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J중공업의 주가는 작년 하반기 이후 조선업 호황속에 고공행진 중인데 실적이 이를 뒷받침할지는 불투명하다. 은행들이 중소형 조선사에 대한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을 꺼리고 있어 선박 수주 확대에 애를 먹는 양상이다. HJ중공업은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며 지원을 바라지만 은행권에선 조선업 구조조정 트라우마 때문에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HJ중공업 주가는 2만원 중반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작년 상반기 마지막 거래일 주가가 8000원 아래였던 점을 감안하면 세 배 이상 오른 수치다. 작년 이후 마스가(MASGA)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며 한국 조선사들이 수혜주로 떠오는 영향으로 풀이된다. 작년 10월 2100억원 규모 유상증자 실행에도 주가는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HJ중공업의 전신은 한진중공업이다. 한진중공업은 2000년대 중반, 필리핀 수비크에 초대형 조선소를 건립해 사세를 키웠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와 조선업 침체가 겹치면서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했고 2016년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갔다. 2021년 동부건설 컨소시엄은 채권단으로부터 한진중공업을 인수했고, 사명을 HJ중공업으로 바꿨다.
HJ중공업 출범 초기 실적은 들쑥날쑥했다. 2021~2023년 순손실을 기록했고, 부채비율은 451%에서 745%로 올랐다. 2024년 흑자전환했고, 작년 668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친환경 선박과 특수선이 분위기 반전을 이끌었다. 올해 초엔 미국 해군 함정 MRO(유지·보수·정비) 사업 자격도 획득했다. 회사의 대주주는 HD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인수를 추진 중이다.
-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HJ중공업으로선 실적 개선과 주가 추가 상승의 호기를 잡은 셈인데 실제로 이런 이상적인 결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분위기가 좋을 때 선박을 수주해야 하는데, 이를 지원해야 하는 은행들의 시각이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해운사들은 조선사에 선박 건조를 요청하면서 선박 대금의 40%가량을 선수금으로 지급한다. 선사 입장에선 조선사가 약속한 기한 안에 선박을 건조하지 못하거나 파산할 경우 이를 돌려받을 장치가 필요하다. 은행이 대신 선수금을 돌려주겠다고 보증을 하는 것이 선수금환급보증(RG)이다. RG가 얼마나 원활히 발급되느냐가 수주 경쟁력을 가른다.
한화오션이나 HD현대중공업 등 대형사들은 마스가 프로젝트의 가장 큰 수혜를 받고 있다. 글로벌 물류 대란 때는 컨테이너선, 에너지 공급망 타격 때는 초대형 원유운반선 등 다양한 선종에서 수주 성과를 내고 있다. 은행들로부터 RG 공급도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
중소형 선사들의 상황은 다르다. 조선업 호황의 효과는 누리고 있지만 금융 조달이 녹록지 않다. 대형사에 비해 재무 체력이나 사업 안정성이 떨어지다 보니 은행들이 RG를 보수적으로 발급하고 있다. 작년 정부 주도로 '조선 RG 공급 확대방안'이 마련됐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최근 중소사들은 은행들을 찾아 RG 공급을 요청하고 있는데 성과가 많지 않다.
채권단은 HJ중공업 매각 시 RG 발급 약속을 했다. 단 선박 척수가 아니라 일정 금액 이내로 RG를 발급하기로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당시엔 선박 가격이 쌌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몇 배나 올랐다. RG 발급 한도로 예전에는 10척을 건조할 수 있었다면 현재는 그 절반밖에 짓지 못하는 셈이다. 건조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려면 RG가 더 필요하다.
산업은행을 위시한 은행들의 시각은 보수적이다. HJ중공업은 탱커선이 주력인 대한조선, 케이조선과 달리 취급 선종이 다양하다. 위험 분산 효과가 있지만, 반대로 각 선박의 건조비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컨테이너선 등 일부 선종은 중국 대비 경쟁력이 떨어진다. 은행 입장에선 미-중 분쟁에 따른 반사이익이 끝났을 경우까지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채권단 관리체제 아래서 이뤄진 금융지원도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은행들로선 이런 상황에서 손을 또 벌리는 것이 달갑지 않다. 조선사 신용등급 안에서 충분히 RG를 발급해주고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조선사들은 납기를 잘 맞춰 왔고 RG 발급 수수료도 내는데 은행들이 너무 몸을 사린다 주장한다. 핵심 발급 주체인 국책은행부터 소극적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 빅3는 자금이 풍부해 사업을 원활히 굴리고 있지만 HJ중공업이나 대한조선, 케이조선 같은 곳은 자금 여유가 없다"며 "중소형사들은 물이 들어왔을 때 선박을 빨리 빨리 건조할 수 있도록 RG 한도를 늘려달라고 계속 요청하지만 은행들은 과거 구조조정 트라우마 때문에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의 부담을 줄이는 방법은 있다. 조선사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무역보험공사가 은행이 발급한 RG의 80%를 대신 부담하겠다고 보증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은행의 RG 발급 고민은 줄어들지만, 조선사의 수수료율을 올라간다. 대형사가 0.2~0.3%라면 중소형사는 1%에 달해 부담이 크다. 무보의 한도가 무한한 것도 아니다.
HJ중공업에 중대재해 사고가 잇따르는 것도 변수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HJ중공업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했다. 사고는 모두 건설부문에서 발행해 조선부문과는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정부가 노동문제에 민감한 것을 감안하면 은행들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HJ중공업을 지원하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한 은행 관계자는 "HJ중공업을 비롯한 중소형 조선사들은 선박 가격이 오르면서 RG 한도가 부족해지는 문제를 안고 있다"며 "관할 부처인 산업통상부에선 이를 심각하게 보고 있지만 자금 집행에 관여해야 하는 재정경제부는 관심을 두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