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띄운 '남부권 반도체 벨트'…삼성전자·SK하이닉스 현실적 제약은?
입력 2026.06.10 11:06

정치권 중심 광주 첨단 패키징 기지론 부상
범용·레거시 후공정 기반 생태계 조성은 가능
첨단 후공정은 논쟁적…인재풀 확보도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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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달 중 전남·충남 지역에 대한 투자 계획을 공개할 전망이다. 정치권이 중심이 돼 반도체 패키징 등 후공정 공장 투자가 유력한 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두 기업이 호남권에 반도체 투자를 추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의 지역 균형 발전 의지에 기업이 화답하는 모양새지만, 산업계에선 여러 현실적 제약을 따져보고 있다. 

    정치권과 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장성군, 충청남도 온양군에 반도체 투자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광주에 패키징 공장 투자를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업계에선 이번 투자의 키를 정부가 쥐고 있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정부는 작년 12월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K반도체 육성 전략 보고회를 열고 광주를 첨단 패키징 기지로 육성하는 '남부권 반도체 혁신벨트' 구축 계획을 내놓고 지방 투자를 독려한 바 있다. 지난 전국동시지방선거 전후로도 해당 지역에선 광주 첨단3지구나 군 공항 이전 예정지에 반도체 공장 유치 가능성이 주요 화두였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일단 이번 투자 건에 대해 아직까진 "모르는 일"이라는 게 공식 입장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전남·충남 지역 투자를 적극 독려하고 있지만 양사 모두 이제 막 평택과 청주, 용인 지역에서 미뤄진 증설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 남부권 아래로는 반도체 투자에 필요한 준비가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다 보니, 남부권 반도체 투자가 기정사실화한 것처럼 보도된 게 당황스럽다는 반응이 공통되게 관측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광주 패키징 공장 투자를 비롯해 남부권 투자 계획 자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라며 "지방에 맞춤한 산업단지나 분양 가능한 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환경영향평가를 비롯해 토지 보상, 용수 확보, 인허가 등 행정 절차에만 수년이 필요한데 진행된 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 실무자들은 물론 투자업계에서도 정치적 목표가 아니라면 남부권 반도체 투자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정부 지역 균형 발전 정책의 취지나 필요성은 크게 공감하지만, 반도체가 국가첨단전략산업의 핵심 축인 만큼 입지 선정에서부터 산업 생태계 효율성이나 공급망 경쟁력, 인력 수급, 전략적 가치 등을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남부권에 어떤 후공정 기지를 배치할 것인지부터 논쟁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전통적인 범용·레거시 패키징 공장의 경우 이미 호남권에 관련 생태계가 조성돼 있어 큰 무리가 없다는 분석이 많다. 범용 패키징이나 아날로그 반도체 후공정, 소재·부품 분야를 중심으로 남부권 생태계를 육성하는 방안은 충분히 검토할 만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최첨단 패키징으로 분류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나 2.5D 패키징 공정의 경우 기존 생산기지에서 멀어질수록 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한 실무자는 "HBM만 해도 칩 설계, 전공정 개발 단계에서부터 패키징 개발이 동시에 진행된다. 지금 첨단 패키징은 전공정이랑 경계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기존 클러스터에서 차로 3시간 거리에 패키징 공장을 세우면 개발 과정에서 어떻게 피드백을 받고 수율을 잡나. 현실성이 떨어진다"라고 얘기했다. 

    현재 인공지능(AI) 시대 들어 첨단 패키징은 사실상 전공정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팹(Fab)의 연장선으로 자리잡고 있다. 전공정 수준의 전문 인력풀과 협력사·인프라 생태계는 물론 자본 투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클러스터 간 물리적 거리가 멀어질수록 중복 투자로 자본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엔지니어 간 피드백·최적화 시간이 늘어지면서 개발과 수율 확보 난도도 급격히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증권사 한 반도체 담당 연구원은 "만들어진 칩을 세라믹, 플라스틱으로 포장하고, 검사하는 등 레거시 후공정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라 미국 등 대외 협상에서도 정치적 단골 소재였다"라며 "그러나 첨단 패키징으로 넘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본사 필수 인력도 쪼개서 내려가야 하고 협력사들도 줄줄이 현지 사업장을 새로 꾸려야 하는 등 제약이 많다"라고 말했다. 

    전문 인력의 지리적 이동 한계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란 관측도 많다. 소위 인재 남방한계선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제 겨우 성과급을 둘러싼 노사 갈등을 잠재운 마당인데, 호남권에 첨단 패키징 투자를 공식화할 경우 또 다른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현재 국내 반도체 전문 인력 대부분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사업장이 위치한 기흥·평택·이천·청주 등 수도권 및 충청권 클러스터에 집중돼 있다. 이제 막 용인 클러스터를 조성하면서 경기 남부권 아래로 생태계 확장이 이뤄지는 참이다. 그러나 전문 인력 대부분은 경기 남부권으로의 이동도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