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수순 카카오, 노조는 경영진을 왜 신뢰하지 못할까
입력 2026.05.29 13:17

두나무 지분 팔고 게임즈 넘기고…AI 투자용 구조조정
카톡 개편 논란·홍민택 퇴진까지…누적된 내부 불만 폭발
"미래 투자 위해 희생" vs "또 미래 얘기냐" 노사 인식차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카카오가 창사 이후 처음으로 본사 파업 위기에 직면했다. 표면적인 쟁점은 성과급과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산입 여부이지만 업계에선 이번 사태를 단순한 임금협상 결렬로 보지 않는다. 최근 수년간 이어진 AI 중심 사업 재편과 구조조정 과정에서 누적된 내부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카카오는 최근 공격적인 사업 확장 전략을 접고 AI 중심의 '선택과 집중'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직원들이 경영진의 방향성과 보상 체계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카카오가 확보한 현금과 구조조정 성과보다, 구성원들이 체감하는 미래 비전이 더 약해졌다는 평가도 지배적이다. 

    카카오 본사 노사는 이달 27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서 열린 2차 조정회의에서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노조는 이미 쟁의권을 확보한 상태다. 카카오페이,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디케이테크인, 엑스엘게임즈 등 계열사 노조 역시 파업 찬반 투표를 가결하며 공동 투쟁 가능성도 거론된다. 예정대로 파업이 진행될 경우 카카오 본사 기준으로는 창사 이후 첫 사례가 된다.

    현재 노사 갈등의 직접적인 쟁점은 성과급 규모와 RSU의 성과급 산입 여부다. 노조는 지난해 영업이익의 13~14% 수준을 성과급 재원으로 요구하고 있다. 반면 회사는 RSU를 포함한 보상 체계를 제시하며 맞서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갈등을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카카오는 올해 들어 그룹 차원의 구조조정을 빠르게 진행해 왔다. 올해 초 그룹 컨트롤타워인 CA협의체를 기존 위원회 중심 조직에서 그룹투자전략실, 그룹재무전략실, 그룹인사전략실 중심의 '3실 4담당' 체제로 개편했다. 그룹 차원의 투자와 재무, 인사 기능을 강화하는 대신 조직은 한층 슬림하게 만들었다.

    대관 조직에도 변화가 있었다. 기존 권대열 ESG위원장이 맡아오던 대관 기능은 신설된 PA(Public Affairs) 조직으로 이관됐고, 더불어민주당 보좌관 출신인 이연재 부사장이 총괄을 맡았다. 업계에서는 플랫폼 규제와 정치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 재정비로 해석했다.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도 속도를 냈다. 카카오는 올해 초 포털 다음 운영 조직을 분리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어 카카오헬스케어 경영권을 정리했고, 지난 3월에는 카카오게임즈 경영권을 일본 라인야후 측에 넘기는 거래를 추진했다. 카카오는 2대 주주로 남지만 게임 사업은 사실상 비핵심 자산으로 분류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최근에는 카카오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하던 두나무 지분 대부분을 하나은행과 한화투자증권에 매각하며 약 1조6000억원 규모의 현금을 확보했다. 최근 1년 동안 다음, 헬스케어, 게임즈 등 비핵심 자산을 정리하고 두나무 지분을 현금화하며 AI 투자 재원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과거 카카오가 공격적으로 사업을 늘리고 계열사를 상장시키던 회사였다면 지금은 비핵심 사업을 정리해 AI 투자 재원을 마련하는 회사로 바뀌고 있다"며 "확장의 카카오에서 리빌딩의 카카오로 전환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실제 카카오 내부에서는 최근 1~2년간 그룹 의사결정 구조 자체가 크게 달라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과거에는 김범수 창업자가 직접 주요 투자와 인수합병(M&A)을 주도하며 외형 확장을 이끌었다면, 최근에는 AI 중심 재편과 재무 효율화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일부 시장 관계자들은 최근 카카오의 주요 의사결정이 투자 확대보다 자산 매각과 현금 확보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게임즈 매각, 두나무 지분 처분, 비핵심 사업 정리 등이 모두 같은 흐름이라는 분석이다.

    문제는 직원들이 이 과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 안팎에서는 수년간 이어진 계열사 투자 실패와 구조조정 부담을 결국 구성원들이 떠안고 있다는 불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카카오브레인과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카카오헬스케어 등 AI·신사업 계열사에 대규모 자금이 투입됐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지적도 이어져 왔다.

    노조가 최근 성과급 문제와 함께 '신뢰 회복'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실제 노조는 조정 결렬 직후 입장문에서 "단순한 임금 차이 문제가 아니라 회사와 구성원 간 신뢰가 무너진 결과"라고 주장했다.

    물론 회사 측은 정반대의 논리를 내세운다. 카카오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노조가 요구하는 성과 보상안 규모는 영업이익 기준으로 회사 경영에 큰 부담이 되는 수준"이라며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주주 가치를 높여야 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감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결국 회사는 AI 투자와 미래 성장, 주주가치를 이야기하고 있고 노조는 공정한 성과 배분과 신뢰 회복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카카오톡을 둘러싼 논란도 내부 분위기를 악화시킨 요인으로 꼽힌다. 카카오는 지난해부터 카카오톡 대규모 개편을 추진했지만 이용자 반발이 이어졌다. 최근 카카오톡 개편을 주도했던 홍민택 최고제품책임자(CPO)가 퇴진한 가운데 정신아 대표는 직접 사내 공지를 통해 사과 메시지를 냈다.

    동시에 카카오는 기존 프로덕트 조직을 카카오톡과 비즈니스 조직으로 다시 분리하고 '유저 퍼스트(User First) TF'를 신설하기로 했다. 시장에서는 사실상 카카오톡 개편 과정에 대한 내부 반성이 반영된 조직 개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투자자들의 시선도 차갑다. 카카오는 올해 1분기 기준 역대 최대 수준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주가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최근 52주 신저가를 기록했고 지난해 6월 기록한 7만원대 고점 대비 40% 이상 하락했다. 다올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 등 주요 증권사들도 최근 목표주가를 잇달아 낮췄다.

    시장에서는 실적보다 AI 수익화 여부를 더 중요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자체 AI 서비스 '카나나'와 오픈AI 협업 서비스 등을 앞세워 AI 에이전트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증권업계에서는 광고와 커머스, 결제 매출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성과가 확인돼야 한다는 시각이 여전히 우세하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카카오가 성장만 보여주면 시장이 프리미엄을 줬지만 지금은 AI가 실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주주도, 직원도, 시장도 아직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의 위기는 파업 자체가 아니다. 시장은 이미 카카오의 AI 전략을 의심하고 있고, 직원들은 그 전략을 수행하는 경영진을 의심하고 있다.

    두나무 지분을 팔아 1조6000억원을 확보하고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는 작업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회사 안에서는 "왜 이 길을 가야 하는가"에 대한 공감대가 약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성장과 확장의 상징이었던 카카오는 이제 구조조정과 선택과 집중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번 파업 위기는 성과급 분쟁이라기보다 AI 리빌딩 과정에서 드러난 신뢰 위기의 결과물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AI 전환을 위한 자금 조달과 사업 재편보다 더 어려운 과제는, 그 미래를 구성원들에게 납득시키는 일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