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증자금 어디로 가나…기업금융보다 '빚투 대출' 먼저 보인다
입력 2026.05.21 07:00

지주·모회사 증권 자본 수혈 잇따라
종투사·생산적 금융 기대 커졌지만
현장에선 신용융자·담보대출 수익성 부각
"IB는 자본보다 쓸 만한 딜 부족"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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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지주들이 계열 증권사에 잇따라 자본을 투입하는 가운데, 막상 증권사는 늘어난 자본을 실제 어디로 배치할지를 두고 고민이 커지고 있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 라이선스와 기업금융 확대, 생산적 금융 대응에 대한 기대는 전례없이 커진 상황이다. 정작 현장에서는 단기 수익성이 뚜렷한 신용융자·증권담보대출 등 리테일 신용공여 확대 유인이 더 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들어 증권사 자본확충은 금융권 전반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KB증권은 KB금융지주로부터 7000억원을 수혈받았고, NH투자증권은 NH농협금융지주 증자를 통해 자기자본 8조원 요건을 맞춘 뒤 종합투자계좌(IMA) 사업자로 지정됐다. 우리투자증권도 1조원 규모 유상증자를 결의하며 종투사 도약과 대형 딜 수행 능력 강화를 내세웠다. 한국투자증권 역시 한국금융지주로부터 1조5000억원을 확충했다.

    자본확충의 배경에는 금융그룹 차원의 비은행 강화와 초대형 투자은행(IB) 경쟁, 발행어음·IMA 확대, 모험자본 공급 역할론이 깔려 있다. 금융당국도 증권사가 부동산이나 단순 대출성 자산에 머물지 않고 혁신기업, 중소·중견기업, 첨단산업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확대하길 기대하고 있다. 증권사에 더 큰 자본을 허용하는 이유 역시 궁극적으로는 자본시장을 통한 기업금융 기능을 키우자는 데 있다.

    그러나 증권사 내부의 셈법은 보다 현실적이다. 자기자본이 늘면 IB뿐 아니라 리테일 신용공여 여력도 함께 커진다. 신용융자와 증권담보대출은 담보가 있고 금리가 높다. 증시 거래대금이 늘어나는 국면에서는 브로커리지 수익과 이자수익을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 자본을 투입한 뒤 수익화까지 시간이 걸리는 IB 딜보다 훨씬 계산이 빠르다.

    최근 개인투자자 레버리지 수요가 빠르게 늘어난 점도 증권사 입장에서는 유혹이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사상 최고 수준까지 불어났고,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등 주요 증권사는 신용공여 한도 관리를 이유로 신규 약정이나 신용매수를 잇따라 제한했다. 자본이 늘어난 증권사 입장에서는 가장 먼저 신용공여 한도 확대를 검토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요즘 같은 장에서는 신용공여 한도만 더 있어도 수익을 내기 어렵지 않다"라며 "IB는 돈이 없어서 못한다기보다, 자본을 써서 위험 대비 수익이 맞는 딜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증권사 자본확충을 둘러싼 관심은 결국 자본의 실제 사용처로 옮겨가고 있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신용공여 확대가 가장 빠르게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는 선택지다. 담보가 있는 데다 금리 수준도 높고, 거래 활성화에 따른 위탁매매 수익까지 기대할 수 있어서다.

    다만 신용공여 확대가 최근 강조되는 생산적 금융의 취지와 맞닿아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신용융자와 증권담보대출은 개인투자자의 유통시장 거래를 뒷받침하는 성격이 강하다. 개인이 빚을 내 주식을 사는 자금이 늘어난다고 해서 기업의 신규 투자나 성장자금 조달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증권사들도 이 지점을 부담스럽게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지주가 증권 자회사에 대규모 자본을 넣는 명분은 비은행 강화와 자본시장 기능 확대에 있지만, 실제 자본이 고금리 개인 신용융자 북을 키우는 데 먼저 쓰인다면 당국과 시장의 기대와는 온도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생산적 금융이 핵심 화두로 부상한 상황에서 증권사 자본확충이 개인투자자 레버리지 확대의 통로로 비칠 경우, 자본확충의 정당성 자체가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IB 부문 역시 자본 수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수금융, 메자닌, 프리IPO, 브릿지론, 기업 신용공여, 발행어음·IMA 운용자산 등은 모두 자기자본 여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영역이다. 

    다만 최근 시장 상황에서는 자본만으로 북을 키우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은 충당금과 규제 부담이 남아 있고, 기업 자금조달도 신규 투자보다 차환 수요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IPO와 유상증자 시장도 밸류에이션 부담과 심사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증권사들은 자본확충 이후에도 부문별 수익성과 위험을 따져 자본을 배분할 수밖에 없다. 단기 수익성만 놓고 보면 리테일 신용공여의 매력이 크지만, 당국과 시장이 기대하는 증권사의 역할은 기업금융과 모험자본 공급에 더 가깝다. 자본확충 이후 실제 자금 흐름이 어디로 향하는지가 증자의 성격을 가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자본을 확충하는 것 자체는 필요하지만, 그 자본이 어디에 쓰이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며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면서 실제로는 개인 신용융자만 늘리는 구조라면 당국이나 시장의 기대와는 온도차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