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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권이 생산적금융 확대 경쟁에 들어갔지만, 정작 무엇을 생산적금융으로 볼지를 두고는 현장 혼선이 이어지는 분위기다. 금융당국이 큰 방향성은 제시했지만 세부 분류 기준을 명확히 못 박지는 않으면서, 은행들은 자체적으로 생산적금융 분류표를 마련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생산적금융은 부동산과 가계대출에 쏠린 자금을 기업·첨단산업·벤처·인프라 등 실물경제로 돌리겠다는 정책 기조다. 정부가 15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를 내세우고 금융권의 역할 확대를 주문하면서 금융지주와 은행권에서도 생산적금융은 핵심 경영과제로 부상했다. 일부 금융그룹은 생산적금융 전담 조직을 만들고, 영업점 평가제도(KPI)에 관련 지표를 반영하는 등 내부 체계 정비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문제는 실적 경쟁이 먼저 시작된 반면 기준은 아직 정리되는 과정에 있다는 점이다.
주요 금융지주들은 올해 생산적금융 공급 목표를 세우고 분기별 실적을 점검하고 있다. 그러나 각사가 자체 기준으로 실적을 계산하다 보니 공급 규모만으로는 실제 정책 효과를 비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같은 자금 공급이라도 어느 금융사에서는 생산적금융으로 잡히고, 다른 금융사에서는 제외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은행권에서는 우선 생산적금융에 포함되지 않는 영역을 먼저 걸러내는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 생산적금융을 일일이 정의하기보다, 비생산적 금융으로 보기 쉬운 업종을 제외하는 '네거티브 방식'에 가깝다.
대표적으로 부동산 개발·임대업 등 부동산 관련 업종과 유통·도소매업 등이 제외 대상으로 거론된다. 실무적으로는 통계청 한국표준산업분류 코드를 기준으로 업종을 나누는 방식이 활용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 차원의 명확한 세부 기준이 아직 내려온 것은 아니어서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기준을 잡아가는 단계"라며 "생산적금융을 적극적으로 정의하기보다는 부동산, 임대업 등 생산적금융으로 보기 어려운 영역을 먼저 제외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금융사별 기준 차이는 이미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표준산업분류상 세세분류 기준 국내 산업은 약 1205개 업종으로 나뉘는데, 금융그룹별로 생산적금융으로 인정하는 업종 수는 크게 갈린다는 분석이다.
신한금융은 반도체·인공지능(AI)·화학·제약·기계 등 첨단전략산업 위주로 291개 업종을 생산적금융 실적으로 잡는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과 우리금융은 각각 512개, 471개 업종을 인정하고, 하나금융은 부동산 관련 업종 등을 제외한 1097개 업종을 생산적금융 범주에 넣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준이 넓은 금융사는 단기간에 실적을 크게 쌓을 수 있고, 기준이 좁은 금융사는 정책 취지에 부합하는 자금 공급을 해도 외형상 뒤처져 보일 수 있다. 지주별 생산적금융 목표 달성률을 비교할 때도 각사 기준이 다르다면 단순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실적 경쟁이 자금의 질보다 분류 방식의 차이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당국도 공통 기준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생산적금융에 해당하는 업종을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지정할 경우 특정 산업으로 자금이 과도하게 쏠릴 수 있다는 부담도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AI, 바이오, 로봇 등 첨단산업은 정책적 상징성이 크지만, 생산성 개선이 필요한 일반 제조업이나 중견기업 밸류체인까지 모두 배제하기는 어렵다. 반대로 기준을 넓히면 기존 기업대출이나 대환대출까지 생산적금융으로 포장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업종 코드만으로 생산적금융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같은 제조업 대출이라도 단순 운전자금인지, 설비투자나 연구개발(R&D) 자금인지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담보를 잡은 대출이라도 실제 자금 용도가 공장 증설이나 생산설비 투자라면 생산적금융으로 볼 여지가 있다. 반대로 첨단산업 기업에 나간 대출이라도 기존 차입금 상환용이라면 신규 자금 공급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은행 영업점과 심사부서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생산적금융이 KPI로 반영되면 영업점은 관련 실적을 쌓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업종과 자금 용도를 생산적금융으로 인정할지 불명확하면 현장 판단은 보수적으로 흐르거나, 반대로 실적을 채우기 위해 기준을 넓게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 생산적금융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출 상담이나 심사 단계에서 혼선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대기업 대출과 중소·중견기업 대출을 같은 생산적금융 실적으로 볼 수 있느냐도 쟁점으로 꼽힌다.
대기업에 대한 설비투자 금융은 규모가 크고 집행이 빠르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산이다. 반면 중소·중견기업이나 벤처기업에 대한 신용 기반 자금 공급은 정책 취지에는 더 가깝지만 리스크와 심사 부담이 크다. 생산적금융이 단순히 기업대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흐를 경우, 담보·보증 위주의 기존 영업 관행을 바꾸겠다는 취지가 희석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적 집계 기준도 논란거리다. 정책펀드나 투자 프로그램의 경우 약정액을 기준으로 볼지, 실제 자금 집행액을 기준으로 볼지에 따라 수치가 달라진다. 은행 대출도 신규 취급액, 잔액 증가분, 대환·만기연장 포함 여부에 따라 생산적금융 실적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자금 공급 규모만 앞세울 경우 실제로 새로운 위험을 부담했는지, 성장성이 있는 기업에 자금이 흘러갔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최소한의 공통 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종별 제외 기준, 자금 용도, 신규 자금 공급 여부, 중소·중견기업 가중치, 정책금융기관 보증 여부 등을 함께 반영해야 실적 부풀리기 논란을 줄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모든 금융사에 동일한 기준을 강제하기는 어렵더라도, 적어도 비교 가능한 공통 항목과 자율 항목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당국도 생산적금융 실적을 매년 점검·공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금융권에는 생산적금융 추진 실적을 백서나 연차보고서 형태로 공개하고, 정부와 전문가, 시장 참여자 등의 평가를 받는 체계를 갖추라는 주문이 나온 상태다. 이는 생산적금융을 단순 캠페인이 아니라 금융권의 자금 배분 방식으로 정착시키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생산적금융은 정책 취지 자체보다 현장에서 무엇을 실적으로 인정할지가 더 어려운 문제"라며 "당국이 큰 틀의 공통 기준을 제시하되, 업종 코드뿐 아니라 자금 용도와 신규 공급 효과까지 함께 볼 수 있는 기준이 마련돼야 숫자 경쟁 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