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제일' 삼성전자의 박사들이 떠난다
입력 2026.06.02 07:00

성과급 역풍에 흔들리는 인재 생태계
임단협 타결에도 비메모리 소외감 팽배
해외연수 등 인재육성 시스템까지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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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삼성전자가 대규모 성과급 재원을 풀며 임금·단체협약 갈등 봉합에 나섰지만, 내부 분위기는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특히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 비메모리 사업을 중심으로 고급 연구인력들의 이탈 움직임이 감지된다. '인재제일(人材第一)'을 기업 핵심 가치로 내세운 삼성이 정작 그 인재를 잃어가고 있다는 역설적 상황에 처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노사 협상을 통해 DS부문에는 사업 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하는 특별성과급 제도가 신설됐다. 가전과 모바일 사업을 담당하는 DX부문은 특별성과급 대상이 아니며, 600만원 상당의 자사주가 지급될 예정이다. 

    겉으로는 갈등이 일단락된 모습이지만, 내부에서는 "결국 메모리 중심 보상체계"라는 반응이 크다. 특히 적자가 이어지고 있는 파운드리사업부와 시스템LSI사업부 등 비메모리 부문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소외감이 상당하다는 후문이다.

    메모리사업부 직원은 1인당 평균 5~6억원의 특별성과급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파운드리사업부와 시스템LSI사업부는 적자가 이어져 1억6000만원 안팎에 그칠 전망이다. 이들 내부에선 "박사 학위까지 받고 들어왔는데 메모리 부문 고졸 생산직 직원보다 성과급이 훨씬 적다", "왜 박사까지 했는지 모르겠다"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온다.

    삼성전자 DS부문의 한 직원은 "메모리 사업 회복으로 삼성전자 전체 실적은 살아났지만, 비메모리 사업부 인력들은 여전히 적자 사업부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노조 논의 과정에서도 메모리 중심 논리가 강하게 작동했다는 내부 불만이 있다"고 말했다.

    파운드리사업부와 시스템LSI사업부 연구인력들의 이직 시도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전언이다. 특히 박사급, 수석급 인력 일부는 경쟁사인 SK하이닉스 이직을 검토하거나 지원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회자되고 있다. 삼성전자 사내 복지몰에서 'SK하이닉스 입사 대비 문제집'이 인기 도서 목록에 올라오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삼성전자 박사급 인력들이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장기 성장 기대를 갖고 있었다면, 최근에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며 "중간급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경쟁사나 소부장 협력사로 이직하는 등 내부 피로감이 누적된 상태"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오랜 기간 공들여 구축해 온 인재육성 시스템에도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는 매년 인재육성 주간인 'STaR Session(스타세션·Samsung Talent Review)'을 통해 직원들의 중장기 성장 경로를 설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경영전문대학원(MBA), 학술연수, 지역전문가, 직무전문가 과정은 물론 해외대학교 석·박사 학위 취득 과정까지 지원한다. 기존 연봉 외에도 학비와 체류비 등을 지원하는 삼성 내부 대표 엘리트 육성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하지만 최근 성과급 체계가 오히려 해당 프로그램의 유인을 떨어뜨리고 있다. 초과이익성과급(OPI) 산정 기준이 국내 근무 개월 수 중심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해외 연수나 학위 과정에 참여할 경우 성과급이 발생하기 않거나 크게 줄어드는 구조다.

    실제로 해외 연수 중이던 일부 인력들이 조기 귀국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연수를 중단하면 회사에서 지원받은 돈을 반납해야 하지만, 반납 금액보다 포기하게 되는 성과급 규모가 더 크다는 이유에서다. 내년도 파견 및 연수 인력을 올해 선발해야 하는데 예년보다 지원 열기가 크게 떨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전자 DX부문의 한 직원은 "석·박사 지원과 글로벌 연수는 회사가 장기 경쟁력을 위해 투자하는 영역인데, 현재 보상 체계에서는 오히려 성과급 불이익 요소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별도 보상 체계를 만들어도 부족할 판에 연수 자체가 기회비용이 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이번 논란이 단순한 성과급 갈등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보고 있다. 삼성전자가 내세워온 '인재제일' 기조와 실제 보상 체계 간 충돌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점에서다. AI 반도체와 첨단 공정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핵심 연구인력 이탈은 향후 미래 기술 경쟁력과 직결된다.

    앞의 투자업계 관계자는 "'삼성맨'이라는 상징성과 성장 기회로 인재를 붙잡아왔는데 최근에는 그 상징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 더 뼈아픈 부분"이라며 "성과급 논란이 일회성 갈등을 넘어 조직문화와 인재 전략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