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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정책성 자금이 주식연계채권(메자닌)으로 몰리면서 메자닌 시장이 빠르게 발행사 우위로 재편되고 있다. 초저금리 메자닌 발행이 빠르게 확산하는 가운데 증권사들이 딜 확보 경쟁에 나서며 발행사 친화적 조건을 먼저 제시하는 이른바 '덤핑 발행'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들어 초저금리 메자닌 발행은 빠르게 늘고 있다. 7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이달 7일까지 발행된 메자닌(CB·EB·BW) 164건 가운데 만기보장수익률이 0~2% 수준인 사례는 66건으로 전체의 40%를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26%) 대비 크게 늘어난 수준이다. 이 중 만기보장수익률이 0%인 사례도 4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2건)의 두 배를 웃돌았다.
업계에서는 과거 일부 우량 발행사에 국한됐던 초저금리 메자닌 구조가 시장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메자닌 시장에 유동성이 급격히 유입된 배경으로는 발행어음·종합투자계좌(IMA) 확대가 꼽힌다. 금융당국이 초대형 투자은행(IB)에 발행어음 조달 자금의 일정 비율 이상을 모험자본에 투자하도록 요구하면서 증권사 자금과 코스닥벤처펀드(코벤펀드), 리테일 자금까지 메자닌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코벤펀드가 메자닌 수요 확대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코벤펀드는 벤처기업 신주 및 코스닥 중소·중견기업 투자 비중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이 과정에서 메자닌이 사실상 의무 편입 자산처럼 활용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메자닌 물량은 제한적인 반면 편입 수요는 빠르게 늘어나면서 시장이 발행사 우위로 기울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메자닌 공급은 제한적인데 편입해야 하는 자금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운용사 입장에서는 조건이 불리해져도 물량을 담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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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실제 최근 전환사채(CB) 시장에서는 투자자에게 불리한 조건의 발행이 빠르게 늘고 있다. 과거 투자자 보호 장치로 활용됐던 리픽싱(전환가액 조정) 조항이 제한되거나 삭제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리픽싱 하한 역시 기존 70% 수준에서 최근에는 80% 수준으로 높아지는 분위기다. 하한이 높아질수록 주가 하락 시 전환가를 낮출 수 있는 폭이 줄어들어 투자자 손실 보전 여지가 그만큼 축소된다.
콜옵션 확대 역시 대표적인 변화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통상 발행회사의 콜옵션 비중 30% 수준을 시장 관행으로 봤으나 최근에는 50~100% 구조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콜옵션 비중이 높을수록 회사가 CB를 조기 회수할 수 있는 범위가 커진다. 예컨대 비중이 100%라면 발행사가 CB 전량을 만기 전에 회수할 수 있어, 주가가 전환가를 웃돌더라도 투자자는 전환권을 행사하지 못한 채 원금만 돌려받게 된다.
IB 업계에서는 최근 메자닌 시장 분위기가 코로나19 당시 유동성 장세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최근 발행어음·IMA 확대와 정책성 자금 유입으로 메자닌 시장에 다시 유동성이 몰리면서 당시와 유사한 흐름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코로나19 시기 초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성장주·바이오·2차전지 관련 기업들의 CB 발행이 급증했고, 당시 시장에서는 표면·만기이자율이 모두 0% 수준인 이른바 '제로금리 CB' 발행이 잇따랐다. 투자자들은 채권 이자보다 주가 상승에 따른 전환 차익에 집중했고, 증권사와 운용사 자금이 대거 유입되며 발행사 우위 시장이 형성됐다.
문제는 이후 금리 인상과 함께 성장주 밸류에이션이 급격히 조정되며 드러났다. 주가가 전환가를 밑돌자 투자자들의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 행사 요구가 급증했고, 일부 기업들은 차환용 CB를 반복 발행하며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 리픽싱(전환가액 조정) 과정에서 기존 주주 지분 희석 논란도 커졌다.
증권사들의 딜 경쟁이 과열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벤펀드와 신기술조합, 랩·발행어음 자금 등을 통해 메자닌 수요가 급증하자 증권사들이 딜 확보를 위해 금리 인하, 콜옵션 확대, 리픽싱 제한 등 발행사 친화적 조건을 먼저 제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지금 메자닌 시장은 투자 매력보다도 ‘편입해야 하는 자산’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며 "유동성이 넘치는 상황에서는 대부분 소화되겠지만 시장 조정이 시작되면 투자자 보호 장치가 약한 메자닌 리스크가 한꺼번에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