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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금융사들이 증시 활황 속 시장에 풀린 대규모 자금을 흡수하기 위해 자산관리(WM) 사업 고도화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은행권이 기존 고객 인프라를 바탕으로 외형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증권사는 투자상품 판매 역량을 기반으로 WM 부문 장기 펀더멘털을 확보한 모습이다.
금융사별 IR(실적발표) 자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이 올해 1분기 기준 WM 매출 상위권을 차지했다. KB국민은행이 2030억원으로 전 금융권 1위 자리를 지난해에 이어 사수했고, 하나은행(1696억원)과 신한은행(1358억원)이 그 뒤를 잇따랐다.
은행권은 기본적으로 보유 자산 규모가 워낙 방대해 증권사보다 절대적인 수익 규모 면에서는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만, 매출 성장의 '질적·비용 효율성' 측면에서는 대형 증권사들이 구조적 이점을 쥐고 있다.
1분기 은행권은 증시 호황에 따른 자산관리 부문 매출 확대로 30% 후반대의 영업이익경비율(CIR)을 기록하며 선방했다.
반면, 고정비 통제력을 앞세운 독립형 증권사들은 30% 초반대의 CIR을 기록하며 영업 효율성을 과시했다. 특히 삼성증권은 1분기 별도 당기순이익 4200억원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CIR을 1년 새 10%포인트나 끌어내렸다. 이와 함께 연환산 ROE(자기자본이익률)은 22.2%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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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은행이 전국적인 점포망 운영에 따른 고정비 부담을 안고 있는 반면, 증권사는 슬림한 전문 조직을 바탕으로 매출을 '알짜 이익'으로 치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중은행들이 표면적인 1분기 WM 매출 상위권을 차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연초 이후 창구에서 전개된 '주식형 ETF 신탁' 가입액의 폭증 덕분이었다. 홍콩 H지수 ELS 사태로 고위험 상품 판매에 어려움을 겪던 은행들이, 창구에서 ETF 신탁 판매를 독려한 결과다.
KB국민은행은 1분기 WM 내 신탁이익만 전년 동기 대비 173.9% 폭증한 126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국민은행의 WM 매출 중 62%에 달하는 수치다. 나머지 4대 시중은행 역시 WM 부문 수익의 50% 이상을 신탁 수익에 의존하는 '쏠림 구조'를 보이고 있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은행권의 신탁이익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두고 수혜와 우려가 공존한다고 주장한다. 당장의 비이자이익 외형 방어에는 숨통이 트였지만, 수익의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는 취약점이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신탁수익 급증 요인 중 하나가 증시 호황에 따른 투자 수요 확대와 상품 조기상환·자동해지로 인한 '중도해지수수료'라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실제로 우리은행의 경우 올 1분기 신탁운용수익은 463억원으로 전년 동기와 동일했지만, 중도해지수수료가 14억원에서 292억원으로 폭증하며 신탁 수익 성장을 견인한 바 있다.
소비자 민원 역시 은행권의 부담 요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ETF 관련 민원 건수는 134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94% 폭증했다. 민원이 폭주하자 금융당국 역시 'ETF 투자 시 소비자 유의사항' 관련 내용을 공시하며 은행권의 ETF 신탁 판매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형국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연초 증시 호황에 ETF 수요가 늘어나며 관련 신탁 상품이 인기를 얻어 판매량이 급증한 영향도 있다"면서도 "유언대용신탁 등 다양한 신탁 상품 라인업 강화를 통해 자산관리 부문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시중은행은 WM 부문 경쟁력의 지속 가능성을 강화하기 위해 장기 자산 '락인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퇴직연금 시장은 은행과 증권사의 주요 격전지다. 증시 호황 속에서 증권사의 자산운용 강점을 바탕으로 한 '머니무브'가 가속화되자, 은행들은 이를 방어하기 위해 공세를 펴고 있다.
주요 은행들은 퇴직연금 실적배당형 상품 이용 고객을 붙잡기 위해 창구에서 퇴직연금 내 ETF 가입 이벤트를 독려하고 있다.
예컨대 KB국민은행은 개인형 IRP 계좌 내에서 ETF·TDF 등 투자상품을 순매수하면 추첨을 통해 투자상품 순매수 구간별로 경품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하나은행 역시 유사 이벤트를 통해 오는 8월 20일까지 상품권 지급 행사를 진행하고, 신한은행과 우리은행도 앞서 퇴직연금 ETF 매수 이벤트를 진행한 바 있다.
증권사는 장기 자산관리 플랫폼의 역량을 바탕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퇴직연금 시장 내 증권업계 선두인 미래에셋증권은 올 1분기 연금자산 잔고를 64조3000억원까지 확충하며 전 금융권 1위 자리를 공고히 했다. 이와 함께 한국투자증권 역시 개인 금융상품 잔고를 94조5000억원까지 늘였다. 이를 통해 고금리 발행어음과 종합투자계좌(IMA) 보수를 앞세워 은행 연금 대기 자금을 자본시장으로 강하게 흡수하고 있다.
고객의 뭉칫돈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초고액 자산가 시장에서도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특히 삼성증권은 10억 이상 고액 자산가(HNW) 고객 수를 44만9000명까지 가동하며 대규모 자산을 독식 중이다. 그 결과 1분기 기준 자산가를 겨냥한 랩어카운트 상품 판매 수익은 326억원으로, 전년 동기(56억원) 대비 약 5배 가까이 늘어났다.
은행권은 기존 패밀리 오피스(고액 자산가 대상 비즈니스) 사업 부문을 '종합자산관리 조직'으로 탈바꿈하며 대대적 혁신을 예고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올해 초 초고액 자산가 전용 브랜드를 재편하며 ▲투자 ▲세무 ▲법률 ▲회계 ▲부동산 전문가로 구성된 영업 조직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상속·증여 등 단순 자산 이전을 비롯해 부동산 개발, 법인 금융, 인수합병(M&A)을 아우르는 통합 컨설팅을 제공할 방침이다.
한편, 올해 초 은행과 증권사의 조직 전략 및 인력 교체 문법에서도 향후 WM 경쟁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가 엇갈린다. 대형 증권사들은 이미 궤도에 오른 자산관리 인프라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올해 WM 사업 담당의 일부 부문만 인력을 교체하는 '현상 유지' 전략을 택했다. 반면 위기감을 느낀 은행권은 WM 조직과 지점장 라인을 전면 교체하는 강도 높은 '인적 쇄신' 카드를 꺼내 들었다.
퇴직연금과 VVIP 비즈니스 전선에서 체질적 열위를 체감한 은행권은 자사 창구의 자본력과 고객 접근성에 증권사의 고도화된 투자상품 운용 역량을 결합하겠다는 활로를 모색 중이다. 은행과 증권의 긴밀한 협업 체계로 금융 '복합 점포 모델'을 제공하는 신한은행의 '신한 프리미어(Premier)'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향후 은행과 증권사의 WM 부문 경쟁은 자산 유입의 지속 가능성 확보에 방점을 두고 있는 만큼, 퇴직연금과 초고액 자산가 대상 비즈니스 사업 부문에서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며 "금융그룹 차원에서는 복합채널 활용과 소비자보호 체계 정교화를 통해 고객 이탈을 줄이며 비이자이익 기반을 다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