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수보다 '돈 되는 잔고'…증권사들, '100억 자산가' 유치 전쟁 본격화
입력 2026.06.05 07:00

'100억' 고액 고객 찾아 지점 PB까지 영업전
"예탁·연금 자산 유치가 증권사 핵심 KPI로"
발행어음·IMA 업은 WM, 증권사 수익축으로 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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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증권가에선 퇴직연금으로만 180억원을 보유한 고객이 은행에서 자산관리(WM)로 유명한 한 대형증권사로 이동한 사례가 큰 화제가 됐다. 금융자산만 100억원대인 초고액자산가(UHNWI)가 주 거래 창구를 바꾸는 사례는 드물기 때문이다. 

    또 다른 증권사에서도 100억원대 자산을 가진 고객이 은행권에서 증권사로 주거래를 옮긴 사례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지점은 담당 프라이빗뱅커(PB)를 통해 본사 WM부서와 고객을 연결, 긴밀하게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증시 호황을 타고 증권사 자산관리(WM) 영업전이 달아오르고 있다. 과거 리테일 영업이 신규 계좌 수와 고객 수 확대에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에는 고액자산가의 자금을 얼마나 끌어오느냐가 더 중요한 지표로 떠오르고 있다. 본사 초고액자산가 센터뿐 아니라 일반 지점 프라이빗뱅커(PB)까지 고액 고객 유치에 적극 나서는 분위기다.

    은행권 예·적금 매력이 낮아진 가운데 국내 증시 상승세가 이어지며 고액자산가 자금의 증권사 WM으로의 '머니무브'가 빨라지고 있다. 주식과 채권, 상장지수펀드(ETF), 퇴직연금 등 투자상품을 한꺼번에 제안할 수 있는 데다 발행어음과 종합투자계좌(IMA) 등 증권사의 자금 조달·운용 수단도 확대되고 있어서다. 

    증권사가 은행처럼 예금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고액자산가 입장에서는 단순 매매 창구를 넘어 현금성 자금과 투자자산을 함께 관리할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난 셈이다.

    한 명의 고객이 수십억~수백억원의 퇴직연금이나 금융자산을 옮길 경우 증권사 입장에서는 상당한 성과로 평가된다. 신규 계좌 수를 늘리는 것보다 실제 예탁자산과 운용 가능 자금이 더 직접적인 수익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고객 자산이 유입되면 이후 채권, 펀드, ETF, 연금 상품 등으로 이어질 여지가 생긴다. 증권사들이 '돈 되는 고객' 확보에 민감해지는 이유다.

    고객 입장에서도 증권사 WM을 찾을 유인이 커졌다. 주식시장 상승분을 일정 부분 누리면서도 조정장에 대비해 채권, 발행어음 등 다양한 상품을 함께 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증시 상승장에서도 고액자산가들이 은행에 머물지 않고 증권사 WM을 찾는 배경이다.

    증권사 지점의 역할도 바뀌고 있다. 과거 지점 PB가 지역 고객의 주식 주문과 상담을 담당하는 성격이 강했다면 최근에는 고액자산가 발굴과 본사 WM 조직 연결이 주요 역할로 부각되고 있다. 본사 WM센터가 초고액 고객을 전담하더라도 실제 고객 접점은 지점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핵심성과지표(KPI)도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회사별 차이는 있지만 단순 고객 수 확대보다 예탁자산 증가, 금융상품 잔고, 연금 이전, 법인 자금 유치 등이 성과 평가에서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분위기다. 개인 고객 자금을 유치했다고 보험설계사처럼 즉시 수수료가 지급되는 구조는 아니지만 평가와 성과급 산정 과정에서 자산 유치 성과가 반영되는 식이다.

    국내 주요 증권사들이 WM 부문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최근 실적에서도 확인된다. 삼성증권은 올해 1분기 리테일 고객자산이 19조7000억원 순유입되며 고객 총자산이 495조6000억원까지 늘었다. NH투자증권 역시 1분기 기준 WM 관련 이자수지가 127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11억원 증가해 IB 수수료수지(972억원)를 앞질렀다.

    WM 부문의 이익 기여도가 커지면서 대형 증권사들은 WM센터와 연금 조직, 상품 공급 역량에 발행어음·IMA 등 자금 운용 기능까지 결합하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확보한 고객 자산을 장기간 유지하며 금융상품 판매, 자문, 연금 사업으로 수익을 확장하는 구조다. 고객 유치 실적이 뛰어난 PB를 확보하려는 증권사 간 영입전도 한층 치열해진 것으로 전해진다.

    또 WM은 한 번 확보한 고객 자산을 기반으로 금융상품 판매와 자문, 연금 사업 등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사업으로 평가받는다. 반면 브로커리지와 IB 등은 거래대금과 증시 상황, 딜 사이클에 따라 실적 변동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 PB는 "IB와 브로커리지는 시장 상황이나 제도 변화에 따라 실적이 바로 영향을 받지만, WM은 고객 자산이 남아 있는 한 지속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어 너나 할 것 없이 WM에 공을 들이는 이유"라며 "발행어음과 IMA 등으로 증권사의 자금 운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연금 자금과 초고액자산가를 둘러싼 WM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