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은 되는데...협회ㆍ당국 '무관심'에 손발 묶인 보험사 퇴직연금
입력 2026.05.25 07:00

취재노트
보험사 상품 '멸종 위기'…'보장성 금지' 규제에 14년째 손발 묶여
'노후 종합 보장' 본질 잃은 규제…보험협회 '대관 역량' 도마 위
해외선 퇴직연금-보장성보험 연계 대세…'8.4배 후생 효과'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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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주식 시장 호황과 맞물려 퇴직연금 시장으로의 '머니무브'가 지속되고 있다. 국민연금 재정 고갈 우려 속 연금 가입자의 직접적인 자산 운용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다. 불과 2년만에 100조원대의 성장세를 기록한 시장은 현재 500조원대 규모로 팽창해 자산 관리의 키플레이어로 급부상하고 있다.

    다만 무서운 성장세에도 시장은 철저히 기형적인 모습이다. 대규모 유동성 시장에서 은행과 증권업권이 약 80%에 달하는 자산을 흡수한 가운데, 보험사의 퇴직연금 자산 보유 비중은 약 20%에 불과하다. 특히 수요가 몰리는 DC(확정기여형)·IRP(개인형퇴직연금) 적립금 중 보험업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단 8.6%(24조5575억원)으로 사실상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업계에서는 보험사가 퇴직연금 시장에서 소외된 형국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퇴직연금은 한정된 금액으로 운용 수익을 창출해 노후 관리를 책임지는 자산인 만큼, 자본시장에서 장기 자산 배분과 고령 위험 보장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보험사가 공급자로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보험사가 제도적 제약에 갇혀 시장 경쟁력 확보를 위한 '무기'를 마련할 방법이 현재로써는 전무하다는 점이다. 공격적 자산운용의 증권사와 탄탄한 고객 인프라를 움켜쥔 은행 사이에서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해 고전하고 있는 모습이다.

    퇴직연금 시장에서 보험사의 손발이 묶인 이면에는 14년 전 퇴직연금감독규정 개정 당시 보험협회의 부족한 대관 역량과 금융당국의 정책적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012년 12월 감독규정 개정을 통해 보험사의 퇴직연금 자산과 보장성보험의 연계 운용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규정 개정 전까지만 해도 삼성화재 등 보험사들이 퇴직연금 적립금으로 보장성보험을 취급하며 시장의 호응을 이끌어낸 바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시도는 은행과 증권업계의 반발을 받아들인 금융당국의 조치로 무산됐다.

    결국 금융당국이 업권 간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일차원적인 규제 대못을 박아버린 셈이다. 이는 퇴직급여법상 퇴직연금의 목적을 '노후생활 보장'으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제도 방향성을 단순 '노후소득 보장'에만 맞추는 쪽으로 좁게 해석한 정책적 왜곡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시장 이권 다툼 속 회원사들의 방파제 역할을 할 생명·손해보험협회의 역량도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타 업권이 공정 경쟁의 필요성을 피력할 때, 협회는 '건강보장을 포괄한 종합적 노후 생활보장'의 가치를 논리적으로 대변하고 당국을 설득하는 '대관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국의 규제 추진 의지가 완강해 협회가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는 점을 고려해도, 이후 연구 조직 등 업계 내부에서 제도적 모순에 대한 문제 제기가 수없이 지속됐음에도 14년간 협회 차원의 당국과 소통 노력이 사실상 없었다는 점 역시 뼈아픈 대목이다.

    대한민국은 초고령 사회의 '건강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 늘어나는 노후 의료·주거비 부담에 퇴직연금 자산의 중도인출 및 해지로 인한 자금 누수는 매년 늘어나고 있는 형국이다. 만약 퇴직연금 운용 방법에 보장성보험 편입이 허용된다면, 가입자는 노후 자산의 누수 없이 사고 발생 시 보험금 수령을 통해 의료비를 충당할 수 있게 된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이미 글로벌 선진 시장은 은퇴자산의 증식과 위험보장이 통합된 구조를 성공적으로 가동하고 있다. 

    호주는 4조2000억 호주 달러에 달하는 퇴직연금 자산으로 보장성보험을 편입해 가입자가 저부담으로 위험 분산을 구현하도록 제도가 뒷받침한다. 그 결과 위험 발생 시 납부 보험료 대비 보험금 수령 가치가 8.4배에 달해 후생 증진 효과를 증명한 바 있다. 미국과 일본 역시 퇴직연금 자산을 각각 종신보험, 손해보험 가입 재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 보험업권 관계자는 "이는 시장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보험사들의 운용 효율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생보ㆍ손보협회는 이제라도 금융당국과 퇴직연금 관련 제도 개선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