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안 물려받아요"…'제2의 청호나이스' 찾아나선 PEF들
입력 2026.06.12 07:00

창업주 별세 후 상속세·승계 부담 맞물리며 매각 추진
'물려받지 않는' 오너 자녀 늘어…PEF 투자 기회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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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글로벌 사모펀드(PEF) 칼라일의 청호나이스 인수가 최근 국내 중견기업 승계 시장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오너 2·3세가 경영 승계 대신 별도 커리어를 선택하고, 높은 상속세 부담까지 겹치면서 기업을 직접 물려주기보다 매각을 택한 대표적 사례여서다. 투자업계는 이 같은 '제2의 청호나이스'가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10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달 칼라일은 청호 그룹(이하 청호나이스)의 지분 100%를 인수하는 최종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이번 투자는 아시아 지역 투자 펀드인 칼라일 아시아 파트너스(Carlyle Asia Partners)가 운용하는 투자 펀드를 통해 집행될 예정이다.

    해당 거래는 규제 당국의 승인 등을 거쳐 올해 3분기 내 마무리될 전망이다. 매수자 측은 김앤장법률사무소와 레이텀앤드왓킨스의 자문을 받았고, 청호나이스 측은 중견 법무법인의 도움을 받았다.

    이번 매각 거래 대금은 1조원 초반대로 전해진다. 거래 대상은 청호나이스와 마이크로필터, 엠씨엠 등 관계사 지분 전량이다. 청호나이스는 창업주인 고(故) 정휘동 회장이 1993년 설립한 회사로, 정 회장이 설립 이후 최대주주(75.1%)를 유지해왔다. 정 전 회장이 보유했던 지분은 별세 이후 부인인 이경은 회장과 차남 정상훈 씨에게 상속됐다.

    청호나이스의 2대주주는 정 회장 가족 회사인 마이크로필터(지분율 12.99%)다. 이외에 정 회장 동생 정휘철 부회장이 지분 8.18%를, 기타 주주가 3.73%를 보유했다. 마이크로필터는 정 전 회장이 80%, 이경은 회장이 20%를 보유하고 있었고, 엠씨엠은 정 전 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했었다.

    청호나이스 매각 논의는 정 전 회장 생전부터 진행돼 온 것으로 전해진다. 정 전 회장의 장남인 정성훈 씨(전처 소생)가 경영 승계에 뜻이 없었던 점이 매각 검토의 배경이었다. 미국 월스트리트 금융권에서 경력을 쌓아온 정 씨는 회사 경영보다는 기존 커리어를 이어가기를 희망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생전 정 전 회장이 청호나이스의 기업가치를 2조원 수준으로 기대하면서 시장 눈높이와의 차이가 적지 않았고, 이로 인해 거래는 진전을 보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상황이 급변한 것은 지난해 6월 정 전 회장이 향년 67세로 별세한 이후다. 오너 일가는 수천억원 규모의 상속세 부담에 직면했고, 경영권 매각을 통한 재원 마련 필요성이 커졌다. 이후 칼라일과의 협상이 본격화되면서 거래 논의도 속도를 낸 것으로 전해진다.

    협상 과정에서 장남인 정 씨가 자신의 상속분을 주장하면서 변수로 부상하기도 했다. 정 씨는 법무법인 율촌의 자문을 받는 등 대응에 나섰는데, 국내 한 중견 사모펀드(PEF)가 정 씨 측을 지원하며 막후에서 이해관계 조율에 나선 것으로 파악된다.

    결국 장남 측이 상속 분쟁을 접고 지분 매각에 참여하면서 최종적으로 이해관계자 간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다. 이경은 회장 등 유족 측은 정 씨의 법정상속분을 인정했고, 정 씨 지분 역시 경영권 지분의 일부로 간주해 다른 유족 지분과 동일한 경영권 프리미엄을 적용하는 방안에 칼라일과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거래가 마무리되면 정 씨는 수천억원 규모의 현금을 확보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거래는 자칫 가족 간 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었지만, 이해관계자 간 조율을 거쳐 원만하게 마무리된 것으로 파악된다. 오너 일가의 지분이 한 곳에 집중되지 않고 여러 가족 구성원, 계열사에 분산돼 있었던 만큼 전반적인 지분 구조 재편 작업도 필요했다. 이번 딜이 단순한 경영권 매각을 넘어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와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이었던 만큼 상당한 수준의 조율이 요구됐다는 평이다. 

    칼라일 입장에서도 경영권과 관련된 지분을 모두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향후 소수 지분주주와의 이해관계 충돌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지배구조를 단순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 전 회장이 보유했던 각종 특허와 지식재산권(IP)도 협상 과정에서 고려된 요소로 거론된다. 정 전 회장은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출신의 엔지니어 경영인으로, 청호나이스의 핵심 기술과 관련된 특허를 개인 명의로 다수 보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권리 역시 상속재산에 포함되는 만큼, 인수자 입장에서는 관련 이해관계를 일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정 씨가 미국 금융권에서 경력을 쌓아온 점도 협상 과정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청호나이스 사례는 최근 국내 중견기업 시장에서 나타나는 승계 환경 변화를 보여주는 단면으로도 읽힌다. 특히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오너 2·3세가 해외에서 생활하거나 금융·IT·전문직 등 다른 분야에서 경력을 쌓으면서 경영 승계에 뜻을 두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여기에 높은 상속세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기업을 직접 물려받기보다 경영권 매각을 통해 자산을 현금화하는 오너 일가도 증가하는 추세다. 매각 이후에는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투자업이나 자산운용 등에 진출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 PEF 관계자는 "기업가치가 수천억원에서 조단위에 이르는 기업 가운데 비슷한 상황인 곳들이 적지 않다"며 "오너 자녀들이 승계를 원하지 않는 사례가 많은데, 상속세 부담까지 겹치면서 기업을 물려주기보다 PEF에 매각해 승계 문제를 정리하려는 수요는 더 많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