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AAA 등극은 언제쯤?…"유동성 확보가 관건"
입력 2026.05.26 07:00

AI발 메모리 수요에 역대급 현금창출력
호황기 숫자보다 불황기 생존력 입증해야
"80조~100조 유동성 유지돼야 AAA 가능"

  • 불과 3년 전 대규모 적자로 생존 우려까지 거론됐던 SK하이닉스가 이제는 국내 최고 신용등급인 'AAA'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인공지능(AI)발 메모리 호황 속에 사상 최대 수준의 실적 개선세를 보이면서다. 신용평가사들은 업황 둔화 국면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준의 유동성과 재무완충력을 신용등급 상승의 필요조건으로 꼽았다.

    국내 신용평가 3사는 올해 1분기를 기점으로 SK하이닉스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기존 'AA(긍정적)'에서 'AA+(안정적)'로 상향 조정했다. 지난 2018년 이후 8년 만의 등급 상향이다. 

    등급 상향의 배경에는 전례 없는 실적 개선이 자리한다. SK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 매출액 52조5762억원, 영업이익 37조6102억원을 기록했다. 전분기 대비 각각 60.2%, 96.2% 증가한 수치다. 분기 매출이 사상 최초로 50조원을 돌파했고, 영업이익은 4개 분기 연속으로 최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2배, 영업이익은 4배 이상 급증했다. 

    재무구조도 빠르게 개선됐다. 2023년 말 23조6000억원에 달하던 순차입금이 2024년 말 11조3000억원으로 줄었고, 2025년 말부터 순현금 구조로 전환했다. 올해 1분기 말 보유 순현금만 35조원을 돌파했다. 조 단위 적자와 함께 차입금에 짓눌렸던 2023년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진 풍경이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차세대 AI 플랫폼용 HBM4 공급 물량의 상당 부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빅테크들의 자체 주문형반도체(ASIC) 개발 확대까지 맞물리며 HBM 수요 기반이 그래픽저장장치(GPU) 중심에서 점차 넓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평사들은 이처럼 연간 장기공급계약에 기반한 선판매-후생산 구조가 실적 변동성을 구조적으로 완화하고 있다는 점을 등급 상향의 핵심 논거로 꼽았다.

    현재로서는 신용도 최고 등급인 'AAA' 가능성도 거론된다. 현행 신용등급 체계에서 AAA급은 민간 기업이 오를 수 있는 최고 수준을 뜻한다. 한 신평사 연구원은 "AA+가 우량기업이라면 AAA는 어떤 시장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업"이라며 "사이클과 외부 충격을 넘어서는 안정성이 입증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AA+와 AAA 사이의 간극은 단순 실적 개선만으로 메우기 어렵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현재 공기업이나 금융지주를 제외한 국내 민간 기업 가운데 AAA 등급을 보유한 곳은 현대자동차, 기아, SK텔레콤, KT, KT&G 정도에 불과하다. 순수 민간 제조업 기준으로는 현대자동차, 기아가 비교 대상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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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표면적인 재무지표만 놓고 보면 SK하이닉스가 기존 AAA 기업들과 견줘도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시장에서는 절대적인 재무여력보다 산업 특성의 차이에 더 주목했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두 곳 모두 순현금 기반의 안정적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자동차 업종은 금융 계열사를 포함한 차입 부담이 상존하기도 한다"면서 "SK하이닉스는 결국 다운턴에서도 지금 수준의 재무체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핵심 변수로 재무완충력을 꼽았다. 신평사들은 오히려 이런 시기일수록 '호황기의 숫자'보다 '불황기의 생존력'을 본다는 입장이다. 특히 현금성 자산 규모가 중요한 기준으로 떠올랐다. 업계에서는 대체로 80조~100조원 수준의 유동성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한신평은 80조원 이상의 유동성과 400% 이상의 차입금 대비 유동성 비율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신용도 추가 상향의 필요조건이라고 밝혔다. 연간 CAPEX(35조~40조원 예상)와 연구개발비(5조~7조원 내외), 운전자본 부담 및 다운사이클 예상 기간(6~18개월)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특히 클린룸 1만평 기준 투자비가 2019년 약 7조5000억원에서 2025년 청주 M15X 기준 약 20조원으로 세 배 가까이 뛰었다는 점을 주목했다. 미세공정 난이도 상승으로 다운턴 국면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재무완충력의 절대 수준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는 의미다. 

    한신평은 "메모리반도체 산업의 구조적으로 높은 투자부담과 주요 3사 간의 치열한 기술 경쟁환경, SK하이닉스의 메모리에 집중된 사업포트폴리오를 고려할 때 강화된 재무완충력 확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신평사 연구원은 "현금 유동성을 100조원 이상 가지고 있다면 지난 2023년도와 같은 상황이 와도 버텨낼 힘이 생긴다"며 "신평사마다 구체적인 수치가 다르긴 하나 80조~100조원으로 내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의 평가도 우호적이다. 무디스는 지난해 12월 SK하이닉스의 신용등급을 기존 'Baa2'에서 'Baa1'으로 올렸다. S&P는 올해 2월 'BBB'에서 'BBB+'로, 피치도 지난달 'BBB+' 등급을 부여했다.

    피치도 최근 서울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비슷한 시각을 내놨다. 셸리 장(Shelley Jang) 피치 아태지역 기업 신용 담당 이사는 "AI 확산이 구조적 업트렌드인 것은 맞지만, 그 업트렌드 역시 시클리컬(경기민감) 안에 존재한다"며 "메모리 산업의 변동성은 여전히 크고 자본집약적 산업 특성상 또 다른 다운턴이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A급 이상에서는 안정적인 현금흐름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며 "현재는 그 과정에 있는 단계"라고 평가했다.

    SK하이닉스 역시 글로벌 최상위 수준의 재무체력 확보가 필요하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했다. 회사는 올해 1분기 실적발표회를 통해 100조원 이상의 순현금 확보를 중장기 재무 목표로 제시했다. 동시에 현재의 현금창출력을 고려하면 연내 재무건전성 목표를 달성하면서 주주환원 확대까지 병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사업의 높은 투자수익률을 감안하면 창출되는 현금을 사업에 재투자할 때 자본효율이 극대화한다"며 "장기적으로 필요한 투자를 집중하면서 재무건전성 확보해 장기 성장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의 연구원은 "현재로선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올리고 실적을 지켜볼 가능성이 높다"며 "실적과 유동성에 따라 조절이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