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AI 연합군' 된 韓 기업들…역할 따라 투자가치도 서열화
입력 2026.06.11 07:00

엔비디아 'AI 팩토리' 생태계 경쟁 본격화
밸류체인 각층서 다른 역할 맡는 韓 기업들
LG·SK·두산·네이버 결국 여러 연합 중 하나
막강한 건 역시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차

  •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4박5일 방한 일정이 마무리됐다. 국내 대기업 상당수가 엔비디아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나선 가운데, 투자업계에선 생태계 내에서 각사가 맡게 될 역할을 중심으로 중장기 수혜 규모를 따져보고 있다. 결국 인공지능(AI) 밸류체인 내 경쟁력과 중요도에 따라 투자 가치에도 서열이 나뉘어질 것이란 분석이 많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황 CEO는 AI 밸류체인을 5층짜리 케이크에 비유한다. 가장 아래층에는 전력·에너지 인프라가, 그 위에는 반도체 생태계가 자리한다. 이들을 토대로 구축된 AI 데이터센터가 컴퓨팅 계층을 형성하고, 그 위에는 제미나이·클로드·챗GPT 등 AI 모델이 올라선다. 맨 꼭대기층이 이용자들이 실제로 접하는 서비스 영역이다. 검색부터 에이전틱 AI, 휴머노이드 로봇, 자율주행까지 모든 AI 응용 서비스가 최상단에 해당한다. 

    엔비디아는 가속기(GPU)를 설계하는 팹리스가 본업이다. AI 시대 들어서 2층은 사실상 독점적 지배력을 구축한 상태다. 지난 10년여 가까이 자율주행부터 디지털트윈, 스마트팩토리, 로봇 관련 HW·SW 플랫폼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왔으나 아직까지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층을 제외한 영역에서는 엔비디아 역시 수많은 플레이어 중 하나에 불과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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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황 CEO가 계속해서 방한 일정을 소화하며 국내 대기업과 소통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혼자 힘으로는 AI 밸류체인을 완성할 수 없으니 전 영역을 아우르는 'AI 팩토리'를 제시하고 자체 생태계에 연합군을 끌어들이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구글(알파벳)은 현재 AI 팩토리 전 영역에서 사실상 수직계열화를 이룬 유일한 기업으로 꼽힌다. 자체 전력 인프라 구축부터 칩 설계, 클라우드 운영, 독자모델 개발을 마쳐 유튜브나 크롬 등 자체 서비스 플랫폼에 AI를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기존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이 워낙 막강한 터라 AI 제국 건설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기업으로 통하는 것이다. 독자 개발한 TPU가 칩 생태계까지 침범하고 있어 엔비디아 본업에 미칠 위협도 상당하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엔비디아가 CUDA로 구축한 해자(垓子)도 막강하지만, 결국 AI 경쟁도 구글이나 테슬라처럼 전체 생태계를 장악하는 기업이 좌우하게 될 것"이라며 "비유하자면 엔비디아도 곡괭이만 팔아본 입장이라 계속해서 HW 기업들을 자사 생태계 내로 끌어들이면서 연합을 형성해야 경쟁을 이어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SK, LG, 두산그룹, 네이버 등 한국 기업들의 전략적 가치도 여기에 있다. 최상단 서비스 영역에서는 구글, 메타, 오픈AI, 테슬라와 같은 빅테크 플랫폼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중간 계층인 AI 컴퓨팅 인프라와 기반 데이터 영역에서는 여전히 HW 제조업 강자들의 역할이 절대적인 덕이다. 

    이들 기업에 대한 투자 가치에 대해서는 아직 상반된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LG와 두산그룹은 엔비디아와 AI 팩토리의 HW 기반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협력 범위를 넓혔고, 네이버와 SK텔레콤은 한국판 코어위브와 유사한 역할을 기대받고 있다. 그러나 해당 영역에서 엔비디아와 협력하는 경쟁사들이 이미 세계 각지에 있는 데다, 아직은 성공 여부를 따지기 힘든 시점이라 수혜 규모를 신중히 따져봐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젠슨 황이 칩을 팔기 위해 온 것에 불과하단 시각도 있지만, 네이버나 LG, 두산, SK그룹도 엔비디아 조력 없이는 판에 뛰어들 여력이 없으니 상부상조하는 격"이라며 "그러나 엔비디아가 주도하는 AI 팩토리 구상이 얼마나 힘을 발휘할지는 아직 알기 어렵다. 당장은 국내 대기업들의 사업 무대가 넓어지는 정도의 의미가 커 보인다"라고 말했다. 

    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사업적 해자는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밸류체인 경쟁이 심화할수록 필수 인프라인 메모리 반도체의 사용량이나 적용 범위가 커지는 구도여서다. AI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최종 서비스 사업자보다 '곡괭이 판매자' 지위가 더 강화할 것이란 분석이다. 

    외국계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지금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메모리 공급 능력은 거의 독점적 지위로 평가된다. 막대한 초과이윤을 남기는 것도 이 때문"이라며 "에이전틱 AI에서 자율주행, 로봇으로 AI 시장이 확장할수록 D램과 낸드 사용량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가파르게 증가할 예정이다. 구글과 엔비디아는 물론 테슬라까지 모든 진영에 다 공급하는 측이 결국 승자"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 역시 못지 않게 막대한 해자를 구축한 상황으로 평가받는다. 아직까지 최상단 AI 서비스의 주 무대는 검색과 생성형 AI, 에이전트 등 SW 영역에 머물러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로봇과 자율주행, 스마트팩토리 등 물리 공간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AI 모델이 현실 세계로 진출할 수 있도록 제조 역량을 확보한 현대차그룹의 협상력도 함께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현대차그룹은 완성차 생산 체계와 로보틱스 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 자율주행 기반을 동시에 확보한 드문 기업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엔비디아는 물론 구글 역시 현대차그룹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구글은 피지컬 AI에서 수직계열화를 거의 달성한 테슬라를 견제하기 위해선 현대차그룹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증권사 한 리서치센터장은 "현대차그룹 역시 자율주행 플랫폼이나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양산을 완성해야 하는 등 과제가 많지만 다른 대기업군과는 입지가 다르다"라며 "엔비디아 덕을 보느냐 마느냐로 주가가 오르내리지만 순서상 일단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이어서 현대차그룹 수혜가 먼저 가시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