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고공행진에 가려진 행동주의의 습격
입력 2026.06.16 07:00

취재노트
코스피 랠리 뒤 물밑에서 행동주의 펀드 움직임
고민많은 오너들, 증권사·자문사 찾는 발길 늘어
시장 흔들리면 갈등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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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금은 증시 강세에 가려져 있지만, 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물밑에서 움직이던 행동주의 펀드들이 전면에 나설 겁니다.” (한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 관계자)

    연일 코스피가 연고점을 경신하고 있다. 이번 랠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에 대한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는 가운데 증시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M&A 시장의 대형 거래들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단순 바이아웃이 아닌 지배구조 관련 거래는 오히려 활발해지는 분위기다.

    특히 업계에서는 행동주의 펀드의 동향을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 투자 활동을 해온 행동주의 펀드들은 최근 한국 시장에서 더 많은 투자 기회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일본에서 활동하던 행동주의 펀드들이 하나둘씩 국내에 사무소를 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 관계자는 “한국 내 포트폴리오 가운데 5% 이상 보유 사실이 공시된 기업 외에도 상당수 기업에서 의미 있는 수준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며 “당초 상반기 중 추가 지분 매입을 검토했지만 현재 증시 변동성이 큰 만큼 시장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관망 국면이지만 많은 행동주의 펀드가 추가 지분 매입을 검토하고 있고, 증시 변동성이 잦아들면 움직임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물밑에서는 기업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지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가 이미 지분을 확보한 기업들의 규모는 기업가치 수천억원대부터 조원대까지 다양한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국내 제조업 상장사 가운데는 오너 일가의 승계 작업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행동주의 펀드가 진입해 향후 지배구조 이슈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는 곳도 적지 않다.

    이들 기업의 오너가 증권사와 자문사에 잇따라 자문을 요청하면서 IB업계도 바빠지고 있다. 경영권 방어 전략부터 사업부 매각, 지배구조 개편까지 다양한 시나리오가 테이블 위에 오르고 있다는 전언이다.

    한 증권사 M&A 담당자는 “행동주의 펀드가 2대주주로 올라선 뒤 경영권 방어를 고민하는 기업 오너들의 문의가 크게 늘었다”며 “행동주의 펀드가 단독 2대주주가 아니더라도 PE 등 주요 주주들의 지분을 합산하면 경영권을 위협할 만한 수준에 이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이 때문에 일부 기업들은 사전에 방어 전략을 마련하거나 M&A를 통한 엑시트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류의 거래가 최근 검토되는 딜의 대다수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내 기업들 가운데서는 창업주 세대가 은퇴 시기를 맞았음에도 자녀들이 가업 승계를 원하지 않거나, 전통 제조업보다 성장성이 높은 신사업 또는 투자·금융업에 관심을 두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오너들은 회사를 통째로 매각하기보다 글로벌 확장 가능성이 큰 사업부만 카브아웃(Carve-out)해 승계하고 나머지 사업은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한다. 또 일부 지분을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한 뒤 남은 지분을 통해 안정적인 배당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지배구조를 재편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행동주의 펀드들이 최근 한국 시장에 주목하는 배경에는 일본 시장에서의 성공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보다 상장사 수가 훨씬 많고 오너 지분율이 높지 않은 기업도 적지 않아 행동주의 펀드들의 주요 활동 무대였다. 

    여기에 일본 정부와 도쿄증권거래소가 PBR 1배 미만 기업들을 대상으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 수립과 공시를 요구하면서 자사주 매입, 사업 재편, 비핵심 자산 매각 등이 활발해졌다. 그 과정에서 행동주의 펀드들도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이처럼 일본 시장에서 투자 기회를 발굴했던 행동주의 펀드들이 이제는 밸류업 정책과 지배구조 개선 요구가 확산되고 있는 한국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상장사 수가 적은 데다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공고한 기업이 많아 행동주의 펀드들의 활동 공간이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승계 문제를 안고 있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상법 개정, 밸류업 정책 등 주주권 강화를 둘러싼 환경 변화가 이어지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상법 개정 역시 행동주의 펀드들의 활동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가 지분을 확보한 기업에 대해 PE가 공개매수나 인수 제안을 내놓을 경우, 이사회가 이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주주가치 훼손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행동주의 펀드와 PE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비상장화 거래나 경영권 매각을 둘러싼 압박이 과거보다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같은 시장을 주목하고 있는 것은 글로벌 IB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는 ‘빅딜’이 실종된 상황인데, 이 와중에 글로벌 IB들은 강점을 가진 크로스보더 딜 위주로 고객 공략에 나섰다. 국내 중소형 딜은 회계법인 등 로컬 플레이어의 영향력이 크기에 '선택과 집중'에 나선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또 하나 중요하게 보고 있는 일감은 기업들의 행동주의 펀드 방어다. 여러 전략을 제시하고 대응 구조를 설계하는 자문 업무도 포함된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상장사들의 주주 구성을 살펴보면 행동주의 펀드가 이미 의미 있는 지분을 확보한 기업이 상당수”라며 “행동주의 펀드들은 일본 시장에서 성과를 거둔 뒤 한국 시장으로도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국내 증시가 강세를 보이면서 겉으로는 모두가 수혜를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향후 주주와 경영진 간 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 잠재적 요인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