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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농협중앙회가 조합원 직선제를 수용하며 '조합원 주권' 강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다만, 정작 중앙회장과 중앙회에 집중된 권한을 어떻게 분산할지에 대한 해법은 제시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선거제도 개편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은 밝혔지만, 이번 농협 개혁 논의의 또 다른 축인 내부통제 강화와 감사 독립성, 인사·자금 배분의 투명성 문제는 대부분 향후 과제로 남긴 것이다.
농협중앙회는 지난 21일 '농업인 조합원과 국민께 드리는 글'을 통해 "조합원 직선제는 열린 마음과 책임 있는 자세로 적극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직선제 도입에 따른 지역 갈등, 농협의 정치화, 금권선거 부작용, 선거비용 부담 등을 함께 언급하며 선거공영제 도입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농협감사위원회 신설에 대해서는 우려를 분명히 했다. 농협은 감사위 신설이 중복규제와 인력·운영비 증가, 경영 자율성과 안정성 저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신 내부 감사 기능을 보완하고 학계·농민단체·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공론화를 거쳐 정부·국회와 최적안을 도출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입장문은 표면적으로는 정부·여당의 농협 개혁 요구에 한발 물러선 메시지로 읽힌다. 정부는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전체 조합원 직선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기존에는 전국 조합장 중심의 간선제 방식으로 중앙회장을 선출했지만, 개편안은 중복 조합원을 제외한 약 187만명의 실질 조합원이 1인 1표를 행사하는 구조다.
문제는 직선제 도입만으로 농협 지배구조 개혁이 완성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직선제는 중앙회장의 대표성을 높이는 장치지만, 동시에 중앙회장의 정치적 정당성을 더 키울 수도 있다. 중앙회장이 더 많은 조합원의 직접 선택을 받게 되는 만큼, 인사·자금·감사·사업 조정 권한이 기존처럼 중앙에 집중돼 있다면 오히려 '직선 권력'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배제하기 어렵다.
정부가 선거제도 개편과 함께 감사기구 신설, 중앙회장의 지주·자회사 경영개입 제한, 인사추천 구조 개선, 회원조합지원자금 배분 투명화 등을 함께 제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농협 개혁 논의의 본질은 단순히 '누가 회장을 뽑느냐'가 아니라, 뽑힌 회장의 권한을 어떻게 견제하고 중앙회 의사결정 구조를 얼마나 투명하게 바꿀 수 있느냐에 가깝다.
그러나 농협의 입장문에는 이 같은 권한 분산 장치에 대한 구체적인 답이 많지 않았다. 농협은 '농협의 주인은 농업인 조합원'이라는 원칙을 공고히 하겠다고 했고, 조합원 주권이 실질적으로 강화될 수 있도록 의사결정 참여 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합원이 중앙회 의사결정과 인사·자금 배분, 감사 체계를 어떻게 견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는 담기지 않았다.
감사 독립성 문제도 마찬가지다. 농협은 농협감사위원회 신설에 대해 협동조합의 자율성과 경영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협동조합의 자율성은 농협이 지켜야 할 중요한 원칙이지만, 이번 개혁 논의가 기존 내부통제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한다.
외부 감사기구 신설에 반대하려면, 농협 스스로 감사기구의 인사 독립성, 조사 권한, 보고 체계, 제재 수단, 중앙회장으로부터의 독립 장치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입장문에 담긴 대안은 "내부 감사 기능을 철저히 보완하겠다"는 수준에 머물렀다. 농협개혁위원회가 권고한 13개 자체 혁신 과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지만, 과제별 이행 시한이나 공개 범위, 외부 검증 방식은 구체화되지 않았다.
입장문 후반부에 담긴 생산적 금융 93조원, 포용적 금융 15조원, 스마트팜 확대, 농촌인력 공급 등 사업계획도 같은 맥락에서 한계가 있다. 농업인 실익을 위한 사업이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이번 논란의 본질은 농협이 농업·농촌에 얼마를 투입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어떤 권한으로 농협을 움직이고, 그 권한을 누가 감시하느냐다. 사업 성과가 지배구조 개혁의 대체재가 될 수는 없다.
농협이 한 차례 입장 발표를 미룬 뒤 내놓은 문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움은 더 크다. 농협은 당초 지난 20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 직후 직선제 수용 등을 담은 입장문을 배포하려 했지만, 내부 추가 의견 수렴과 검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발표를 하루 미뤘다. 중앙회장 선거와 내부통제, 감사기구 신설 등 지배구조와 직결된 사안인 만큼 신중한 조율을 거쳤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최종 입장문은 핵심 쟁점에 대한 답을 충분히 담지 못했다. 하루의 숙고 끝에 나온 결론이 직선제 수용과 감사위 신설 우려 표명에 머물렀고, 중앙회 권한 분산과 감사 독립성 확보, 조합원의 실질적 견제 장치에 대한 구체안은 빠졌다. 농협이 "농협의 주인은 농업인 조합원"이라고 강조한 만큼, 조합원이 회장을 직접 뽑는 절차뿐 아니라 뽑힌 회장의 권한을 어떻게 통제할지도 함께 제시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농협 안팎에서는 입장문이 개혁 압박에 대한 최소한의 응답에 그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직선제 수용은 상징적 변화지만, 농협 개혁의 본질은 중앙회에 집중된 권한과 내부통제 구조를 어떻게 바꿀지에 있다"며 "입장문을 하루 늦춰 내놓은 만큼 감사 독립성이나 자금·인사 투명성에 대한 더 구체적인 방안이 담겼어야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