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금융 과제에 주목받는 '바젤3'…우리나라만 유독 '엄격 적용'?
입력 2026.05.29 07:00

'바젤3' 규제 환경에서 자본규제 완화 검토하는 당국
"글로벌 완화 기조인데…한국만 엄격 적용" 불만도
2020년 선제 도입…"코로나 땐 혜택, 지금은 부담"
비기축통화국 특성상 보수적 대응 불가피 한계도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당국이 실물경제 활성화를 위해 자본규제 완화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은행권 현장에서는 '바젤3' 규제 하에서 한계가 있다는 '회의론'도 나온다. 경기 부양을 위해 규제 빗장을 푸는 미국·유럽과 달리, 우리 당국만 국제 기준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불만도 있다.

    하지만 당국의 보수적인 기조 뒤에는 '대외 신인도 방어'라는 사정이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기축통화국이 아니기 때문에 글로벌 평가의 작은 균열이 금융 시스템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당국으로서도 현장의 답답함을 알면서도 보수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비기축통화국의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은행연합회, 은행들은 바젤3 규제 체제 하에서 생산적금융 활성화를 위해 자본규제를 유연화할 수 있는 추가적인 과제들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대책만도 주식 위험가중치 완화, 운영리스크 손실 인식 합리화를 비롯해 구조적 외환포지션 승인 대상 확대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조치들이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다는 지적도 나온다. 바젤3 최종안은 은행이 보유한 자산별로 위험가중치(RW)를 세부적으로 설정하고 표준방법을 강제하는 구조다. 결국 규제 설계 자체가 위험가중치가 낮은 가계대출 등으로 자금이 쏠리도록 유도하는 구조로 흘러가게끔 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은행권이 현장에서 아무리 실효성 있는 규제 완화 아이디어를 던져도, 바젤3 최종안의 뼈대와 성격상 당국이 수용해 주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금융당국이 바젤3를 지나치게 일찍 도입했거나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터져 나온다. 실물 경제 회복을 위해 은행이 실물경제 자금공급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전 세계적으로 강해지고 있지만, 이를 자국 규제에 어떻게 녹여낼지를 두고 국가별 셈법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은행권의 '조기 도입 불만' 뒤에는 간과된 배경도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지난 2020년 코로나19 위기가 터졌을 당시, 중소기업 등 실물경제 지원 여력을 늘리기 위해 바젤3 최종안 중 일부(신용리스크 개편안)를 국제 권고 시점보다 앞서 조기 도입했다. 

    기업대출의 위험가중치 등을 대폭 낮춰주는 이 개편안 덕분에 당시 국내 은행들과 금융지주들은 BIS비율이 각각 평균 1.91%포인트, 1.11%포인트가량 상승하는 큰 혜택을 누렸다. 코로나 국면에서 은행들이 자본 비율 하락 걱정 없이 대출 공급을 늘릴 수 있도록 당국이 바젤3 도입을 먼저 열어줬던 셈이다. 

    다만 이후 시간이 흘러 자본을 더 쌓아야 하는 나머지 규제들이 순차적으로 들어오자 은행권이 "우리가 너무 빨리 도입해 고통받고 있다"는 불만을 내비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당장 눈앞의 글로벌 흐름이 완화 기조로 흐르다 보니 은행권 내부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는 모양새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은 은행의 자본 적립 부담을 대폭 늘리는 내용의 바젤3 최종안을 반영한 규제안의 규제수준이 너무 높다며 지난 3월 자본금 부담을 기존 요구치보다 대폭 낮춰주는 수정 규제안을 제출하며 규제 강도 완화에 나섰다. 미국의 이 같은 행보에 눈치를 보던 유럽연합(EU)과 영국 금융당국 역시 바젤3 최종안의 일부 핵심 규제 도입 일정을 늦추며 속도 조절에 나선 상태다.

    그러나 우리나라 금융권은 미국이나 영국처럼 규제 스케쥴과 내용을 마음대로 뒤흔들 수 없는 핵심 배경이 있다. 바로 국가별 '대외 신인도'의 차이 때문이다.

    BIS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는 매년 전 세계 회원국을 대상으로 국제 기준을 잘 지키고 있는지 이행 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미국 대형 은행들은 자체적인 대외 신인도가 워낙 높아 평가 등급이 조금 낮게 나와도 시장에서 버틸 체력이 있지만, 한국 은행들은 다르다.

    국제 기준을 무시했다가 자칫 국제 평가에서 부정적인 성적표를 받게 되면, 국내 은행들의 해외 자금 조달 비용이 급증하는 등 금융 시스템 전체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당국이 규제 완화 요구에 보수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이 같은 제약 속에서 현실적인 돌파구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당국은 바젤 표준안을 직접 손대기 어려운 만큼, 은행들의 내부 신용평가모형 재승인 심사 등을 신속히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은행권도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추가 자본규제 완화 방안을 지속적으로 건의하고 있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은행을 평가할 때 해당 국가의 규제가 바젤3 규정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가장 먼저 들여다본다"라며 "기축통화국인 미국 등은 국제 기준을 다소 비껴가도 시장에서 버틸 체력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바젤3의 큰 틀을 벗어나는 독자적인 규제 완화를 추진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바젤3 규제 정합성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하에서 추가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자본 규제가 있는지 당국과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