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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SK하이닉스는 작년 하반기 순현금 구조에 들어선 뒤 올 들어 폭발적으로 현금을 늘려가고 있다. 공모를 앞둔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발행까지 감안하면 연말께 보유 현금성자산이 150조원을 훌쩍 넘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신주 발행을 통한 ADR 상장을 문제 삼아왔다. 현금이 풍족한 상태에서 기존 주주들에게 희석 부담을 지우지 말고, 자사주를 매입해 ADR에 활용하는 동시에 주주가치 제고에 힘써달라는 얘기다. 산업 특성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단기적인 접근이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일단은 회사 차원에서 설명이 필요한 문제로 조명됐다.
SK하이닉스는 지난 1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다음과 같은 조건을 내걸었다. ▲우선 순현금을 100조원 이상 쌓아 중장기 재무건전성 목표를 달성하는 게 우선이고, ▲이후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환원 확대 계획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지금 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현금 창출력을 감안하면 연내에 둘 모두 달성 가능하니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올해부터 늘어날 설비투자(CAPEX) 규모나 혹시 모를 전방 인공지능(AI) 수요 변동을 감안하면 현금을 넉넉히 쌓아두고 단계적으로 주주 몫을 늘려나가는 게 맞는다는 설명이다.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연말로 갈수록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모두 현금 운용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어차피 쌓일 현금 상당수는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 방식으로 소진해야 한다. 그러나 당장의 우선순위는 적정 현금 수준을 맞추는 것이고, 주주환원은 연말에 내놓겠다고 약속했으니 급하게 결정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SK하이닉스가 상대해야 할 최대 경쟁자는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지난 수십년 압도적인 재무 체력을 바탕으로 메모리 시장 왕좌를 지켜왔다. 지난 2023년 최악의 적자 국면에서도 80조원 안팎의 현금고를 유지했고, 3년 채 지나지 않은 현재 보유 현금성 자산은 200조원을 넘보고 있다. 투자업계에선 연말쯤 300조원 이상 현금이 쌓여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달리 보자면 1등 삼성전자가 언제든 경쟁사를 말려 죽일 수 있을 만한 군자금을 잔뜩 쌓아두는 상황이다. 시클리컬 산업에선 불황기 투자 확대가 다음 호황기의 시장 지배력과 수익성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로 꼽힌다. 그리고 호황이 길어질수록 1등 업체는 더 큰 수익을 거두게 된다. 메모리처럼 천문학적인 CAPEX가 필요한 산업에서 이 정도 규모의 투자 여력을 장기간 유지해온 기업은 사실상 삼성전자가 유일했다.
이를 감안하면 SK하이닉스가 내건 순현금 100조원도 단순하게 설정된 재무 목표가 아니다. 시장에선 업황이 급락해 적자에 빠져도 '2년치 설비투자를 현금으로 버틸 수 있는' 실탄과 체력을 갖추려는 작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올해부터 SK하이닉스의 연간 CAPEX 규모는 5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SK하이닉스도 마침내 삼성전자 수준의 재무 체력을 갖출 수 있는 고지를 눈앞에 둔 것이다.
고지가 코앞인 만큼 SK하이닉스로선 현금이 아무리 풍족한 상태여도 긴장을 늦추기 어렵다. 당장 현금 벌어들이는 속도를 감안하면 어차피 주주환원을 늘려야 하나, 삼성전자와의 군자금 격차를 일정 범위 내로 좁히기 전까지는 관련 정책을 신중하게 펴나갈 필요가 있다.
원래도 메모리 사업은 금융사나 플랫폼 기업처럼 남는 현금을 곧바로 주주에게 돌려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계속해서 공정을 전환하고 생산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해마다 수십조원 규모 자본 투자가 필요하다. 메모리 산업이 시클리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는 있으나, 산업 특성상 언제든 대규모 적자 국면이 찾아올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주주 입장에서도 일회성 특별환원보다는 예측 가능한 환원 정책이 더 유리하다. 호황기 무리하게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늘렸다가 불황기에 이를 축소하는 것보다는 지속 가능한 수준의 주주환원 정책을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물론 삼성전자도 연말을 기점으로 새로운 주주환원 정책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기관투자자들도 단기적인 환원 규모보다는 양사의 중장기 배당, 자사주 매입 규모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확인된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현금 운용 방식까지 바뀌고 있는 걸 보면 주주환원 규모가 기대 이상으로 커지긴 할 것"이라며 "그러나 아직 상반기이고 하반기까지 관련 정책을 내놓기로 했으니 아직은 관련 정책을 예측하기 이른 시점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