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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영업익이 2분기부터는 80조원, 3분기부터는 아마 100조원 구간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1분기에도 결국 분석가들 추정이 실제 성적표를 따라잡지 못했었다. 현실적으로 3000조원도 싸다는 말이 많다. '메모리는 시클리컬(Cyclical), 천수답 비즈니스'라는 시장의 오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할텐데, 당분간은 매 분기 실적으로 증명하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한 달여 전 외국계 기관투자가가 삼성전자 1분기 잠정 실적과 주가 추이를 두고 내린 진단이다. 삼성전자가 1분기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서만 55조원 규모 기록적인 영업익을 남겼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기관은 경기 순환형 주식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데 조심스러워했다. 벌 때는 화끈하게 벌지만, 업황이 꺾이면 속절없이 추락하는 메모리 사업의 과거 모습이 여전히 주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시클리컬, 즉 경기민감주 오명을 벗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 예상보다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업 가치 평가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논의는 작년 연말부터 담당 애널리스트들 사이 최대 화두였다. 메모리 현물가격이 급등하는 과정에서 구속력 있는 장기공급계약(LTA)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일부 고객사들은 이미 반년 전부터 물량 선점을 위해 선결제나 설비투자(CAPEX) 분담을 제안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 6개월 양사 주가가 크게 오르기는 했다. 그러나 주가가 실적이 오르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갈수록 괴리가 커진다는 지적이 늘었다. 이 때문에 최근 양사에 대한 분석 보고서 상당수는 '저평가'라는 내용이 주로 담기게 됐다. 양사가 대만 TSMC 수익을 2배 이상으로 따돌리게 됐지만 몸값은 각각 반토막 또는 3분의 1 수준에 머무르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급반전한 건 이달 들어서부터다. 메모리가 인공지능(AI) 시대 핵심 인프라로 조명되면서 가치 평가 기준 역시 종전 시클리컬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분위기가 부상하고 있다.
주요 외신들은 메모리 산업이 기존의 사이클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분석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낸드 사업만 영위하는 샌디스크 역시 최근 실적 발표회에서 "사이클 탈피"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투자 환경의 변화도 맞물리고 있다. 미국 온라인 증권사 인터랙티브브로커스(IBKR)가 삼성증권을 통해 현지 개인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시장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면서다. 접근성이 개선되면서 실제 1, 2등 메모리 기업으로의 수급 물꼬를 텄다는 분석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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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실제로 지난 7거래일 동안 삼성전자 주가는 약 20% 이상 상승하며 사상 처음으로 27만원 선을 돌파했다. 8일 들어 1% 안팎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주가는 26만9000원 선을 지키고 있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 주가는 28% 이상 상승했다. 8일 장중에는 1% 이상 상승하며 사상 최고가(168만원)을 경신했다. 양사 시가총액도 각각 1조달러(원화 약 1500조원), 1000조원을 돌파하며 마찬가지로 신기원을 열었다.
재평가가 본격화하면서 싱숭생숭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정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빅테크 수준의 밸류에이션을 적용받기 시작한다면 국내 증시가 어떻게 바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3000조원, SK하이닉스가 2000조원 수준의 몸값을 인정받게 된다면 코스피가 1만을 넘어서게 될 것"이라며 "메모리 밸류가 바뀔 필요성에 대해서 지적은 늘상 해왔지만 막상 변화가 예상보다 빨리 닥쳐올 것 같으니 당혹스러운 분위기도 있다"라고 전했다.
산술적으로 양사 시총 합계가 5000조원을 넘어서면, 코스피 지수는 1만포인트를 돌파하게 된다.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치이지만, 양사가 올해 각각 엔비디아, 사우디아람코와 함께 글로벌 영업이익 1~4위권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현재의 괴리를 설명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