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B급인데 조달금리는 3%대…'두산'에 몰려드는 금융사들
입력 2026.05.15 07:00

AI·원전·전력 인프라 기대감에 금융시장 시선 급변
실트론 인수 앞두고 산은·수은 등 전면 지원사격
PRS 블록딜도 흥행…"옛날 두산 아니다" 평가 확산
AI 프리미엄 과열 속 레버리지 확대 우려도 공존

  • 과거 유동성 위기로 워크아웃까지 경험했던 두산그룹이 최근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어'로 떠오르고 있다. 그룹 핵심 계열사의 신용등급은 최근에서야 BBB+에서 A-로 상향 조정됐지만, 실제 시장 조달금리는 이미 3%대까지 내려왔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7%대 자금 조달 부담에 시달리던 그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장 분위기가 사실상 뒤집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공지능(AI) 인프라와 원전, 전력망 투자 확대 기대감이 그룹 전반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가운데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까지 지원에 나서면서 시장의 시선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동시에 시장에서는 현재 두산그룹을 둘러싼 기대감이 실적과 재무 여건 대비 과도하게 선반영되고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최근 두산그룹 계열사들의 실제 시장 조달금리는 3% 후반 수준에서 형성되고 있다. 이는 CD금리(양도성예금증서)에 0.15%포인트(bp)를 가산한 정도다. 통상 기업 신용위험이 높을수록 가산금리가 커지는데, 과거 두산의 조달금리와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낮은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증권사 IB 임원은 "지금 시장에서 분위기가 가장 크게 바뀐 곳이 두산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3년 전 같은 등급으로도 7%, 2년 전만 해도 5% 후반대 조달이 일반적이었는데 현재는 신용등급과 실제 시장 조달금리 사이에 300bp 가까운 괴리가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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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실제 시장 분위기는 최근 두산그룹 관련 거래들에서도 드러난다. 이달 두산그룹이 추진했던 두산로보틱스 주가수익스와프(PRS) 계약 물량 460만주가 블록딜 형태로 매각됐다. 매각 규모는 약 4388억원이다. 한국투자증권과 UBS가 공동 주관했고, 해외 투자자 대상 클럽딜 형태로 진행됐다.

    해당 물량은 지난해 ㈜두산이 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KB증권 등과 체결했던 약 9500억원 규모 PRS 계약 일부다. 당시 기준가격은 주당 8만1000원이었는데, 이번 블록딜 가격은 9만5382원으로 기준가격을 웃돌았다.

    시장에서는 이를 단순 지분 유동화 거래 이상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과거 같으면 대규모 PRS와 블록딜이 재무 부담 신호로 받아들여졌겠지만, 현재는 긍정적인 투자 재원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선 IB업계 관계자는 "두산 거래는 시장에서 돈이 된다는 경험이 최근 반복적으로 형성되고 있다"며 "증권사들도 실제 수익을 확인하면서 추가 거래 참여에 적극적인 분위기"라고 말했다.

    최근 진행 중인 SK실트론 인수 협상에서도 달라진 시장 분위기가 감지된다. 두산그룹은 현재 SK그룹과 막판 조건 조율을 진행 중이다. 이르면 다음달 양측 이사회에서 관련 안건이 처리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시장에서는 SK실트론 거래 규모를 3조원 안팎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재는 산업은행이 조(兆) 단위 인수금융을 주선하고 우리은행 등 시중은행이 참여하는 구조가 거론된다. ㈜두산은 앞서 약 9500억원 규모 두산로보틱스 PRS 거래를 통해 유동성을 확보한 상태다. 시장에서는 자체 현금 수천억원과 PRS 조달 자금, 정책금융 지원 등을 결합해 인수 재원을 마련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특히 최근 수출입은행이 두산그룹과 체결한 5조원 규모 금융지원 협약이 시장 분위기를 크게 바꿨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은은 오는 2028년까지 반도체 소재(CCL), 소형모듈원전(SMR), 가스터빈, 로보틱스 등 분야에 총 5조원 규모 금융을 공급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단순 운전자금 지원이 아니라 향후 설비투자(CAPEX), 연구개발(R&D), 공급망 구축까지 염두에 둔 사실상의 전략산업 지원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근 두산 딜에는 투자자들이 줄 서 있다는 표현까지 나온다"며 "실트론 인수금융뿐 아니라 향후 증설 투자, 연구개발 자금 조달까지 시장 관심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시장 시선이 달라진 배경에는 두산그룹 사업 포트폴리오 자체 변화도 있다. 과거 중공업·건설기계 중심이던 그룹이 최근 AI 인프라 관련 핵심 자산을 동시에 보유한 그룹으로 재평가받고 있다는 것이다.

    ㈜두산 전자BG는 AI 서버용 하이엔드 동박적층판(CCL) 수요 확대 수혜를 받고 있다. 올해 1분기 전자BG 매출은 6173억원, 영업이익은 1856억원을 기록했다. 증권가에서는 엔비디아향 AI 가속기용 고사양 CCL 공급 확대가 실적 급증 배경이라고 보고 있다. 현재 증평·김천 공장 가동률은 사실상 100% 수준으로 알려졌다. 두산은 최근 태국 아라야 산업단지에 신규 생산거점을 구축하기 위해 1800억원 투자 계획도 발표했다.

    여기에 SK실트론 인수까지 완료되면 두산그룹은 웨이퍼(SK실트론)-소재(전자BG)-후공정 테스트(두산테스나)로 이어지는 반도체 밸류체인을 확보하게 된다. 시장에서는 두산이 기존 중공업 그룹에서 AI 반도체 인프라 그룹으로 체질을 바꾸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두산에너빌리티 역시 최근 신용등급 상향을 계기로 시장 신뢰가 빠르게 회복되는 분위기다. 한국기업평가는 이달 두산에너빌리티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BBB+에서 A-로 상향 조정했다. 체코 원전 기자재 수주, 북미 가스터빈 공급 확대, 중동·동남아 EPC 프로젝트 확보 등을 바탕으로 수주잔고 질이 개선된 영향이다. 

    시장의 기대가 지나치게 앞서가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현재 두산그룹을 둘러싼 상승 논리 상당 부분이 AI·원전·전력 인프라라는 미래시점의 기대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SMR 사업의 경우 아직 상용화 초기 단계다. 두산에너빌리티 주요 파트너 가운데 하나인 미국 SMR 업체 뉴스케일파워는 최근 투자금 집행 구조를 둘러싼 논란과 집단소송 이슈가 불거진 상태다. 향후 프로젝트 일정 차질 가능성이 현실화될 경우 두산에너빌리티 역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트론 인수 이후 재무 부담 확대 가능성도 여전하다. 두산은 과거에도 대형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재무 부담이 급격히 확대됐던 경험이 있다. 최근 현금흐름이 개선되고 PRS 등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했다고는 하지만, 수조원대 인수금융이 추가될 경우 그룹 레버리지는 다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두산 사업 구조가 과거 대비 좋아진 것은 맞지만 현재 시장에서 형성되는 프리미엄은 상당 부분 AI와 원전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라며 "실제 현금창출력과 미래 투자 부담 사이 균형이 유지될 수 있는지는 앞으로 계속 검증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