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1만피 '덫'에 걸린 국민연금
입력 2026.05.28 07:00

Invest Column
반도체 '폭락 사이클' 경고음에도 꼼짝 못해
스벅 마케팅 논란에 이마트 주주권행사 압박도
장기 수익률 극대화 위한 유연성 가져야

  • 최근 AI 메모리 산업을 둘러싼 낙관론 뒤에는 사이클 변화에 따른 급격한 조정 가능성이라는 경고음이 공존한다. 과거 반도체 빅사이클이 꺾일 때마다 코스피 전체가 휘청였던 경험이 있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형주에 대한 비중을 일시적으로 줄였다가 차후 다시 되사는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해야 할 타이밍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움직이지 못한다. 국내 주식 보유 비중이 허용치를 10%포인트 이상, 전술적ㆍ전략적 허용치까지 감안해도 5%포인트 이상 초과했다. 지금 매도에 나서는 것은 시장 전체에 '매도 신호'를 주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더더군다나 '1만피' 전망이 나오는 시점에선 가당치 않을 테다.

    자산 배분 원칙을 지키기 위한 리밸런싱이 곧 코스피의 폭락을 부르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전문적인 운용 판단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연금은 이제 시장의 흐름을 읽고 투자하는 주체가 아니라, 시장의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스스로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비자발적 장기 보유자'가 돼버렸다.

    이에 시장에선 국민연금이 코스피 상승장이라는 '덫'에 걸려버렸다고 얘기한다. 코스피 하락장의 책임을 오롯이 질 수 없기에 주식을 팔아야 할 때 팔지 못하고 계속 보유해야 하는 딜레마다. 

    기업 거버넌스 이슈도 국민연금의 운용 경직성을 키우고 있다.

    최근 가장 뜨거운 정치적 논란거리인 스타벅스코리아(SCK컴퍼니)의 무리한 마케팅 이슈는 이제 이마트의 부진한 실적과 과도한 차입금 등 경영 실책 책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2월 이마트 주식 28만9818주를 추가 매수하며 지분율을 기존 7%대에서 8.94%로 확대했다. 이에 시장과 여론은 국민연금에 이마트에 대해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쓰라고 압박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특정 기업의 경영에 개입하라는 정치적·사회적 압박이 거세지면 국민연금 운용본부는 수익률보다 여론의 향배를 먼저 살필 수밖에 없다. 경제적 판단의 영역에 정무적 판단이 개입되는 순간, 1800조원의 기금은 효율성을 잃고 사회적 논란의 방패막이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국민연금의 최대 고민은 기금 고갈을 어떻게 늦추느냐다. 국민연금 기금 소진 시점은 지난해 연금개혁으로 당초 2056년에서 2064년으로 8년 늦춰졌다. 여기에 당시 정부는 기금투자수익률 목표치를 기존 연평균 4.5%에서 5.5%로 1%포인트 높이기로 했는데, 이 경우 소진 시점이 추가로 7년가량 연장될 것으로 추계했다.

    국민연금은 28일 향후 5년간 기금 운용 방향을 정하는 중기자산배분안을 확정한다. 코스피 랠리로 국내주식 비중이 목표치를 크게 웃도는 가운데, 6월 종료 예정인 리밸런싱 유예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핵심 쟁점이다. 이번 결정은 하반기 국내 증시 수급은 물론 국민연금의 중장기 수익성과 안정성을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외부의 압박에 휘둘리는 의사결정 체계로는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국민의 노후를 지킬 수 없다. 기금 소진 시기를 조금이라도 더 늘리려면 투자 전문가로서 국민연금의 유연함이 전제가 돼야 한다. 국민연금의 투자 결정과 주주권 행사는 '장기 수익률 극대화'라는 연금의 본연 목적에 부합할 때 정당성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