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협중앙회가 NH농협금융지주를 대상으로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검토하고 있다. 정부의 '생산적 금융' 확대 요구에 발맞춰 투자 여력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경쟁사 대비 열악한 자본건전성을 극복하기 위해선 증자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직면한 가운데, 이번 증자가 정부 정책에 기조를 맞추기 위한 ‘코드 맞추기’라는 해석도 나온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는 농협금융지주를 대상으로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은 조만간 이사회를 열고 관련 안건을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증자는 지주뿐만 아니라 은행, 증권 등 주요 계열사에 자금을 내려보내는 형태로 진행될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농협은행의 증자 규모는 4000억~5000억원 수준이 거론되며, NH투자증권 역시 수천억원 규모의 증자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번 증자의 핵심 배경은 정부 정책 기조와의 동조화에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NH농협금융은 지난해 11월 생산적·포용적 금융 확대를 위해 5년간 108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5대 금융지주 중 자본건전성 비율이 가장 낮아 실제 집행에 속도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생산적 금융을 위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야 하지만, 수익성이 낮고 에쿼티(지분)성 투자가 많아 위험가중자산(RWA) 부담이 크다”며 “농협은 5대 지주 중 RWA 여력이 가장 취약해 증자를 통해서라도 계열사별 투자 한도를 늘려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내 주요 은행지주들은 바젤3의 고강도 자본규제를 적용받고 있다. 일부 벤처펀드 출자의 경우 ‘투기’에 준하는 400%의 위험가중치가 적용돼 자본 부담이 과도하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가장 낮은 NH농협금융의 증자는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평가다. 2025년 말 기준 NH농협금융의 CET1 비율은 12.25%로 5대 금융지주 가운데 가장 낮다. 같은 기간 KB금융은 13.79%, 하나금융은 13.37%, 신한금융은 13.33%, 우리금융은 12.9%를 기록했다. 반면 지난해 발표한 생산적금융 목표치(108조원)는 자산 규모가 더 큰 하나금융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NH투자증권 역시 이번 증자 대금 중 일부를 배분받을 것으로 파악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증자를 통해 NH투자증권의 RWA 여력이 약 3조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를 위해 수천억원대 자본 확충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다.
특히 NH투자증권의 경우, 지배구조 강화라는 부수적 목적도 깔려 있다는 해석이다. NH투자증권은 NH농협금융지주 계열사 가운데 NH아문디자산운용을 제외하면 지주가 유일하게 100% 지분을 보유하지 못한 회사다. 그간 CEO 선임 등을 두고 중앙화, 지주와 증권사 간 갈등이 표출되어 왔던 만큼, 지분율을 높여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다만 최근 NH투자증권의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해 증자에 따른 지분율 상승 효과는 제한적일 전망이다. 2026년 5월 기준 NH농협금융지주는 NH투자증권 지분 61.94%를 보유 중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증자가 단순 자본 확충을 넘어 농협금융의 대내외 리스크 대응 성격도 일부 담고 있다고 보고 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1억원대 금품 수수 혐의(특가법상 뇌물)로 지난 4월 첫 경찰 조사를 받았으며, 국회에서는 중앙회장 직선제 도입과 정부 감독권 확대 등을 담은 농협법 개정안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사법·규제 리스크가 고조된 상황에서 정부의 생산적금융 확대 요구에 적극 부응해야 할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는 관측이다.
농협중앙회 측은 금융지주 증자와 관련해 “아직 이사회 의결이 완료되지 않은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기 어렵다”면서도 “내부 필요에 따라 검토 중인 사안이며, 재원은 조합원 출자금이 아닌 농·축협의 여유자금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검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