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2016년 미국계 헤지펀드 운용사인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삼성전자에 인적분할을 제안했다. 삼성생명, 삼성물산, 삼성전자가 복잡하게 얽힌 지분 구조를 개편해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이고 주주 가치를 제고하라는 주문이었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하고, 지주회사는 삼성물산과 합병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제안은 실현되지 않았으나, 삼성전자에 대해 공개적으로 인적분할이 언급된 사례로 남았다.
2017년에 다시 한 번 인적분할 얘기가 나왔다. 파운드리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 처음 진출한 건 2005년이다. 그런데 조직 내에서 파운드리를 별도로 분리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되며 실제로 독자 사업부로 승격된 해는 2017년이다.
파운드리 사업 특성상 팹리스(설계) 고객사의 정보를 보호하고 애플, 퀄컴 등과 직접 경쟁하는 이해충돌 문제를 피하려면 TSMC처럼 철저히 독립된 '순수 파운드리' 법인이 돼야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2017년 사업부 독립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파운드리의 진정한 성장을 위해서는 아예 회사를 분할해 독립 법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언급이 꾸준히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같은 이유로 신약 개발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인적분할로 떼내면서 다시 한 번 삼성전자 파운드리 분사 가능성이 시장에 부상했다. 인적·물적분할 등 구체적인 방안이 공개되진 않았으나, 약 2년 전 삼성전자 내부에 분사 추진을 위한 태스크포스(TF)도 만들어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의 '인적분할 시나리오'는 2026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 이유는 사뭇 다르다. 과거에는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나 법적 규제 방어가 주된 목적이었다면, 이번에는 내부의 극심한 '성과급 갈등'과 이로 인한 노노(勞勞) 갈등이 불을 지폈다.
노사가 최근 진행한 협약을 통해 반도체 부문에 치중한 보상안이 마련된 점이 내부 갈등에 불을 지폈다. 같은 회사지만 사업부별로 보상 수준이 갈릴 것인 만큼 직원들의 사기 저하도 만만찮은 것으로 전해진다.
노조 내에서도 사업부별 이해관계에 따라 목소리가 갈리며 결속력이 흔들리자, 시장에서는 "사이클과 수익 구조가 완전히 다른 거대 사업부들을 한 지붕 아래 묶어두는 것이 과연 효율적이냐"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됐다.
사업부 간 감정의 골이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깊어지는 상황에서, 차라리 각 사업부를 인적분할해 철저한 '각자도생' 체제로 전환하고 시장에서 기업가치를 재평가받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얘기가 안팎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기업이 사업부를 떼어내는 방식에는 크게 물적분할과 인적분할이 있지만, 현재 한국 자본시장에서 사용가능한 카드는 사실상 '인적분할'이 유일하다. 물적분할은 핵심 사업부 이탈로 인한 '모회사 디스카운트'와 소액주주들의 막대한 피해가 사회적 문제가 됐다. 이후 금융당국의 강도 높은 주주 보호 규제가 도입됐고, 주주행동주의가 득세하는 지금의 자본시장 환경에서 국민주인 삼성전자가 물적분할을 시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DS부문과 DX부문을 인적분할할 경우, 기존 주주들은 분할되는 두 회사의 주식을 기존 지분율대로 똑같이 배정받게 된다. 주주 가치 훼손 논란에서 자유로우면서도 사업부 간의 재무적, 조직적 고리를 완전히 끊어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셈이다. 분할 구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주주 입장에선 반도체와 비반도체 부문 등이 분할한다면 업황과 실적에 따라 각기 다른 투자 전략을 취할 수 있다.
물론 삼성전자가 당장 인적분할을 추진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반도체별, 사업부별 업황에 따라 상호 헷지를 해주는 기능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인적분할 단어 자체가 거론되는 것은 이번 성과급 이슈로 발생한 갈등의 골이 생각 이상으로 깊고, 또 앞으로 완전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라는 것을 회사와 주주, 시장 모두가 공감했기 때문이다.
실제 분할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이질적인 사업부가 묶여 있는 상태에서 대규모 투자와 운영, 성과급을 분배하는 구조를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삼성전자의 고민은 더 커질 전망이다. 글로벌 기업과의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성과급을 둘러싼 조직 내부의 파열음, 그로 인한 인적분할 시나리오는 삼성전자의 펀더멘털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의 방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