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중앙그룹 회생·워크아웃 사태가 국내 크레딧 시장의 투자심리를 빠르게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제이알글로벌리츠(JR리츠), 태영건설, 홈플러스 등 최근 이어진 크레딧 이벤트와 달리 이번에는 그룹 차원의 다수 계열사가 동시에 신용위기에 빠지면서 증권사와 캐피탈, 저축은행 등 금융권 익스포저까지 재조명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당장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은 제한적으로 보면서도 A~BBB급 회사채 조달 환경은 한층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올해 2분기 회사채 시장은 발행 규모 자체가 줄었다. 인베스트조선 집계 기준 무보증 공모회사채 발행 규모는 41조796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1조9490억원)보다 약 20% 감소했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하고 은행권 대출 경쟁이 심화하면서 기업들이 장기 회사채 대신 은행대출과 기업어음(CP), 전자단기사채 등 단기 조달수단을 선택한 영향이다.
여기에 JR리츠와 중앙그룹 사태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크레딧 시장 분위기는 더욱 냉각됐다. 특히 중앙그룹은 JTBC뿐 아니라 중앙일보, 콘텐트리중앙, 메가박스중앙 등 복수 계열사가 동시에 회생절차 또는 워크아웃을 추진하면서 시장 충격이 개별 기업 부실보다 크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이른바 'jJ사태(JR리츠·중앙그룹)'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두 사건 모두 개인투자자와 일반법인 비중이 높은 채권시장에서 발생했고,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심리를 크게 훼손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JR리츠와 중앙그룹 관련 채권은 일반 개인과 일반법인 투자자의 보유 비중이 높고 투자자층도 상당 부분 겹치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정 기업 부실이 다른 하위등급 채권으로 부정적 전염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의미다. 통상 신용이슈는 개별 기업의 신용위험이 유동성 위기로 번지고, 이후 차환 위험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밟는다. 반면 최근에는 금리 상승과 머니무브 등 외생 변수로 차환 위험이 먼저 부각되고, 이후 기업의 유동성과 신용위험을 자극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시장의 기초체력도 약해져 있다. BBB급 일반 회사채 잔액은 2020년 1분기 말 약 5조9000억원에서 올해 5월 말 약 3조1000억원 수준으로 감소했다. 투자자 기반 자체가 줄어든 상황에서 연이은 크레딧 이벤트가 발생하면서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더욱 강해졌다는 분석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이번 사태의 영향이 단순히 BBB급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태영건설이나 홈플러스, JR리츠는 개별 기업 이슈 성격이 강했지만 중앙그룹은 여러 계열사가 동시에 얽혀 있다는 점에서 시장이 체감하는 충격이 훨씬 크다"며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지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크레딧 이벤트로서의 영향력은 기존 사례보다 훨씬 크다"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도 "공급은 늘고 투자 수요는 둔화되는 흐름에 중앙그룹 사태가 기름을 부은 격"이라며 "A-급 회사채도 조달이 상당히 어려워졌고, 투자심리가 더 악화하면 일부 AA급까지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실제 BBB급 이하 비우량채는 이미 미매각 부담이 커지고 있다. 동화기업(BBB+)은 400억원 규모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전량 미매각을 기록했다. A급 기업 중에서도 등급 하단에 있는 발행사들은 한 단계만 강등돼도 BBB급으로 내려앉는 만큼 조달 창구가 급격히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용평가 3사 기준 A- 등급에 '부정적' 전망이 붙은 기업도 9곳으로 파악된다.
여천NCC와 이랜드월드, 롯데손해보험 등 BBB급 채권의 유통금리는 중앙그룹 사태 이후 연 10% 안팎까지 뛰었다. 과거처럼 증권사가 총액인수 후 리테일 시장에 셀다운하는 방식도 부담스러워졌다는 평가다. 발행사 입장에서는 높은 금리와 미매각 위험을 동시에 감수해야 하고, 주관사 입장에서는 인수 물량을 떠안을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시장이 됐다.
금융사들도 긴장하고 있다. 은행권은 익스포저 규모를 감안하면 직접적인 손실 가능성이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지만, 캐피탈사와 증권사, 저축은행 등 비은행권은 여신건전성 관리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추가 크레딧 이벤트가 발생할 경우 부담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앙그룹과 거래 관계가 있었던 일부 금융회사들은 익스포저를 다시 점검하는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곧바로 금융시스템 전반의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문제는 실제 손실 규모보다 투자심리 훼손이다. 비우량채를 담아온 개인과 일반법인 투자자들이 손실 가능성을 확인한 이상, 하반기 신규 발행물에 대한 수요 회복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지금 시장은 금리보다 심리가 더 문제"라며 "기업의 펀더멘털보다 '혹시 또 다른 사건이 터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먼저 작동하는 상황인 만큼 하반기에도 크레딧 시장은 우량채와 비우량채의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