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은행 영업환경 아시아 4위…증권사는 경쟁자 아닌 기업금융 파트너"
입력 2026.05.14 14:40

[피치 최병두(Matt Choi) 이사 인터뷰]
은행 영업환경 A+…민간 레버리지 높아 AA 진입 제한적
기업금융 확대 속도·자본적정성 유지가 모니터링 지표
밸류업은 주주엔 긍정…크레딧엔 부담 요인될 수도
원화 약세·지정학 변수에도 외화 버퍼 안정적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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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Fitch Ratings)가 한국 은행 섹터의 영업환경을 아시아 4위 수준으로 평가했다. 다양한 산업구조와 높은 소득수준, 잘 갖춰진 금융안전망이 강점으로 꼽히지만, 민간 부문의 높은 레버리지가 최고 등급 진입을 가로막는 구조적 변수로 지목된다. 

    피치의 한국 은행 섹터 담당 최병두(Matt Choi) 이사는 13일 서울 여의도동 피치 한국사무소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한국 은행의 영업환경 스코어는 A+로 아시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라며 "자산건전성이 가장 뚜렷한 강점이지만, 기업금융 확대 속도와 자본 여력 유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산업구조가 버팀목…AA 진입엔 레버리지가 발목

    피치는 국가별 은행 영업환경을 스코어링해 관리한다. 한국의 경우 현재 A+로 호주, 싱가포르 등에 이어 아시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최 이사는 "높은 스코어를 뒷받침하는 가장 큰 요인은 다양화된 산업 환경과 상대적으로 높은 1인당 소득"이라며 "규제 환경과 금융 안전망이 잘 갖춰진 점도 핵심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최근의 우려와 달리, 피치는 한국 경제의 산업 다변화를 긍정적으로 봤다. 그는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높지만 정유사들의 고도화 시설 덕분에 유가 충격을 완충할 여력이 있고, 조선·방산 등 다양한 산업이 존재해 특정 섹터가 부진해도 다른 섹터가 받쳐주는 구조"라고 말했다.

    AA 카테고리로의 진입은 제한적이라고 봤다. 피치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와 자체 거버넌스 지표를 조합해 영업환경을 산출하는데, 두 지표를 합산한 카테고리 스코어는 AA 수준이지만 민간 부문의 높은 레버리지를 감안해 A+를 부여하고 있다. 최 이사는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면서도 "민간 섹터의 레버리지가 높다는 점에서 AA 카테고리 진입에 제약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산건전성은 강점…취약차주 연체율 상승은 변수

    피치가 한국 대형 은행들의 가장 뚜렷한 강점으로 꼽는 것은 자산건전성이다. 최 이사는 "고도화된 심사 체계와 개인신용평가기관(Credit Bureau·CB)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전체 대출 채권 중 부실(스테이지3)로 분류된 비율이 글로벌 피어 대비 낮게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정책금융기관이 구조조정의 전면에 나서며 상업은행의 독자 신용등급을 방어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수익성과 자본적정성은 상대적으로 약한 고리로 지목된다. 그는 "강도 높은 규제 환경과 치열한 경쟁이 수익성을 제약하고 있고, 한국 경제가 빠른 성장 과정에서 레버리지를 확대해 온 만큼 자본과 펀딩 측면에서도 강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취약차주 중심의 연체율 상승도 지속적인 모니터링 대상이다. 다만 최 이사는 "최근 몇 년간 은행들이 충당금 모델을 보수적으로 바꿔왔고, 대부분의 대출이 담보 위주로 구성돼 있어 충당금이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경기가 전반적으로 바닥을 탈출하는 흐름이라는 점도 완충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봤다.

    "증권사는 은행의 경쟁자 아닌 파트너"

    최근 증권사의 기업금융 역할이 커지면서 은행의 입지가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최 이사는 경쟁보다는 '보완 관계'에 무게를 뒀다. 

    그는 "지금까지 은행과 증권사가 해온 기업금융의 역할은 상당히 달랐다"며 "부동산 금융만 봐도 은행은 입지가 좋고 담보인정비율(LTV)이 낮은 선순위 위주로 들어갔고, 증권사는 중순위나 약정·크레딧 라인 형식으로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분이 최근 몇 년간의 자산건전성 차이로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평가다.

    앞으로도 이 같은 역할 구분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최 이사는 "증권사가 벤처금융 등을 통해 좋은 기업을 키워낸다면, 은행 입장에서는 성장한 기업에 대출할 기회가 늘어나는 것"이라며 "경쟁보다는 보완적인 역할이 더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밸류업 정책, 크레딧엔 긍정적이지 않아…자본 여력은 유지 전망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 대해 피치는 신중한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으로 주주 환원이 늘어나는 것은 크레딧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만 최 이사는 "금융당국이 여전히 타이트하게 자본을 관리하고 있는 만큼, 은행단에서의 자본 여력이 크게 훼손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지주사 차원의 이중 레버리지는 모니터링 지점이다. 그는 "피치의 이중 레버리지 집계 기준으로는 신종자본증권을 제외하고 산출한다. 대형 지주사의 이중 레버리지 비율이 130~150% 수준으로 상당히 높다"며 "비은행 자회사 출자가 늘어나거나 배당 압력이 높아지면 자본 여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2026년 아웃룩 '중립'…기업금융 확대 속도·자본 여력이 변수

    피치는 2026년 한국 은행 섹터 아웃룩을 '중립(Neutral)'으로 제시했다. 금리 환경이 은행에게 크게 나쁘지 않고, 경기도 전반적으로 바닥을 다지는 흐름이며, 규제 환경이 포트폴리오를 급격히 변화시킬 만큼의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향후 핵심 모니터링 지표로는 기업금융 확대 속도와 자본적정성 유지 여부를 꼽았다. 최 이사는 "가계대출 규제로 인해 은행 포트폴리오가 기업 쪽으로 이동하는 흐름은 구조적으로 중장기 자산건전성 리스크를 높일 수 있다"고 답했다.

    이어 "다만 은행들이 최근 10년간 신용등급 관리에 중점을 둬온 만큼, 수익률이 높다고 해서 위험가중자산이익률(RORWA) 기준에 맞지 않으면 무리하게 들어가지 않는 경향이 있어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화 버퍼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피치는 최근 원화 약세와 지정학 변수에도 한국 은행의 외화 조달 여건은 안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해외채 수요가 여전히 견조하고,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에 대한 신뢰가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병두(Matt Choi) 이사는 2015년 피치에 합류했다. 홍콩에 주재하며 한국과 홍콩의 은행 신용등급 평가를 담당하고 있다. 피치 입사 전에는 베어링자산운용(Baring Asset Management)에서 바이사이드 크레딧 애널리스트로 근무하며 아시아 하이일드 및 투자등급 포트폴리오를 담당했다. 이전에는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에서 셀사이드 크레딧 애널리스트로, 삼정KPMG에서 은행·금융 부문 감사 업무를 수행했다. 한국공인회계사회(KICPA) 회원이자 공인재무분석사(CFA) 자격을 보유하고 있으며,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