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간판 달면 폭등...'유동성 기대감'에 거품 우려 소부장
입력 2026.06.01 07:00

코스닥 소부장 종목 '랠리'…정책·AI 수혜 '선베팅' 증가
맹목적 '반도체 프리미엄' 경계…실적 지속성 유지 '관건'
제주반도체, 수급 변동성 '뚜렷'…하루새 주가 11% 급락
서진시스템, 이익 체력 '시험대'…투자 비용 통제 '분수령'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반도체 주가 급등세가 국내 코스닥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연초까지만 해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매수세가 집중됐지만, 최근 이들 '빅2'의 주가 상승폭에 대한 부담이 커지며 소부장으로 유동성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증시에 몰려있는 역대급 자금이 비교적 시총이 작은 코스닥 소부장 기업으로 몰리며 벌써부터 주가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 실적은 물론, 향후 실적 기대치에 비해 주가가 과도하게 급등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어서다. 실적 기대감에 더해 국민성장펀드, 생산적금융 등 정책자금 유입 기대감이 일종의 가격 거품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2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하단 밸류체인을 대표하는 코스닥 기업 제주반도체와 서진시스템의 주가는 올해 들어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특히 제주반도체는 최근 한 달간 주가가 79.97% 상승하며 시장을 술렁이게 했다.

    증권가에서는 두 기업 모두 반도체 초호황에 힘입어 개인과 기관의 기대감을 선반영하며 주가를 밀어 올린 것으로 분석한다.

    메모리 반도체 팹리스 기업인 제주반도체는 시장 기대치를 웃돈 1분기 실적 지표와 AI(인공지능) 기술 확산 흐름 속 저전력 반도체 사업 경쟁력을 앞세워 개인·기관 자금을 빠르게 흡수했다.

    현재 삼성자산운용의 'KoAct K수출핵심기업 TOP30 액티브 ETF' 내 제주반도체 편입 비중은 9.18%다. 이는 국내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삼성전자(9.27%) 보유 비중과 유사한 수준으로, SK하이닉스(15.14%)와 함께 펀드 내 최상위권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 주가 급등기에는 한때 삼성전자 보유 비중을 추월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삼성자산운용 관계자는 "수출 데이터를 기반으로 종목을 선별한 결과, 제주도 지역 반도체 수출 데이터 증가율이 타 반도체 기업들보다 높게 나와 투자 비중을 높게 유지한 것"이라며 "현재 환율과 1분기 확인된 수요 호조를 감안하면 제주반도체의 실적 컨센서스 달성 가능성은 높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다만 업계에서는 1분기 실적과 수익성 성장 전망만으로 최근 제주반도체 주가 상승폭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생태계 확장 기대감에 '국민성장펀드' 출시라는 정책 금융 모멘텀이 겹치며 수급을 자극했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반도체 소부장 기업 등 유망 중견·중소 기업 육성을 위해 조성한 국민성장펀드는 지난 22일 출시 30분만에 완판되며 시장의 관심을 끌은 바 있다.

    실제로 제주반도체 주가와 거래대금 추이를 살펴보면, 1분기 실적 발표일인 지난 14일을 기점으로 거래대금 규모가 요동친 이후 최근 주가 탄력이 급격하게 둔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난 14일 주가가 종가 기준 전일 대비 28.35% 급등세를 기록한 이후 21일(전일 대비 24.26% 상승)까지 등락을 거듭하며 랠리를 이어갔지만, 단기 고점을 확인한 이후 상승 탄력이 줄어들었다.

    지난 26일 종가 기준 제주반도체의 주가 상승폭은 전일 대비 0.17% 상승에 그쳤다. 이는 같은기간 반도체 동일업종 평균 상승률이 3.63%에 달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어 지난 27일 종가는 전일 대비 11.61% 급락한 10만51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편 '소부장 랠리'의 다른 한 축으로 자리매김한 서진시스템 역시 최근 한 달간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지난 26일 연중 최고가인 7만8600원을 경신했다. 올해 초 2만3960원 연중 최저점을 찍은 주가가 6개월도 안 된 기간 228% 넘게 급등한 셈이다.

    이는 글로벌 장비사향 반도체 부품 부문 매출이 분기 최초로 1000억원을 돌파하는 등 뚜렷한 외형 성장세를 증명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에 더해 지난 2024년 이후 주가 벨류에이션 하방 요인으로 작용해 온 대규모 '오버행 우려(발행주식 총수 47.1% 상당 CB 전환 및 3만2000원 풋옵션)가 올해 초 해소된 점이 유동성에 불을 지핀 것으로 업계는 관측한다.

    다만, 서진시스템은 반도체 부문의 성장세를 제외하면 타 사업 부문 수주 변동성에 따라 전체 이익 체력이 훼손되는 실적 하방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다는 업계 우려가 나온다. 

    서진시스템이 공시한 확정 재무제표에 따르면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99% 급감한 11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주력 사업인 ESS(에너지저장장치) 부문의 공급망 불확실성 영향으로 풀이된다. 미국발 관세 리스크 여파로 최종 고객사 프로젝트들이 연쇄적으로 지연되면서 지난해 ESS 매출액이 전년 대비 37.5% 급감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주요 고객사에 차세대 신제품을 납품하고 북미 현지 조립공장 3개를 순차적으로 가동하는 만큼 외형 회복 기대감은 고조되고 있지만, 증권가에서는 해외 투자 비용 통제 불확실성을 실적 지속성 측면의 리스크로 꼽는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모든 제조업이 그렇듯 해외에 나가면 현지 설비 담당자 교육이라든지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항상 발생한다"며 "투자하는 장비들이나 설비들이 문제없이 돌아가게 하는 등 비용 불확실성을 얼마나 잘 통제하느냐가 이익 지속성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실적보다 미래 가치에 투자하는 코스닥 장세 특성상, 반도체 호황의 수혜를 입고 있는 코스닥 기업의 펀더멘탈 검증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미국 데이터 저장장치 제조업체 시게이트의 최고경영자(CEO)의 발언 등으로 업황 정점 우려가 부각되는 만큼, 향후 소부장 중견기업의 주가 변동성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그간 코스닥 소부장 종목 랠리는 단기 실적 지표보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충 등 향후 2~3년 뒤 도출될 중장기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을 기반으로 주가가 먼저 움직이는 대안적 성격이 있다"며 "단기간에 AI 관련 투자 위축이 나타날 가능성은 작지만 구조적 실적 성장을 입증하지 못하면 코스닥 소부장 기업 랠리에 대한 의구심과 변동성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