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형 퇴직연금 앞두고 은행권 'TDF 힘주기'...'자동 운용' 논리로 맞불
입력 2026.06.22 07:00

기금형 도입 앞두고 TDF 확대 나선 은행권
DB형 자금 이동 가능성에 촉각…DC·IRP 수성 포석
"계약형 안에서도 자동 운용"…기금형과 경쟁 논리
TDF 수익률 13.7%…수익률 방어 카드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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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앞두고 은행권이 생애주기펀드(TDF, Target Date Fund)를 앞세워 계약형 퇴직연금 수성에 나서고 있다. 기금형이 '전문 운용을 통한 수익률 제고'를 내세울 경우 기존 계약형 자금이 이탈할 수 있는 만큼, 은행권은 계약형 안에서도 기금형에 버금가는 운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데 주력하려는 분위기다.

    고용노동부에서 '은행도 퇴직연금서 ETF 실시간 거래'를 위해 군불을 떼고 있지만 금융위원회는 요지부동인 상황에서, 기금형과의 수익률 경쟁을 위해선 TDF가 유일한 대안이라는 평가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은 최근 퇴직연금 계좌에서 활용할 수 있는 ETF형 TDF 상품 라인업을 일부 확대하고, 디폴트옵션 포트폴리오에서도 TDF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일부 은행은 자산운용사와 함께 TDF 신규 가입 이벤트를 진행하며 ETF형 TDF 고객 확보에 나섰다.

    은행권이 TDF에 주목하는 배경에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논의가 있다. 현재 국내 퇴직연금은 금융회사와 기업이 계약을 맺고 적립금을 운용하는 계약형이 중심이다. 은행권은 기업 주거래와 급여계좌, 퇴직연금 사업자 지위를 바탕으로 이 시장에서 강한 지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기금형이 도입될 경우 퇴직연금 자산을 별도 기금이나 수탁법인에 맡겨 전문가가 운용하는 구조가 가능해지면서, 기존 은행 고객 일부가 기금형이나 증권사 채널로 이동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은행권이 계약형 퇴직연금 안에서도 기금형에 버금가는 수익률과 운용 편의성을 확보하려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TDF가 기존 계약형 퇴직연금 사업자들의 대응 카드가 될 수 있다고 예상한다. 계약형은 가입자가 상품을 직접 선택하는 구조지만, TDF처럼 자동 자산배분 기능을 갖춘 상품이 늘어나면 계약형 안에서도 기금형과 유사한 운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은행권은 DB형 적립금의 향방을 주목한다. DB형은 근로자가 직접 상품을 선택하는 구조가 아니라 기업이 퇴직급여 지급 책임을 지고 적립금을 운용하는 방식이다. 다만 운용 손실이 발생하면 부족분을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만큼 실제 운용은 예금 등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치우친 경우가 많다는 평가다.

    향후 DB형 운용성과에 대한 설명 책임과 적립 부담이 커질 경우 기업들이 기존 DB형을 그대로 유지하기보다 DC형 전환이나 기금형 도입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기존 DB형 적립금이 은행의 계약형 DC·IRP 계좌에 남을지, 증권사 채널로 이동할지, 기금형으로 편입될지가 은행권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게 된다.

    은행권이 TDF 라인업 확대에 나서는 것도 이 같은 잠재적 이동 자금을 붙잡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첫째로 DC·IRP 시장에서 증권사의 ETF 중심 상품 경쟁에 대응할 수 있다. 투자에 관심이 높은 DC형 가입자들은 기금형 도입 이후에도 기존 계약형 계좌 안에서 직접 운용을 이어갈 가능성이 큰데, 은행권이 이들을 붙잡기 위해서는 예금 중심의 상품 구조에서 벗어나 실적배당형 상품군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하나는 기금형과의 경쟁 논리다. 기금형의 강점은 가입자가 직접 운용 판단을 하지 않아도 전문가가 장기 자산배분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TDF 역시 계약형 DC·IRP 계좌 안에서 '맡겨두면 알아서 굴려주는' 형태와 유사하다. 은행권은 이를 통해 기금형의 장점으로 꼽히는 전문 운용과 장기 분산투자 효과를 계약형 제도 안에서도 일부 구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계약형과 기금형의 경계가 상품 측면에서 일부 흐려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제도적으로는 계약형과 기금형이 구분되지만, 계약형 계좌 안에서 TDF와 같은 생애주기형 상품이 확대될 경우 가입자 입장에서는 직접 운용 부담을 덜면서도 전문가가 자산배분을 대신해주는 효과를 체감할 수 있다. 은행권이 TDF를 단순한 투자상품이 아니라 기금형 도입에 대응하기 위한 계약형 시장 방어 수단으로 보는 이유다.

    TDF는 은퇴 시점이 많이 남은 가입자의 경우 주식 등 위험자산 비중을 상대적으로 높게 가져가고, 은퇴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채권 등 안전자산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가입자가 직접 시장 상황을 판단해 포트폴리오를 바꾸지 않아도 운용사가 생애주기에 맞춰 자산배분을 조정한다는 점에서, 투자 경험이 많지 않은 퇴직연금 가입자에게도 접근성이 높은 상품으로 평가된다.

    규제 측면에서도 TDF는 퇴직연금 계좌에서 활용도가 높다. 일반적으로 퇴직연금에서 위험자산 투자에는 한도가 적용되지만, 금감원장이 정한 기준을 충족한 적격 TDF는 DC형과 IRP형 퇴직연금 자산의 100%까지 투자할 수 있다. 은행권이 DC·IRP 계좌의 운용상품뿐 아니라 디폴트옵션 포트폴리오에서도 TDF 활용도를 높이려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계좌를 통한 TDF 투자금액은 20조1000억원으로 전년 13조4000억원 대비 50% 증가했다. 전체 TDF 순자산 25조6000억원 중 퇴직연금계좌를 통한 투자 비중은 78.5%였다. 지난해 TDF 연간 수익률은 13.7%로, 퇴직연금 전체 연간 수익률 6.5%의 두 배를 웃돌았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계약형은 가입자가 상품을 직접 선택하는 구조지만, TDF처럼 선택 이후 생애주기에 맞춰 자산배분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상품이 늘어나면 계약형 안에서도 기금형과 유사한 운용 기능을 제공할 수 있다"라며 "기금형 도입 이후 일부 자금 이동 가능성을 의식한 기존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TDF를 전략적으로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