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2026년 6월 1일, 도쿄 증시의 역사가 바뀌었다. 2003년 12월 이후 22년간 일본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독점해 온 토요타자동차가 마침내 소프트뱅크그룹(SBG)에 왕좌를 내줬다.
이는 단순히 시가총액 순위가 바뀐 사건이 아니다. '모노즈쿠리(장인정신)'로 상징되는 일본의 전통적인 제조업 서사가 저물고, 이제는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이 주도하는 '새로운 경제 질서'로 일본의 혈류가 완전히 바뀌었음을 알리는 상징적 이정표라는 평가다.
최근 소프트뱅크가 프랑스에 최대 750억유로(약 132조원)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발표하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ARM과 오픈AI를 필두로 AI 생태계의 핵심 요충지를 선점한 소프트뱅크의 전략이 '실질적인 가치'로 평가받기 시작한 것이다.
22년간 정상을 지켜온 토요타는 갈림길에 서 있다. 물론 토요타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효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은 이제 제조업의 공정 효율보다 AI가 만들어내는 '지능형 생산성'에 더 높은 프리미엄을 부여한다.
현대차와 같은 후발 주자들이 로봇 기술을 단순한 제조 수단이 아닌, 자동차와 인간을 연결하는 '피지컬 AI 플랫폼'으로 규정하며 시장의 기대를 선점하는 동안, 토요타는 로봇 기술을 내부 효율화라는 울타리 안에 가뒀다. 시장이 토요타의 주가를 최근 부진하게 평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 주식시장은 이미 AI와 로봇을 주도주로 받아들였다. 현대차는 보스턴다이내믹스 등을 통해 로봇 기업으로서의 밸류에이션 리레이팅(Re-rating)을 꾀하고 있다. 기술을 플랫폼으로 치환하는 한국의 '속도전'은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일본은 그간 전통 제조업의 견고함이 오히려 새로운 산업으로의 전환을 늦추는 걸림돌이었다. 이번 소프트뱅크의 1위 등극은 일본 역시 이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일본 언론과 현지 관계자들은 이번 현상을 두고 "토요타의 시대가 가고, 소프트뱅크가 구축한 AI 인프라가 일본의 새로운 심장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일본의 기업들도 이제는 '제조업의 강점'과 'AI 인프라'를 어떻게 결합하느냐가 새로운,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숙제가 된 것이다.
앞으로의 글로벌 경쟁력은 '누가 더 많은 상품을 파느냐'가 아니라 '누가 AI를 실제 산업 현장에 얼마나 빠르게 녹여내느냐'에 달렸다. 소프트뱅크가 구축하는 AI 데이터센터는 일본 기업들이 글로벌 표준 AI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는 인프라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소프트뱅크의 앞길에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여전히 부채 비율과 AI 투자처의 높은 의존도를 경계한다. 그러나 시장이 22년만에 토요타를 밀어내고 소프트뱅크를 선택했다는 것은 일본 자본이 '과거의 안정'보다는 '미래의 불확실한 성장'에 베팅하기로 했음을 의미한다.
현대차가 로봇과 모빌리티 융합으로 한국형 미래를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일본은 소프트뱅크를 앞세워 '제조업 기반의 AI 제국'을 도모하려고 할 것이다. 토요타의 22년 왕좌가 저문 자리에 선 소프트뱅크가 단순한 '거품'으로 남을지, 아니면 일본 경제를 재도약시킬 '새로운 엔진'이 될지 우리도 유심히 지켜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