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거래소 품귀시대...빗썸ㆍ지분 규제 두고 금융사들 '눈치싸움'
입력 2026.06.09 07:00

금가분리 폐기 수순 속 금융권 디지털자산 진출 경쟁 본격화
한투, 코인원 투자까지…5대 원화거래소 지분 확보전 막바지
대주주 지분 제한 논란 변수로…하반기 법제화 향방 주목

  • 6·3 지방선거 이후 가상자산 관련 제도화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이미 가상자산 거래소 지분의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실명확인 입출금계좌(실명계좌)를 확보한 국내 5대 원화거래소 간의 의미 있는 지분 거래는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금융권의 관심은 2위 사업자인 빗썸과 누가 손을 잡을지, 그리고 금융위원회가 검토 중인 지분율 상한제가 도입될지로 모이고 있다. 금가분리(금융기관-가상자산 협업 및 투자 금지) 규제가 유명무실해진 지금, '인프라'를 누가ㆍ얼마나 차지하는지가 핵심 변수가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선거 국면이 마무리됨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가상자산 2단계 입법을 위해 이달 중 국회 정무위원회 및 관계기관과의 조율을 재개할 방침이다. 올 하반기 법안 타결을 목표로 달려온 만큼 관련 논의가 빠르게 본궤도에 오를 것이란 전망이다.

    업계에선 지방선거 이후 전개될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 2단계 입법이 금융권의 투자 지형을 크게 바꿀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가 허용되고 거래소 체계가 완전한 제도권 안착을 이룰 경우, 증권사의 가상자산 프라임브로커리지(PB), 은행의 커스터디(수탁) 뿐 아니라 스테이블코인 관련 사업, 토큰증권(ST) 연계 서비스 등 새로운 수익 모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기대감 속에 금융사들은 가상자산 생태계의 핵심 인프라인 거래소 지분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다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움직임은 사실상 금지에 가까웠다.

    그동안 금융권의 가상자산 진출을 가로막았던 가장 큰 장벽은 이른바 ‘금가분리(금융·가상자산 산업 분리)’ 원칙이었다. 명시적인 법률 규정은 없었으나 금융당국의 완고한 행정지도로 인해 금융사가 가상자산 사업자 지분을 확보하는 데 상당한 제약이 따랐다. 실제 과거 한화투자증권의 두나무 지분 투자 당시에도 금융권 안팎에서 적지 않은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업계에서는 해당 투자가 한화투자증권의 신규 사업 인허가 과정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시장 환경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국회에서 추진 중인 2단계 입법은 가상자산 발행과 유통, 법인 투자 허용, 스테이블코인 규율 등 가상자산 시장을 제도권 금융 수준으로 편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장 구조 전반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전통 금융사의 리스크 관리 능력과 공적 시스템 도입이 필수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금융위원회가 장기간 유지해온 금가분리 원칙도 사실상 폐기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사들은 일찍이 합법적 영업 지위를 확보한 가상자산사업자(VASP) 지분 선점에 사활을 걸어왔다. FIU에 등록된 VASP는 총 27곳이지만, 개인 투자자 자금이 모이는 원화 거래소는 단 5곳에 불과해 희소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요 거래소들의 지분 확보 작업은 부지런히 마무리되고 있다. 국내 1위 거래소 업비트의 운영사 두나무는 지난해 네이버파이낸셜과의 포괄적 주식교환에 합의해 결속을 다졌고, 오랜 기간 보류됐던 고팍스의 최대주주(바이낸스) 변경안도 지난해 금융위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승인을 받았다. 

    올해 2월에는 미래에셋그룹(미래에셋컨설팅)이 코빗 지분 92.06%를 약 1335억원에 전격 취득하며 전통 금융사의 진출 신호탄을 쐈다. 최근에는 한국투자증권이 글로벌 거래소 OKX와 손잡고 코인원 지분을 각각 20%씩 인수하며 마지막 남은 대형 매물까지 소화했다.

    현재 시장에 남은 대형 카드는 2위 사업자인 빗썸이 유일하다. 그러나 빗썸은 지주사인 빗썸홀딩스의 1대 주주와 2대 주주 간의 해묵은 갈등 등 복잡한 지배구조 리스크가 여전해 금융사가 유의미한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기엔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다. 

    한 가상자산 M&A 업계 관계자는 “금융권이 선제적인 지분 투자를 모색하고 있으나 현재로선 진입할 수 있는 통로가 좁다”며 “5대 거래소의 유의미한 지분 투자는 이미 한 차례씩 끝났고, 빗썸은 지배구조 이슈 탓에 선뜻 접근하기 어려운 카드”라고 귀띔했다.

    막대한 몸값도 걸림돌이다. 현재 업비트와 빗썸의 시장 점유율 격차는 2~3배 수준인데, 두나무의 기업가치가 약 15조 원 안팎으로 평가받는 상황에서 빗썸 지분을 의미 있게 확보하려면 조 단위 자금이 필요하다. 수백억원에서 1000억 원대 수준에서 소수 지분이나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었던 코인원·코빗과는 체급 자체가 달라 금융사들의 의사결정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향후 금융사들의 추가 지분 확보 전선에서 최대 변수는 '대주주 지분율 규제' 도입 여부가 꼽힌다. 

    현재 금융위는 거래소의 독점적 지배를 막고 공적 인프라로서의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 대주주 지분율 상한을 20%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규제가 현실화될 경우 코빗 지분 92%를 쥔 미래에셋은 초과 지분을 강제로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국회와 야당을 중심으로 사유재산권 침해 우려가 크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현재 국민의힘 디지털자산밸류업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김상훈 의원 등은 대주주 지분 규제에 대해 완강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여야 간 합의점 마련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다만 지방선거 승리의 여세를 몰아 후반기 국회 정무위원장 자리를 더불어민주당이 탈환할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분위기 반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다수당 중심의 책임 정치를 공언한 만큼, 하반기 정무위가 민주당 주도로 재편될 경우 김남근·김현정 의원 등 강성 규제파 의원들을 필두로 가상자산 거래소를 대체거래소(ATS) 수준으로 묶는 강력한 규제안이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

    이처럼 규제 리스크가 구체화될 경우 대규모 경영권 지분 거래는 사실상 얼어붙겠지만, 오히려 금융사들에는 10% 미만의 소수지분을 공략하는 틈새 전략이 대안으로 떠오를 것이란 분석도 있다. 실제로 업계 1위인 두나무 등의 경우, 규제 환경 변화나 초기 투자사들의 포트폴리오 조정에 따라 시장에 소수지분 매물이 간간이 출회될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다만 M&A 업계 관계자는 "이미 하나금융, 삼성금융 등 주요 대형 금융사들이 소수 지분 형태로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린 상태"라며 "먼저 자리 잡은 '사공'이 많은 구조여서 새롭게 진입하는 금융사가 소수지분만으로 의미 있는 의결권이나 발언권을 확보하기는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진 형국"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