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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지스자산운용 경영권 매각이 결국 원점으로 돌아갔다. 표면적인 이유는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의 인수 자금 조달 실패지만,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애초부터 거래 구조 자체가 완주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국내 전략적투자자(SI) 대신 외국계 재무적투자자(FI)를 택하면서 기존 경영 체제는 유지할 수 있었지만, 금융당국 승인과 자금 조달이라는 더 높은 문턱을 떠안았다는 지적이다.
이번 거래는 고(故) 김대영 전 의장 측과 재무적투자자(FI)들이 보유한 약 98.8% 지분을 대상으로 추진됐다. 매각 주관사는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다. 지난해 말 본입찰에는 한화생명·흥국생명 등이 참여했고, 힐하우스가 경쟁 끝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우협 선정 이후 거래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올해 3월 말까지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지 못하면서 힐하우스의 우선협상권은 사실상 종료됐다. 이후에도 양측은 협상을 이어갔지만 금융당국 대주주 변경 승인 신청 단계조차 밟지 못한 채 결국 거래를 접었다.
시장에서는 애초에 원매자에게 요구된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매도자 측은 1조원 이상의 가격을 고수했고, 금융당국 승인을 얻지 못할 경우 계약금 반환 여부를 두고도 강경한 입장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일부 자회사 처리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협상은 계속 길어졌다.
무엇보다 매도자 측이 해외 FI를 선호한 점이 거래의 성격을 결정지었다는 분석이 많다. 국내 금융회사나 대기업이 인수할 경우 인수 이후 조직 개편이나 구조조정, 경영 참여 요구가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 반면 사모펀드는 일정 기간 기업가치를 높인 뒤 투자금을 회수하는 구조인 만큼 기존 경영진의 자율성을 상대적으로 보장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업계에서는 매도자 측이 이러한 점을 고려해 해외 FI를 우선적으로 검토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외국계 PEF라는 점이 오히려 거래 성사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됐다.
힐하우스는 싱가포르 기반 글로벌 투자사지만 창업주의 출신 배경 등을 이유로 중국계 자본 논란에 휘말렸다. 정치권에서는 국내 핵심 부동산 운용사가 중국 자본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졌고, 주요 기관투자가(LP)들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금융당국 승인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1000억원이 넘는 계약금을 먼저 걸고 거래를 진행하기에는 부담이 컸다는 평가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국내 금융회사나 SI가 인수하는 구조였다면 승인 리스크는 지금보다 훨씬 작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회사 처리 문제도 끝내 발목을 잡았다. 매각 과정에서는 이지스엑스자산운용, 이지스투자파트너스, 싱가포르 법인 등 일부 자회사를 매각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기존 주주 측이 다시 사올 수 있는 방안도 검토됐다. 운용사 M&A에서 원매자가 평가하는 것은 단순한 운용자산(AUM)이 아니라 핵심 인력과 신규 펀드 조성 능력, 개발 플랫폼, 해외 네트워크까지 포함된다. 이런 상황에서 성장축이 될 자회사 처리 방향이 불투명하다는 점은 원매자 입장에서 불만 요인이었다.
최근 판교 아이스퀘어 E동의 운용 주체가 자회사인 이지스엑스자산운용으로 변경된 것도 시장의 관심을 끌었다. 해당 자산은 삼성SDS와 GS리테일 등이 장기 임차한 우량 오피스다. 업계에서는 핵심 운용 자산 일부가 자회사로 이동하는 흐름을 보면서 "향후 성장성이 본체보다 자회사에 남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협상 과정에서도 자회사 편입 범위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매각 장기화는 비용 부담으로도 이어졌다. 거래가 수개월간 표류하면서 김앤장과 광장 등 법률자문사에 지급한 자문료가 막대한 수준으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 종결에는 실패했지만 대규모 거래 비용은 이미 발생한 셈이다.
매도자 측 사정도 협상을 길게 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대주주인 손화자 씨 측에서는 딸인 애미 김 씨가 주주 대표 역할을 맡아 협상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협상이 길어질수록 시장 환경은 악화했고, 최초에 기대했던 기업가치를 끝까지 유지하기도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흥국생명과의 법적 분쟁 역시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겼다. 흥국생명은 본입찰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했지만 프로그레시브 딜을 거쳐 힐하우스가 우협으로 선정되자 입찰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매도자와 주관사를 고소했다. 아직 수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대형 M&A 절차의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은 거래 내내 부담으로 작용했다.
국민연금과의 관계도 크게 흔들렸다. 힐하우스 우협 선정 이후 국민연금은 역삼 센터필드와 스타필드 고양, 마곡 원그로브 등 주요 자산을 둘러싸고 GP 교체와 자산 회수 가능성을 검토했다. 부동산 운용사 가치의 핵심인 LP 신뢰가 흔들리면서 기업가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특히 센터필드는 이번 매각전의 상징적인 변수였다. 국민연금과 신세계프라퍼티는 GP를 코람코자산운용으로 교체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최근 국민연금 대체투자위원회에서 해당 안건이 부결됐다. 결과적으로 GP 교체는 무산됐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국민연금과 이지스 간 균열은 시장에 적지 않은 부담을 남겼다.
결국 이번 거래는 단순히 원매자 한 곳이 이탈한 사건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경영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해외 FI를 선택했지만 승인 리스크를 넘지 못했고, 협상이 길어지는 사이 LP 신뢰와 거래 공정성 논란까지 한꺼번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매도자 측의 매각 의지는 여전히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창업주 유족과 FI 모두 지분 유동화 필요성이 큰 만큼 재매각은 시간문제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향후 재매각이 추진되더라도 기존 방식의 단순 반복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국내 금융회사나 SI를 포함한 컨소시엄 구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금융당국 승인 가능성을 높이고, LP 신뢰를 회복해야만 원매자들이 다시 가격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