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전략투자공사, 첫 시험대는 딜보다 달러…고환율에 대미투자 속도조절 변수
입력 2026.06.18 07:00

박종원 전 산업부 통상차관보 초대 사장 임명
시행령 통과로 상업적 합리성·사업 선정 절차 구체화
연 200억달러 한도·캐피털콜 구조에도 1500원대 환율 부담
1호 딜보다 외화 조달·CIO 인선·집행 속도 관리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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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미전략투자공사가 18일 공식 출범한다. 초대 사장에는 박종원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가 임명됐다. 지난해 한미 관세협상 과정에서 합의된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를 집행할 전담기구가 법적·조직적 틀을 갖추게 된 셈이다.

    다만 공사 출범이 곧바로 대규모 대미 투자 집행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투자 후보 사업 발굴과 한미 간 협의, 상업적 합리성 검토가 남아 있는 데다, 무엇보다 원-달러 환율이 여전히 1500원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전략투자공사의 첫 시험대는 1호 프로젝트 선정 자체보다 달러 조달과 집행 속도 조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재정경제부는 17일 박종원 전 산업부 통상차관보를 한미전략투자공사 초대 사장으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박 사장은 행정고시 40회 출신으로 산업부 반도체디스플레이과장, 자동차항공과장, 중견기업정책관, 지역경제정책관, 통상차관보 등을 지낸 산업·통상 분야 정통 관료다. 대미 투자 패키지가 단순 재무적 투자라기보다 관세협상, 공급망 재편, 첨단산업 협력과 맞물려 있다는 점을 고려한 인선으로 해석된다.

    시장에서는 이번 인선이 공사의 초기 역할을 보여주는 신호라는 평가도 나온다. 초대 사장에게는 개별 투자 수익률 관리뿐 아니라 미국 정부와의 협의, 국내 관계부처 조율, 전략산업별 이해관계 조정 역할이 요구된다. 반도체·자동차·에너지·조선 등 산업정책 경험이 있는 인사를 앞세운 것은 초기 국면에서 대외 협상과 정책 조율에 무게를 둔 선택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공사가 문을 연 뒤부터다. 정부는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 한미전략투자특별법 시행령안을 의결했다. 시행령은 대미 투자 사업의 핵심 판단 기준인 '상업적 합리성'을 구체화했다. 개별 투자 사업의 예상 존속기간 동안 한국에 분배되는 총 예상 수입이 투자 원리금을 모두 충당할 수 있어야 상업적 합리성이 인정된다. 원리금 산정에는 개별 투자 시점의 미국 국채 20년물 금리에 한미가 협의한 가산금리를 더한 이자율이 적용된다.

    이는 형식적으로는 투자 안전장치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고금리·고환율 국면에서는 오히려 사업 선정의 문턱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미국 장기금리를 기준으로 한 이자비용을 감안해 원리금 회수 가능성을 따져야 하는 만큼, 정책적으로 의미가 큰 사업이라도 현금흐름이 불확실하면 상업적 합리성 판단을 통과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투자 구조도 단순하지 않다. 3500억달러 패키지는 2000억달러 규모의 대미 전략산업 투자와 1500억달러 규모의 조선협력투자로 나뉜다. 2000억달러 투자는 연간 200억달러 한도 내에서 사업 진척도에 따라 자금을 납입하는 캐피털콜 방식이다. 외환시장 불안이 우려될 경우 납입 시기나 규모 조정을 요구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돼 있다.

    다만 연간 200억달러라는 숫자 자체가 지금의 외환시장에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안팎에서 움직이는 상황에서 연간 한도 200억달러를 원화로 환산하면 약 30조원 규모다. 환율이 1300원대일 때와 비교하면 같은 달러를 조달하는 데 수조원가량의 원화 부담이 추가로 발생하는 셈이다. 환율이 10원 움직일 때마다 200억달러 기준 원화 환산액은 약 2000억원씩 달라진다.

    이 때문에 공사의 과제는 단순히 투자 재원을 마련하는 데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미전략투자기금의 재원은 공사 출연금과 한국은행·외국환평형기금이 위탁하는 외화자산, 한미전략투자채권 발행자금 등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위탁 외화자산은 대미투자 계정의 재원으로, 공사 출연금은 조선협력투자 계정의 재원으로 활용되는 구조다.

    어떤 방식으로 달러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외환시장에 주는 신호는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은행과 외평기금의 위탁 외화자산을 활용하면 당장 원화를 달러로 바꾸는 수요는 줄일 수 있지만, 외화자산 운용의 안정성과 시장 안정 기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한미전략투자채권 발행을 병행할 경우에는 조달금리와 스프레드, 정부 보증 및 국회 동의 절차가 쟁점이 될 수 있다.

    특히 지금처럼 원화 약세가 장기화한 국면에서는 투자 집행 자체가 새로운 달러 수요로 인식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대미 투자 패키지는 관세협상 이행을 위한 정책성 자금이지만, 시장에서는 결국 대규모 외화 유출 일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정부가 캐피털콜 방식과 연간 한도, 납입 시기 조정 장치를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란 설명이다. 제도적으로는 속도를 낼 준비가 끝났지만, 외환시장 여건상 실제 집행은 상당 기간 조절될 가능성이 크다.

    출범 초기에는 투자 발표와 실제 달러 집행 사이의 간극이 커질 전망이다. 정부에서도 앞서 올해 상반기 중 대미 투자가 본격 개시되기는 어렵고, 초기 집행 규모도 연간 한도에 비해 제한적일 수 있다는 취지로 설명해왔다. 공사가 출범하고 1호 프로젝트 윤곽이 제시되더라도, 실제 대규모 달러 납입은 환율과 사업 진척 상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이뤄질 공산이 크다.

    1호 프로젝트 후보로는 원전, LNG 인프라, 조선,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급망 관련 투자가 거론돼왔다. 하지만 어떤 사업이 먼저 선정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해당 사업이 한국에 충분한 회수 가능성을 제공하느냐다. 미국 측의 부지·전력·용수·구매계약 지원 여부, 한국 기업 참여 범위, 프로젝트별 현금흐름 구조가 상업적 합리성 판단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초대 최고투자책임자(CIO) 인선도 중요해졌다. 박 사장 인선이 산업·통상 조율에 방점을 둔 것이라면, 실제 투자 포트폴리오 구성과 위험 관리는 CIO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인프라, PF, 사모투자, 환헤지 경험을 두루 갖춘 인사가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공사가 출범했다고 바로 대규모 딜을 집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 환율 수준에서는 어떤 프로젝트를 고르느냐만큼이나 달러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조달하고 납입할지가 더 중요한 투자 판단 변수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