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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인공지능(AI) 테마 상장지수펀드(ETF) 경쟁이 다시 격화되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형주를 전면에 내세운 상품이 포화에 이르자 새로운 방향성을 찾는 데 한창이다.
최근 출시되는 신상품들은 피지컬AI, 빅테크 밸류체인, 메모리·스토리지 등으로 AI 수혜 범위를 세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운용사들이 단순히 AI 테마에 올라타는 단계를 넘어, '반도체 다음 수혜주'를 새로 정의하는 경쟁에 들어선 모습이다.
지난 12일 동시 상장한 신상품들의 공통점은 AI 테마를 하나의 산업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도체는 여전히 중심에 있지만, AI 테마 안에서 완성차·로봇·자율주행을 '피지컬AI'로 묶어 차별화하고, 빅테크는 단순 플랫폼 기업이 아니라 AI 인프라 밸류체인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메모리·스토리지 기업은 데이터 폭증에 따른 후속 수혜주로 부각됐다.
KB자산운용의 'RISE 현대차고정피지컬AI'는 AI 수혜주의 범위를 피지컬AI로 넓힌 사례다. 현대차를 25% 고정 편입하고, 로봇·자율주행·스마트팩토리 관련 기업을 함께 담는 구조다. AI가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인프라를 넘어 실제 산업 현장에서 구현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논리를 상품화했다.
기존 자동차 테마 ETF가 완성차 판매와 전기차 사이클에 가까웠다면, 이번 상품은 현대차그룹을 피지컬AI 생태계의 중심축으로 재분류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래에셋자산운용과 NH아문디자산운용 상품은 AI 인프라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미래에셋의 'TIGER 구글밸류체인'은 구글을 단순 플랫폼 기업이 아니라 반도체, 네트워크, 데이터센터를 포괄하는 AI 밸류체인으로 제시했다. NH아문디의 'HANARO 미국AI메모리반도체TOP4+'는 마이크론, 샌디스크, 웨스턴디지털, 씨게이트 등 메모리·스토리지 기업을 전면에 세웠다.
AI 투자 수요가 엔비디아와 고대역폭메모리(HBM)에만 머물지 않고 저장장치와 데이터 인프라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키움투자자산운용의 'KIWOOM 미국AI테크하이베타'는 특정 테마에 고정하지 않고, 반도체·데이터센터·광통신·우주 등 최근 인기를 끄는 AI 관련 테마 안에서 시장 주도주를 따라가는 구조다. 대규모 언어모델(LLM)로 미국 상장 AI·프론티어 테크 기업군을 선별한 뒤, 변동성이 높은 상위 30개 종목에 투자한다.
액티브 ETF의 테마 순환 전략을 패시브 지수에 녹여 공격적인 수익률을 겨냥한 셈이다. 다만 하이베타 전략 특성상 상승장에서는 탄력이 크지만, 조정장에서는 손실 폭도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상장 첫날 가장 큰 자금이 몰린 삼성자산운용의 'KODEX 반도체타겟위클리커버드콜'은 AI 테마 수요가 여전히 대형 반도체 기업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다만 기존 반도체 ETF와 달리 커버드콜 구조를 결합했다는 점이 차이로 꼽힌다.
AI 반도체 랠리에 참여하면서도 옵션 프리미엄을 활용한 분배금 수요를 동시에 겨냥한 셈이다. 다만 커버드콜 구조상 강한 상승장에서는 기초자산 상승분을 온전히 따라가기 어렵다는 한계도 지적된다.
상장 첫날 자금 유입도 이 같은 시장의 관심을 뒷받침한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일 상장한 주요 AI 관련 ETF 5종에는 개인 순매수 기준 총 2339억원이 유입됐다. 삼성 'KODEX 반도체타겟위클리커버드콜'에는 첫날에만 1359억원이 몰렸고, KB 'RISE 현대차고정피지컬AI'에는 373억원이 들어왔다. 미래에셋 'TIGER 구글밸류체인'에는 265억원, NH아문디 'HANARO 미국AI메모리반도체TOP4+'에는 218억원, 키움 ‘KIWOOM 미국AI테크하이베타’에는 124억원의 개인 순매수가 유입됐다.
모두 AI라는 같은 간판을 달고 있지만 실제 투자 논리는 제각각인 셈이다. 그만큼 국내 ETF 시장의 상품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미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국내 반도체 ETF와 글로벌 빅테크, AI 인프라 ETF가 다수 상장된 상황에서 단순히 AI 이름만 붙인 상품으로는 개인 투자자 관심을 끌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대형 자산운용사 한 운용역은 "이제는 AI ETF도 엔비디아나 삼성전자 등 기존 대형주만으로 차별화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운용사마다 다음 수혜 산업을 다르게 해석하며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결국 편입 종목의 밸류에이션과 변동성 관리가 실제 성과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