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판보다 매출이 중요?…신뢰 흔들리는 신용평가사
입력 2026.05.21 07:00

20년 넘게 이어진 '등급 쇼핑'
신평사 매출 경쟁에 고착화
금감원 권고에도 분석 기간 축소 불가피
고배당 성향도 매출 압박 원인으로 거론
신평업계 "영업-분석 부문의 경계 흐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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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신평사 경쟁은 정확한 등급을 통해 시장에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평판 경쟁이어야 하는데, 현실은 매출과 평가 건수 경쟁에 치우쳐 있다." (신평사 한 연구원)

    국내 신용평가 시장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자본시장의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할 신용평가사들이 정확한 신용등급 산출보다 매출 경쟁에 매몰됐다는 내부 비판이 커지고 있다.

    최근 채무 불이행(디폴트) 사태를 맞은 제이알글로벌리츠도 신평사의 매출 경쟁과 발행기업의 '등급 쇼핑'이 맞물린 결과라는 해석이다.

    신평업계에 따르면 제이알글로벌리츠는 2023년 나이스신용평가에 신용등급 'A-'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한국기업평가에 신규 의뢰해 6월 원하는 등급을 받았다. 나이스신용평가는 2021년 8월 제이알글로벌리츠의 등급을 'BBB+'로 최초 평가해 한국신용평가가 1월 평가한 등급 'A-'와 엇갈리던 상태였다.

    사실 평가 의뢰 기업이 더 우호적인 등급을 찾아 신평사를 옮겨 다니는 이른바 '등급 쇼핑'은 최근의 문제만은 아니다. 1994년 복수신용평가제 도입 이후 구조적으로 심화해 온 문제라는 시각이 많다. 복수신용평가제는 신용등급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회사채 등을 발행 시 2곳 이상의 신평사에서 등급을 받도록 한 제도다.

    역설적으로 이후 신평사들은 고객을 뺏기지 않기 위해 발행기업의 눈치를 보게 됐다. 발행기업이 우호적인 등급을 주는 신평사를 찾아 나서면서다. 결국 등급 상향 평준화라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국내 리츠 신용등급만 보더라도 공시된 등급 상당수가 'A-'에 집중돼 있다. 실제 유효 신용등급을 보유한 리츠 16개 중 9개가 'A-'다. 나머지는 이보다 등급이 높다. 사실상 특정 구간에 등급이 몰린 셈이다. 

    복수의 신평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A- 등급을 놓고 거래가 이뤄진 게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며 "일부 평가에서는 정량 지표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자산 안정성·운용 역량 등 정성 평가를 통해 발행사가 원하는 수준의 등급을 맞추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리츠 평가에서는 부실 가능성을 키우는 구조적 허점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평사들은 리츠 평가 과정에서 현장 실사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자산은 현장 실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해외는 자산별로 상이하다.

    신평사 한 관계자는 "해외 자산의 경우 발행사에 해외 출장비를 별도로 요구하기 어렵고, 평가 수수료가 크지 않아 출장 예산을 반영하기 쉽지 않다"며 "결국 제한된 자료만으로 평가가 이뤄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전했다.

    발행기업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평가 일정도 갈수록 촉박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이 신평사에 대해 감사를 할 때마다 분석 기간을 충분히 확보하라 주문하지만, 현장에서는 사실상 지켜지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다른 신평사 관계자는 "기업이 신용등급 평가를 의뢰하면 통상 1~2주 이내에 결과를 내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며 "과거에는 최소 2주 정도의 분석 기간을 확보했지만, 3사 간 매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평가 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점차 발행기업의 일정에 맞춰 서둘러 결과를 내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높은 배당 성향 역시 신평사의 매출 확대 압박을 키우는 배경으로 거론된다. 한국기업평가는 글로벌 신평사 피치가 지분 73.55%, 한국신용평가는 무디스가 100%를 보유하고 있다. 배당성향은 한국기업평가가 44.9%, 한국신용평가가 90%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신용평가사는 기업 요청이 없어도 자체적으로 신용등급을 산출하는 무의뢰평가를 할 만큼 시장 감시자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며 "하지만 한국에서는 국내 신평사를 사실상 수익사업 수단처럼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상대적으로 매출 압박이 덜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나이스신용평가도 최근에는 영업과 분석 부문의 분리 원칙이 약화했다는 문제 제기가 내부에서 나온다. 3사 모두 영업 확대를 위해 분석 조직에 사실상 우호적 등급 압박이 가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본다.

    금감원의 관리·감독 기능이 과거보다 약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용감독국은 2024년 포용금융실과 함께 금융안정지원국으로 축소됐다.

    2013년 동양사태가 발생했을 때 금감원은 신평 3사의 영업정지까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금감원은 신평사를 대상으로 특별검사를 실시해 기관경고 처분을 내렸으며, 임직원에게는 중징계를 내렸다. 반면 2023년 태영건설 워크아웃과 관련해 공식 중징계나 기관 제재는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평업계에선 매출 경쟁이 신평사의 근간이 되는 이상 제이알글로벌리츠 사태 같은 사례는 필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신평사 내부에서도 영업 담당자가 분석 담당자에게 특정 수준의 등급을 요구하며 압박하는 경우가 많으며, 우호적인 등급을 부여해도 큰 책임을 지지 않는 분위기가 내부적으로 자리잡았다고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