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채 10년물 4% 돌파…채권시장 손절 물량 쏟아진다
입력 2026.05.19 14:17

중동發 인플레 우려에 장단기 금리 급등
장기채 늘렸던 운용사들 손실 부담 확대
"연말까지 약세장 이어질 가능성 커"

  • 국고채 금리가 가파르게 치솟으며 채권시장이 사실상 패닉 장세에 접어들고 있다. 중동 지역 지정학 리스크와 국제유가 급등이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를 다시 자극하면서, 시장에서는 "상반기 내내 버티던 손절 물량까지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장중 연 4.235%까지 상승하며 4%선을 돌파했다. 국고채 10년물 금리가 4%를 웃돈 것은 약 3년 만이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2.8%대에서 거래되던 금리는 연말 이후 상승 흐름을 이어오다 최근 중동 리스크가 겹치며 급등세가 가팔라졌다. 이날 기준 국고채 3년물 금리는 3.775%, 30년물 금리는 4.181%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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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채권의 금리 상승은 곧 가격 하락을 의미한다. 금리 급등으로 자산운용사와 보험사, 증권사 등 기관투자가들의 보유채권 평가손실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 이후 금리 하락을 기대하며 장기채 비중을 늘렸던 운용사들의 손실 부담이 확대되는 분위기다.

    A 운용사 관계자는 "지난주와 이날 오전까지 손절할 만한 곳들은 거의 다 정리한 분위기"라며 "이란 관련 지정학 이슈가 길어지고 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상황이라 당분간 채권시장 약세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최근 금리 급등의 핵심 배경으로 미국-이란 전쟁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를 꼽는다. 중동 리스크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국제유가가 재차 상승했고, 이는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기대를 약화시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국 장기 국채 금리도 최근 동반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다시 4.5%를 훌쩍 넘겼으며, 30년물은 심리적 저항선인 5%를 넘어서며 2007년 7월 이후 19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 일본 국채금리 역시 수십 년 만의 고점을 경신 중이다. 글로벌 채권시장이 사실상 동일한 매크로 변수 아래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Fitch Ratings) 역시 최근 금리 급등을 구조적 인플레이션 압력의 연장선으로 해석하고 있다. 

    얀 프리드리히(Jan Friederich) 피치 유럽·중동·아프리카(EMEA) 국가신용등급 총괄은 "최근 금리 움직임이 아주 놀라운 수준이라고 보진 않는다"며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상방 압력이 다시 커지고 있으며, 특히 이란 위기와 에너지 가격 상승이 장기 금리에 반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요국 채권금리가 전반적으로 압박받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시장 심리가 예상보다 빠르게 냉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같으면 저가 매수세가 유입됐을 법한 금리 레벨이지만, 현재는 투자자들이 추가 금리 상승 가능성을 더 크게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B 운용사 관계자는 "국고 3년물 기준으로 3.7% 수준이면 사실상 기준금리 3.5%까지 반영한 레벨이라 매수세가 들어올 만한 구간"이라면서도 "그럼에도 시장이 계속 약세를 보이는 건 인플레이션과 유가 불확실성을 더 크게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란 이슈가 더 장기화하거나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 3년물도 3.8~3.9%까지 오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일부에서는 금리 상단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효과로 외국인 자금 유입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C 운용사 관계자는 "외국인 순매수세를 감안하면 국고채 3년물 기준 3.8% 부근에서는 상단이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며 "이란 이슈가 진정되고 유가가 다시 내려오기 시작하면 금리는 빠르게 3.3~3.4% 수준까지 되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현재로선 지정학 변수 완화 조짐이 뚜렷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원·달러 환율 상승 역시 국내 채권시장에는 부담 요인이다. 환율이 1500원선을 웃돌면서 외국인 자금 이탈 우려와 함께 미국 국채 대비 국내 채권의 상대 매력이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D 운용사 관계자는 "미국 국채 금리가 올라가면서 강달러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며 "글로벌 자금 입장에선 미국 국채 투자 수요가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올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오히려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까지 일부 반영하기 시작했다. 한국은행 역시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늦출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채권시장 약세가 올해 하반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현재 시장은 단순히 금리 레벨보다도 '인플레이션이 다시 통제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공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유가와 지정학 리스크가 진정되기 전까지는 채권시장의 방향성을 쉽게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