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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경영 참여를 공식화하는 동시에 인수의 명분도 대외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아직 KAI 민영화 계획이 없는 한국수출입은행을 매각 테이블로 이끌려는 전략이란 평가가 나오는데 원하는 결과를 얻을지는 미지수다.
수출입은행은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지금 KAI 매각에 나섰다가는 재벌 그룹에 끌려 다녔다거나 특혜를 줬다는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한화가 고지를 점한 상황에선 경쟁자들이 부담을 느낄 것이고 이는 매각가에도 악영향을 미쳐 매각의 실익이 줄어든다. 한화의 선제 행보가 향후 매각 작업의 난이도만 높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4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AI 주식 0.1%를 추가 취득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확보한 4.99%에 더해 지분율은 5.09%가 됐다. 아울러 연말까지 5000억원을 투자해 지분율을 8%대로 늘리기로 했다. KAI 지분 보유 목적은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바꿨다.
한화그룹은 해외 주요국들이 육·해·공·우주 통합 대형 방산기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며, 한국도 우주항공·방산 분야의 결합을 통한 '국가 대표기업' 설립이 필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화그룹과 KAI의 결합을 국가적 과제로 부각시키며 지분 인수의 명분을 쌓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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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KAI 매각이 당장이라도 시작될 듯한 분위기다. M&A 자문사들도 대형 자문으로 이어질까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정작 수출입은행은 잠잠하다. 매각 준비는 물론 검토 작업도 진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수출입은행 측은 "현재 KAI 지분 매각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방위사업법에 따라 방산기업을 매각할 때는 산업통상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그에 앞서서는 방위사업청장과 협의도 거쳐야 한다. 수출입은행이 중요 자산을 처분하려면 재정경재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국무총리실과도 조율해야 한다. KAI 매각 시 거쳐야 할 곳이 많은데, 현재 이들 부처의 움직임은 전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과 매도자간 사전 교감이 이뤄진 것도 아니다. 국책은행이 지분을 매각할 생각이 있다는 점을 파악하고 있었다면 굳이 소수지분을 인수해가며 시장을 떠들썩하게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M&A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보니 조급성을 드러내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수출입은행이 KAI를 판다면 공개 입찰에 참여하면 되니 굳이 시장을 시끄럽게 하면서 소수지분을 살 이유가 없다"며 "역설적으로 KAI를 매각할 기미가 없으니 소수지분이라도 사서 입지를 강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출입은행은 2016~2017년 산업은행에서 KAI 지분을 넘겨 받아 보유하고 있다. 이 지분의 장부가치는 1조1366억원인데, 시장 가치는 4조원을 훌쩍 넘는다. 매각 시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얹어지면 상당한 자본확충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은행 입장에서도 KAI 매각을 검토하기에 좋은 시기일 수 있는데 한화그룹 변수를 맞닥뜨린 것이다.
한화그룹은 시장이나 당국과 교감하기보다는 철저히 자사의 입장만 반영하는 행보로 여러 차례 구설에 오른 바 있다. 이번 KAI 투자 역시 매도자의 매각 의사보다는 자사의 인수 필요성에 주목했다. 수출입은행이 KAI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아서 민감도가 약할 뿐 최대주주와 주요주주 간의 경영권 분쟁 상황으로 볼 여지가 있다. KAI 노조는 "경쟁사의 경영 참여 시도를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입은행이 KAI 매각에 나서면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자체 판단이 아니라 한화그룹의 요구에 응한 것으로 비칠 여지가 있다. 민간 기업의 판짜기에 정부의 대리인이 끌려다닌다는 비판이 정치권에서 불거질 수 있다.
한화그룹이 지분율과 화제성을 선점하며 경쟁사들은 KAI에 눈독을 들이기 부담스러워졌다. 경영권 인수 시 지분율 50%+1주까지 공개매수하도록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는 것도 변수다. 이미 굵직한 지분을 들고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출발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일부 경쟁사들은 KAI 매각이 시작돼도 자금 압박 때문에 참여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인수 경쟁이 약해지면 한화그룹은 계획대로 적당한 가격에 KAI 인수를 노릴 수 있다. 반대로 수출입은행이 손에 쥘 금액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한화그룹이 주요 주주로 있는 상황에선 KAI 매각 카드를 꺼내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KAI 매각이 현실화하더라도 꼭 한화그룹이어야 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한화그룹은 마스가 프로젝트에 기여하고 현 정부와 관계도 나쁘지 않다. 그럼에도 나라 입장에선 한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이 달가울 리 없다. 한화그룹이 원매자가 마땅치 않던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을 인수할 때도 특혜 지적이 있었다. 정상기업인 KAI는 그 강도가 더 셀 수밖에 없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방위사업은 복수의 기업이 있어야 정부 입찰을 진행하는데 한화그룹이 KAI를 가져가면 정부의 가격 협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한화그룹에 방위산업 전반이 집중되는 것은 정부로서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