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예금 한계에…'머니무브 공백' 은행채로 메우는 기업은행
입력 2026.06.19 07:00

대기업 자금 품은 시중은행
은행채 발행 부담 크지 않아
LCR 리스크에도 '아직은 여유'
기업은행은 시장성 조달 확대

  • 증시 활황에 따른 머니무브로 각 은행들의 자금 조달 방식이 엇갈리고 있다. 개인 예금 이탈이라는 공통 악재 속에서도 대기업 수신 유치력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모양새다. 시중은행은 대기업 자금을 흡수하며 비교적 안정적인 유동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기업은행 등 대기업 수신 기반이 약한 은행들은 은행채 발행 속도를 크게 높이며 자금 공백을 메우는 모양새다.

    다만 시중은행들도 대기업 자금 유입에 마냥 웃지만은 못하는 분위기다. 법인 자금은 개인 예금보다 규모가 크고 만기가 짧아 불안정성이 높기 때문이다. LCR 산정 때도 개인 예금보다 높은 이탈률이 적용되는 만큼, 자금의 양은 늘어도 안정성 측면에서는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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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초부터 지난 16일까지 은행채 발행액 합계는 110조8100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발행액 80조1520억원을 크게 넘어섰다. 증가분의 상당 부분은 기업은행 등 특수은행채가 차지했다. 기업은행은 올해 들어 41조5900억원의 은행채를 발행했다. 지난해 연간 발행액 39조9400억원을 상반기 중 이미 웃돈 규모다.

    반면 4대 시중은행의 은행채 발행액 합계는 같은 기간 18조4600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연간 발행 총량 42조8600억원의 43% 수준이다. 개인 예금 이탈이라는 같은 환경에 놓여 있지만, 시중은행은 대기업 자금 유입으로 수신 공백을 상당 부분 메우고 있는 반면 기업은행은 은행채 발행을 통해 부족한 자금을 충당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대기업 주거래은행 지위를 가진 시중은행들은 최근 반도체 등 대기업 실적 개선으로 기업성 예금이 크게 늘어났다고 설명한다. 개인 예금이 일부 증시로 이동하더라도 대기업 자금 유입이 이를 일정 부분 상쇄하면서, 당장 은행채 발행이나 예금금리 인상을 통해 조달을 확대할 필요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개인 자금이 증시로 일부 이동하는 흐름은 있지만, 반도체 부문을 비롯한 대기업들의 현금 유동성이 좋아 법인 자금 유입이 이를 일정 부분 상쇄하고 있다"라며 "연간으로 보면 예금 이탈 규모가 심각한 수준은 아니고, 아직까지는 관리 가능한 범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다른 한 관계자는 "대기업 자금 유입이 이어지고 있어 당장 자금량 자체에 대한 부담은 크지 않다"라며 "개인 예금이 늘어나는 것이 가장 좋지만, 기업 예금이 들어오고 있는 만큼 은행채 발행이나 예금금리 인상을 통해 무리하게 조달할 필요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면 기업은행의 상황은 다르다. 중소기업 금융 비중이 큰 기업은행은 대기업성 수신 기반이 상대적으로 얇아 수신에서 은행채(중금채)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높다. 여기에 생산적 금융 기조 속에서 중소기업 금융지원 역할까지 커지면서 은행채 발행을 통한 조달 수요가 작년보다 확대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 늘어난 은행채 발행의 상당 부분은 기업은행을 포함한 특수은행채가 차지하고 있다"며 "기업은행은 시중은행보다 대기업성 예금 유치 여력이 제한적인 만큼 은행채 발행을 통해 자금 수요를 메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지방은행들도 유사한 압박을 받고 있다. 지역 내 대출 집행을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 개인 예금은 증시로 이동하고 있지만, 대기업 자금 유입으로 이를 보완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방은행 입장에서는 예금금리 경쟁을 통해 수신을 방어하거나 은행채 발행을 늘리는 방식으로 조달 부담을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대기업 자금이 대거 유입된 시중은행들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기업성 자금은 개인 예금보다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상 안정성이 낮은 자금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LCR은 은행이 보유한 고유동성자산을 향후 30일간 순현금유출액으로 나눈 비율이다. 은행이 위기 상황에서 30일 동안 버틸 수 있을 만큼 현금화 가능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보는 지표다.

    LCR 산정 때 개인 예금은 안정적 예금이면 5%, 불안정 예금이면 10%의 이탈률이 적용된다. 반면 대기업 등 비금융기업의 비영업적 예금은 일반적으로 40%의 이탈률이 적용된다. 같은 1조원의 예금이 들어와도 개인 예금은 30일 안에 500억~1000억원이 빠질 수 있다고 보지만, 대기업성 단기자금은 4000억원이 유출될 수 있다고 계산하는 구조다.

    시중은행들은 이같은 법인 자금의 특성이 단순히 LCR 규제뿐만 아니라 실제 자금 운용 과정에서도 부담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법인 자금은 개인 예금보다 건당 규모가 큰 데다 만기가 짧은 경우가 많아, 만기 연장이 되지 않으면 단기간에 부족한 자금을 다시 메워야 하는 부담이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특정 대기업이나 기관 자금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해당 자금이 이탈했을 때 이를 대체할 조달원을 다시 확보해야 하는 부담도 커진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법인 자금은 규모가 크고 만기가 3개월 안팎으로 짧은 경우가 많아 롤오버가 되지 않으면 한 번에 큰 자금 공백이 생길 수 있다"라며 "현재는 시장 유동성이 넉넉해 특정 법인 자금이 빠져도 다른 기관 자금으로 메울 수 있는 상황이지만, 차환 리스크 자체는 존재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