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보험업계에서는 한국투자금융그룹(이하 한투)을 바라보며 "도대체 뭘 사고 싶은 걸까"라는 말이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BNP파리바카디프생명, 롯데손해보험, 예별손해보험에 이어 최근 매각 절차가 본격화된 KDB생명까지. 시장에 나온 주요 보험사 매물마다 한투의 이름이 유력 원매자로 거론되고 있어서다.
KDB생명 매각에서도 딜 그 자체보다 한투의 행보에 관심이 먼저 쏠린다.
한투가 예비입찰에는 참여했지만 실제로 어느 정도 진정성을 갖고 인수전에 임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평가다. 주요 보험사 매물마다 빠짐없이 이름이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거래를 성사시킨 적은 없는 탓이다.
실제로 한투는 지난해부터 보험 M&A 시장의 '단골손님'으로 활약해 왔다. 지난해 카디프생명 실사를 진행한 데 이어 롯데손보를 검토했고, 예별손보 매각 입찰에는 단독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비록 예별손보는 한투의 단독 입찰로 유찰됐지만, 당시 한투가 제시한 가격은 시장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한투가 원하는 보험사의 기준은 무엇일까.
최근 한투 내부 기류는 과거와 다소 달라진 분위기다. 한때는 "비용을 더 주더라도 제대로 된 보험사를 인수하자"는 기조가 강했다. 시장에서 카디프생명이 최우선 후보로 거론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카디프생명은 규모는 작지만 킥스(K-ICS) 비율이 253%로 권고기준(130%)을 웃돌고 자본총계도 플러스(+)를 유지해 인수 후 추가 자본확충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경영진 전반에서 보험사 밸류에이션에 거품이 끼어있다는 인식이 짙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주요 매물들의 재무 상황을 보면 한투의 장고 이유가 드러난다. 각 매물마다 성격은 다르지만, 카디프생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인수 이후 추가 자본확충이나 정상화 작업이 필요한 상황이다.
KDB생명의 경우 지난해 5월 산업은행이 5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나서며 자본잠식은 해소했으나 여전히 추가 자본확충 압박을 받고 있다. 현재 시장에선 산업은행이 5000억원을 추가 증자하고 원매자가 매각대금 등으로 5000억원을 투입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하지만 이 같은 수혈에도 정상화까지 얼마나 오랜 시일이 걸릴지 불확실한 만큼, 한투가 이 재무적 리스크를 고스란히 떠안을지는 미지수다.
완전 자본잠식 상태인 예별손보는 상황이 더 복잡하다. 가교보험사 특성상 영업 채널이 전무해 단순 자본 투입만으로는 정상화를 장담하기 어렵다. 업계에서는 예별손보 정상화에만 1조 원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매도인인 예금보험공사가 가격을 대폭 낮추거나 파격적인 지원책을 제시해야만 거래가 성사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KDB생명과 예별손보 같은 매물은 일반적인 경영권 지분 거래와 결이 다르다. 시장에서는 "얼마에 팔 것인가"보다 "매도자가 부실 부담을 얼마나 덜어줄 것인가"를 핵심 쟁점으로 본다.
롯데손보 역시 자본총계 6135억원으로 주요 매물 가운데 가장 큰 자기자본 규모를 갖췄지만 자본확충 이슈에서는 자유롭지 않다. 기본자본 기준 K-ICS 비율이 지난해 말 마이너스(-20.9%)를 기록하며 자본확충 요구를 받고 있어서다. 대주주인 JKL파트너스는 지분 매각 이후 신규 대주주가 자본을 확충하는 방안을 경영개선계획에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매각이 성사되더라도 새 주인이 적게는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조 단위 규모의 증자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투 내부에서는 결국 '얼마나 싸게 살 수 있느냐'가 인수 검토의 핵심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전언이다. 매도자 측으로부터 향후 정상화 비용에 상응하는 지원책을 받아내야만 리스크 대비 실익이 생긴다는 계산이다. 보험사를 인수하려는 목적 역시 보험영업 자체보다는 장기성 보험자산을 활용한 운용 비즈니스 확대에 있는 만큼, 최대한 낮은 가격에 자산 규모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졌다는 설명이다.
다만 가격만 보고 접근하기에도 고민은 남는다. 예컨대 태광그룹은 이미 흥국생명·화재 등 보험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어 인력, 시스템, 영업 조직 측면에서 KDB생명이나 예별손보를 흡수해 시너지를 낼 여력이 있다. 반면 보험업 운영 경험이 제한적인 한투는 전무하다시피 한 영업 채널(예별손보)과 조직을 바닥부터 다시 구축해야 하는 리스크를 지게 된다.
이 때문에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 여전히 카디프생명이 한투에 가장 실속 있는 매물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재무 상태가 상대적으로 양호하고 인수 이후 부담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내부 기조가 '좋은 회사'보다 '할인 폭이 큰 회사'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은 변수다.
현재 보험 M&A 시장은 매도자가 아닌 매수인이 주도권을 쥔 국면이다. KDB생명과 예별손보 거래의 성패 역시 산업은행과 예금보험공사가 어느 정도까지 눈높이를 낮출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많다.
반면 한투 입장에서는 서두를 이유가 없다. 복수의 매물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저울질하며 협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 안팎에서 "한투의 진짜 목적지가 어디냐"는 의문이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매도자와 매각 자문사들 입장에서는 한투의 장고(長考)가 피로감을 키우는 요인일 수 있다. 그러나 '느긋한 바이어'인 한투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쇼핑을 끝낼 이유가 없어 보인다는 평가가 아직은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