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가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재무 부담을 다시 자극하고 있다. 최근 이란 사태 이후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하면서 국내 전력도매가격(SMP) 역시 시차를 두고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SMP 상승은 한전의 전력 구입비 증가로 직결되는 만큼, 지난해부터 이어진 실적 개선 흐름에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한전채 발행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면서 시장에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에너지고속도로 사업과 국민성장펀드 활용 가능성이 향후 한전의 재무 부담을 완화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이 국내 SMP에 반영되기까지는 통상 5~6개월가량이 소요된다. 최근 중동 정세 불안으로 상승한 천연가스 가격 영향이 이르면 올해 2분기 이후부터 국내 전력시장에 반영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SMP는 발전사들이 생산한 전력을 한전이 구매하는 기준 가격으로 SMP가 상승하면 한전이 부담해야 하는 전력 구입비 역시 늘어난다.
최근 몇 년간 한전 실적은 국제 에너지 가격 흐름에 크게 좌우돼 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등했던 연료비 부담이 완화되면서 지난해부터 수익성이 개선됐지만, 에너지 가격이 다시 상승 국면에 진입할 경우 재무 정상화 속도가 둔화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차입 부담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 한전은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총부채가 206조3779억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차입금 규모만 128조2111억원이다. 하루 평균 이자 비용은 약 114억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채권시장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한전은 올해 3월까지 한전채 순상환 기조를 유지했지만 4월 들어 8800억원 규모 순발행으로 전환했다. 5월에도 4400억원가량 순발행을 기록하며 다시 자금 조달을 확대하는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에너지 가격 상승 가능성과 대규모 전력망 투자 수요를 고려하면 한전채 발행 증가세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2027년 말 예정된 사채발행한도 정상화는 한전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현재 한전은 특례 규정에 따라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5배(90조원)까지 사채를 발행할 수 있다. 하지만 해당 특례가 종료되면 발행한도는 기존 규정인 2배 수준으로 복귀한다.
결국 한전채 잔액을 줄이거나 자본금과 적립금을 확충해야 하는 상황이 불가피하다. 단기간 내 부채를 대폭 축소하기 어려운 만큼 자본성 재원 확보 방안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고속도로 사업과 국민성장펀드가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정부는 최근 발표한 에너지 인프라 확충 계획과 관련해 113조원 규모의 국내 송전망 구축 사업 일부를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조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관련 내용은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도 반영될 전망이다.
기존에는 송전망 투자 비용 대부분을 한전이 부담해 왔다. 그러나 AI 데이터센터 확산과 재생에너지 발전 확대에 따라 송전망 투자 수요가 급증하면서 한전 단독으로 감당하기에는 재무 부담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민간 자금을 유치해 송전망을 구축하고 투자 수익을 국민과 공유하는 구조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성장펀드 재원 투입도 검토된다. 송전망을 일종의 인프라 자산으로 활용해 장기 투자 수익을 창출하고, 동시에 한전의 차입 부담도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시장에서는 해당 방안이 현실화할 경우 한전의 자본 지출 부담을 일정 부분 경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송전망 자산의 수익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지, 투자 위험과 운영 책임을 누구에게 배분할지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는 평가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구상하는 핵심은 전력망을 단순 공공 인프라가 아니라 수익형 자산으로 전환하는 것"이라며 "국민성장펀드를 활용해 국민이 투자자로 참여하고 배당 수익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검토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사업화를 위해서는 수익률 체계와 책임 배분, 공공성 유지 방안 등에 대한 제도 설계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