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노갈등에 데인 삼성전자, 로봇·공조·전장 등 비반도체 M&A 과제 부상
입력 2026.06.11 07:00

반도체 호황에 대규모 실탄 확보…대형 딜 추진 여력 충분
성과급 갈등에 DS-DX 균열…사업간 '균형 성장' 과제 부상
DX 주도로 로봇·HVAC·전장 등 미래 먹거리 확보 나설 듯

  • 삼성전자가 유례없는 실적 호조를 이어가고 있지만 메모리와 그외 사업간 내부 갈등이라는 새로운 고민도 안게 됐다. 사업간 실적과 처우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공언해온 대로 메모리 외 분야에서 사업 확장 기회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호황으로 막대한 자금을 쓸어담고 있는 만큼 수십조원 규모 초대형 M&A가 이뤄질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6년 하만(Harman)을 80억달러에 인수한 후 잠잠한 행보를 이어갔다. 창업 초기 기술 기업에 대한 투자를 간간히 진행하긴 했지만 시장이 주목할 만한 소식은 없었다. 2021년 경영진이 '유의미한' M&A를 공언한 후에도 업황 부진과 재무 체력 약화 여파로 적극적임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NXP, ARM 등 반도체 관련 기업 인수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수십조원에 이르는 몸값을 부담할 수는 없었다. 2024년엔 존슨콘트롤즈의 냉난방공조 사업, 독일 콘티넨탈 전장사업 인수를 검토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매도자들은 수조원의 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삼성전자를 유력한 원매자로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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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작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상대적으로 M&A 제약이 적었던 하만이 미국 마시모의 오디오 사업부와 독일 ZF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 사업을 인수했다. 삼성전자는 독일 플랙트그룹과 미국 헬스케어 플랫폼 젤스 등을 품었다. 1년 새 두 건의 조단위 거래를 포함, 6조원 이상을 M&A에 쏟아부었다. 작년 말엔 사업지원실에 M&A팀을 신설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들어 첨단로봇과 메디컬 테크놀로지, 전장, 냉난방공조(HVAC) 등 미래 성장 분야에서 '의미 있는' 규모의 M&A를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최근 수년간 관심을 가졌고,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M&A 성과를 냈던 분야다. 주력 사업인 반도체와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만하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호황에 분기 영업이익 100조원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 매년 시설 투자와 연구개발(R&D)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들어가지만 돈을 버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이런 호황은 향후 수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삼성전자 최대 M&A는 하만 인수인데, 이를 뛰어 넘는 규모의 거래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전에는 유망 매물을 돈 때문에 놓치거나 검토를 포기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막강한 자금력을 업은 만큼 가격보다는 필요성과 시너지 효과를 먼저 따지는 분위기다. 작년 ABB로보틱스 M&A도 소프트뱅크가 초장에 과감한 베팅을 하지 않았다면 삼성전자가 충분히 노려볼 만했다.

    최근 삼성전자 내 M&A를 둘러싼 기류는 나쁘지 않다. 하만은 작년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2011년 인수한 삼성메디슨은 작년 처음으로 매출 6000억원을 돌파했고, 최근엔 미국 빅2 대형 병원과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그간 실행 성과가 없었을 뿐 여러 매물들을 검토하며 쌓인 경험과 역량도 건재하다는 평가다.

    M&A 자문사들도 삼성전자에 굵직한 잠재 매물들을 제시하느라 분주해졌다. 예전엔 매물을 들고가봐야 헛심만 쓴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이제는 자문사 활약 여하에 따라 쏠쏠한 자문 실적을 올릴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자금력보다는 각국의 기업결합 승인을 더 큰 걸림돌로 볼 정도다.

    한 M&A 자문사 관계자는 "삼성전자에 막대한 돈이 쌓이면서 인수를 검토하는 기업들의 수준도 달라졌다"며 "비싸고 좋은 회사를 인수하려 하겠지만 그런 기업은 각국에서 팔지 못하게 막는 경우가 많아 거래 난이도가 높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대형 M&A를 추진해야 하는 배경엔 '내부의 갈등' 문제도 있다.

    회사는 최근 성과급 배분 문제를 두고 홍역을 치렀다. 정부가 적극 개입하며 파국은 막았지만 생산 효율성은 떨어졌고 대외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성과급 합의는 반도체(DS) 주도로 이뤄졌고, 모바일·가전·TV(DX) 부문은 사실상 배제됐다. 반도체 불황기 때 회사를 지탱했던 DX 부문에선 박탈감을 호소하며 '노노 갈등' 양상이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협상 과정에서 '성과가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복수 노조간 갈등이 격화하자 DS와 DX를 별도의 법인으로 분리하는 안이 거론되기도 했다. 돈을 버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처우를 달리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고전하고 있는 DX 직원들의 불만이 커지고, 경쟁력은 더 약화할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삼성전자가 쪼개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스마트폰의 메모리나 일부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DS 부문이 공급하는 등 커다란 생태계로 연결돼 있다. 회사 분리로 성과급 차등의 당위성을 찾기 어렵다면, 비반도체 분야의 실적을 키워 성과급을 늘려야 한다. 올해 삼성전자 M&A 방향성도 DX 쪽에서 제기되고 있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DS 부문은 M&A보다는 물 들어올 때 사업장을 빨리 확장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DX 부문은 주력 사업 대부분이 좋지 않다 보니 외형을 키우거나 유지할 수 있는 M&A를 계속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