절반 수준인 약 48%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금융권에서는 이를 두고 연말 양종희 KB금융 회장의 임기 만료 등 굵직한 지배구조 이슈를 앞두고 나온 정무적 감각이 돋보이는 대응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의 정책 기조에 가장 먼저 발을 맞춤으로써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이미지를 선점하려 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국민은행의 발 빠른 발표 이후 다른 시중은행들은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국민은행이 이미 선수를 친 상황에서 뒤늦게 자료를 내놓는 것이 자칫 구색 맞추기로 보일 수 있어서다. 또한 기존 취급분을 강조하는 것 또한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번 메시지에 대해 특정 과제를 지시하기보다는 금융권에 '화두'를 던진 차원이라는 취지로 설명하고 있다. 다만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대응 방안을 내놔야 하는 만큼 고심이 깊어지는 분위기다. 아직 구체적인 기준이나 목표가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은행들 역시 어떤 방식으로 포용금융 기조에 부응해야 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포용금융의 범위를 어디까지 봐야 하는지를 두고도 업계의 해석은 엇갈린다. 단순히 민간 중금리대출 확대를 의미하는 것인지, 정책서민금융이나 자체 신용대출 공급 중 어떤 것을 포함해야 하는지도 불분명하다는 지적이다. 일부 은행들은 제2금융권 차주를 은행권으로 유입시키는 대환대출 상품 등 기존에 운영해온 서민금융 프로그램 전반을 포용금융 사례로 내세우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대통령실의 이번 화두는 결국 1금융권이 신용평가 시스템을 정교화해 기존에 외면받던 차주들을 더 많이 포용해달라는 것"이라며 "은행들이 리스크를 어느 정도 감내하라는 메시지로 읽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는 아직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중금리 대출의 '역할 분담'을 놓고도 업계의 해석은 엇갈린다. 앞서 김용범 정책실장은 당초 중금리 대출 시장의 '메기' 역할을 자처하며 출범한 인터넷 전문은행조차 최근 수익성과 건전성 관리를 이유로 우량 고객만 골라 받는 '체리피커'라고 지적했다. 은행권은 향후 중저신용자에 대한 화살이 시중은행으로 향하게 될지, 강도가 어떻게 될지도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원래 중금리대출의 주 취급 기관은 인터넷은행이나 2금융권이었는데, 이제 와서 시중은행에 그 역할을 다 가져가라고 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며 "당국이 인터넷 은행에 더 강력한 의무를 부여할지, 아니면 시중은행에 별도의 할당량을 줄지 시그널이 없는 상태에서 섣불리 나설 수 없다"고 밝혔다.
시중은행들은 중금리 대출 실적의 지속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중금리 상품은 은행별로 배정된 한도나 시기에 따라 취급액 변동이 크기 때문에, 특정 분기의 수치만으로 우위를 논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은행권 또 다른 관계자는 "중저신용자 대출을 확대할 경우 연체율 상승은 물론 위험가중자산(RWA) 관리에도 직접적인 타격이 온다"라며 "명확한 가이드라인 없이 목표치를 제시했다가 나중에 기준이 바뀌면 은행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숙제가 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1금융권이 해당 대출을 확대하란 시그널 자체는 이미 명확하다고 보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과거 저축은행의 주 타깃이었던 우량 중저신용자들이 대거 은행권으로 흡수되면서 저축은행의 신용대출 영업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결국 신용평가 시스템(CSS)을 정교화해 기존에 외면받던 차주들을 1금융권에서 더 넓게 포용하고, 리스크를 직접 감내(리스크 테이킹)하라는 것이 당국의 본질적인 메시지 아니겠느냐"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