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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사 합병가액 산정 방식이 바뀐다.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정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자산가치와 미래가치 등을 함께 반영하는 공정가액 방식이 도입된다. 업계에선 외부 평가기관의 역할이 커질 수 있지만, 가치 산정에 따른 책임 부담도 함께 늘어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14일 전체회의를 열고 상장사 합병가액 산정 방식을 개편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상장사가 합병가액을 산정할 때 공정가액을 적용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시장가격(주가)뿐 아니라 자산가치와 미래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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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현행 제도에선 일정 기간 주가를 평균해 합병가액을 산정하는 방식이 사용됐다. 기준은 명확했지만 주가가 기업의 본질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소액주주에게 불리한 합병비율이 산정될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실제 대기업 계열사 간 합병 과정에서 논란은 반복됐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2024년 두산밥캣과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로보틱스 분할·합병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 등이 대표적이다. 합병 비율이 오너 일가에 유리하고, 소액 주주에게 불리한 구조가 적용됐단 비판이 나왔다.
개정안에는 합병가액 산정 과정에 외부 전문평가기관을 참여시키고, 평가 결과와 이에 대한 이사회 의견 등을 공시하도록 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공정가액이 회사의 순자산가치보다 낮게 산정될 경우 순자산가치를 하한선으로 삼는 내용도 담겼다.
업계에선 의견이 엇갈린다. 주가만으로 기업의 본질가치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시장에서 수많은 참여자가 정한 가격이 가장 객관적이라는 반론도 있다. 특히 외부 전문평가기관의 부담이 커질 것이란 목소리가 작지 않다.
외부평가 업무는 회계법인이 맡을 가능성이 크다. 회계법인 입장에선 관련 일감이 느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합병가액 검토와 가치평가, 외부평가 업무가 늘어날 수 있다. 이사회 제출자료 검토 등 부수 업무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계열사 간 합병이나 지배주주 이해관계가 얽힌 거래에선 평가기관의 역할이 더 부각될 것으로 점쳐진다.
이미 실무에선 공정가액 산정의 중요성이 커지는 분위기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법안 통과 전이지만 실무적으로는 이미 개정안 취지가 상당 부분 반영되는 분위기"라며 "합병비율이 공정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금융감독원이 증권신고서 수리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 기업들도 회계법인에 용역을 맡겨 산정 근거를 촘촘히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고서가 두세 차례 정정 요구를 받으면 거래 동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어, 초기부터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문사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가액 산정 업무를 수임할 경우 자산가치와 미래 수익가치 산정 자체가 도마에 오를 수 있다. 합병가액이 적정한지 평가한다면, 적용한 방법론이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용역을 맡기는 기업이 고객사라는 점도 현실적 한계다.
최종 합병비율은 이사회가 정하겠지만, 기존처럼 주가 산식만 적용하던 때와는 상황이 달라진다. 평가기관이 제시한 공정가액과 평가 근거 자체가 새로운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합병가액 평가를 맡은 회계법인이 사후 논란에 휘말린 사례도 있다. 과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삼성은 주가를 바탕으로 산정한 합병비율의 적정성을 확인받기 위해 일부 대형 회계법인에 평가를 의뢰했다. 하지만 이후 해당 평가과정에서 공정성, 방법론 등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져 회계법인도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의결된 대안은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된다. 일부 쟁점 조항은 이번 논의에서 제외됐다. 불공정한 합병가액으로 투자자가 손해를 봤을 때 회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 합병 참여 법인의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안 등은 보류됐다. M&A 시장 위축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