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가뭄에 코스닥 주관 쟁탈전 격화…'계약 빼오기' 불문율도 깨졌다
입력 2026.06.26 07:00

코스피 신규 상장 케이뱅크 1건뿐…예심 청구도 사실상 '실종'
수수료 높은 기술특례로 눈 돌린 주관사들, 코스닥 쟁탈전
주관사 정해진 기업에도 접촉…흔들리는 IPO '불문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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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유가증권시장(코스피) 딜 공백이 길어지면서 증권사들의 주관 경쟁이 코스닥 기술기업으로 옮겨붙고 있다. 

    중복상장 이슈로 대기업 계열사 상장이 사실상 멈춰선 가운데, 상장 실적을 채워야 하는 주관사들이 인공지능(AI)·반도체·로봇 등 기술특례 기업 확보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이미 주관사를 선정한 기업에까지 공격적인 영업을 진행하는등, 이전까지 암묵적으로 지켜왔던 '불문율'까지 깨지는 분위기다.

    올해 현재까지 코스피 신규 상장은 케이뱅크 한 건에 그쳤다. 반면 코스닥 신규 상장은 스팩(SPAC)을 제외해도 14건이다. 특히 코스피의 경우 케이뱅크 이후 신규 상장 예비심사 청구가 사실상 끊긴 상태다. 업계에서는 올해 남은 기간에도 코스피 예심 청구가 크게 늘기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중복상장 규제로 인해 심사 부담이 커지면서 대기업 계열사와 대형 딜의 상장 추진 동력이 약해진 영향이다.

    증권사 IPO 부서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큰 코스피 딜 공백이 직접적인 부담으로 이어진다. 대형 증권사는 과거 대기업 계열사 한 곳만 상장시켜도 적지 않은 인수 수수료와 트랙레코드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처럼 코스피 딜이 마른 상황에서는 IPO 실적을 기술특례상장 등 코스닥 딜에서 채울 수밖에 없다. 중소형사 역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기존 수익원이 위축된 상황에서 IPO 실적 확보가 절실해졌다.

    특히 기술특례상장은 일반 상장보다 인수수수료율이 평균적으로 1~2%포인트가량 높게 책정된다. 코스피 대형 딜이 줄어든 상황에서 증권사들이 기술특례상장 기업 확보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는 배경이다.

    모두가 코스닥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면서 업계 관행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발행사가 대표주관사를 선정하면 상장 준비 과정에서 주관 구도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발행사가 먼저 교체를 요구하거나 기존 주관사에 중대한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미 주관사가 정해진 기업을 다른 증권사가 적극적으로 접촉하는 것은 업계의 불문율에 가까웠다.

    최근에는 이러한 분위기가 눈에 띄게 약해지고 있다. 실제 최근 상장을 준비하는 한 기술기업의 경우 상장 준비 과정에서 주관사가 교체됐다. 기존 주관사가 선정된 이후에도 다른 증권사가 발행사와 접촉해 상장 전략과 심사 대응 방안 등을 논의했고, 발행사가 이를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주관사를 새롭게 선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전에는 한번 주관계약을 맺으면 별도의 파기 합의가 없을 때까진 준영구적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는데, 이제는 1년만 지나도 재점검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미 주관계약을 체결한 기업에 접근해 자기자본투자(PI)나 빠른 상장 등의 당근을 제시하며 계약을 빼가는 일도 예전에 비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공동주관 사례도 늘고 있다. 기존 주관사 외에 대형 증권사가 추가로 참여하는 방식이다. 추가된 주관사 입장에서는 트랙레코드 확보와 수수료 수익 확대를 기대할 수 있고, 발행사 입장에서는 심사 대응 경험과 투자자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업계에서는 이 과정에서 증권사들이 자체 네트워크를 활용해 유망 발행사와 접점을 넓히는 영업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기술기업 컨설팅 업계에서도 이러한 증권사들의 영업 강도가 예년보다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직 매출 규모가 크지 않거나 일반 상장 요건까지 시간이 필요한 기업에도 기술성 평가와 상장 일정을 먼저 제안하는 사례가 늘었다는 것이다. 

    일부 기업은 발행사보다 주관사가 상장 추진에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코스피 대형 딜이 사실상 사라진 상황에서 코스닥 기술특례 기업이 IPO 실적을 확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안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만 경쟁이 과열될 경우 부작용도 적지 않다. 발행사는 여러 증권사의 제안을 비교하며 협상력을 높일 수 있지만,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기업까지 상장 일정이 앞당겨질 경우 기술성 평가 탈락이나 심사 지연,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금융당국이 AI 워싱과 미래 실적 추정, 사업계획의 현실성 등을 더욱 엄격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만큼 상장 추진 과정에서 주관사와 발행사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 IPO 업계 관계자는 "올해 코스피 딜이 사실상 멈춰 있다 보니 증권사들이 코스닥 기술기업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먹거리가 줄어든 만큼 투자자 네트워크와 영업력을 총동원해 이미 주관사가 정해진 발행사와도 접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