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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성장펀드가 첫 해 사업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도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가 전략 사업 육성을 주도하면서 민관 자금이 일부 영역과 대기업 관련 거래로만 몰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국정 동력이 약화하는 수 년 뒤에도 정책 자금이 밀어올린 기업가치가 인정될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모펀드(PEF) 생태계는 변혁기를 맞았다. 국민성장펀드 사업을 따낸 운용사(GP)는 민간 출자자(LP) 자금이 몰려드는 반면, 그렇지 않은 곳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정부의 손실 보전과 세제 혜택을 업은 국민참여형 펀드가 5년 뒤 양호한 성적표를 받아들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모인다.
국민성장펀드는 '대한민국 20년 성장엔진'을 지원한다는 목표로 출범했다. 운용 규모가 5년간 총 150조원으로 정부 주도의 펀드 중 사상 최대다. 1호 사업인 신안우이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AI, 반도체, 방위산업, 바이오 등 주요 산업군에 대한 투자와 대출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다.
올해 운용 목표의 절반가량을 달성하며 순항하고 있는데, 실질을 들여다보면 불안 요소가 적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자금이 일부 영역과 대기업 관련 거래로만 쏠리면서 운용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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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직접투자 분야에서는 리벨리온, 업스테이지, 퓨리오사AI 등 AI·반도체 기업에 대한 투자가 이뤄졌다. 'K-엔비디아' 테마에 맞는 기업이 많지 않으니 투자처 선정부터 자금 집행 결정까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자금 수요처보다는 공급처의 입장이 더 강하게 반영됐다. 경쟁이 치열해 수백억원의 출자확약서(LOC)를 제출하고도 입장권을 받지 못하는 곳도 있었다. 벤처 투자와 큰 연관이 없는 수출입은행은 퓨리오사AI 투자자로 나섰다.
이들 기업의 가치는 민간 자본들이 투자를 검토할 때보다 크게 올랐다. 이에 대해 첨단산업 주도기업에 투자가 집중되는 것은 특정 정책 효과라기보다는 세계적 현상이란 의견이 있었다. 반면 유수의 투자사들도 예측이 어려운 AI·반도체 투자를 민관 금융권이 주도하는 것이 적절하느냐는 반론도 나왔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AI·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우리 기업이 빅테크와 메모리 기업이 주도하는 거대한 생태계에 편입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당장 내년도 예측하기 어려운 산업을 금융권이 주도해 투자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민성장펀드 연 운용 목표는 30조원에 이른다. 코스닥이나 벤처기업 투자만으로는 이를 채우기 쉽지 않다. 기존에 설정된 대형 투자 테마에 맞추려면 자연스레 대기업 관련 프로젝트에 자금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최근 삼성과 SK가 각지에 반도체 공장 및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우선 순위가 뒤바뀌는 모습이다.
대기업은 자체적인 자금력과 사업 역량을 갖추고 있어 금융 지원의 효과가 제한적이다. 삼성전자는 평택 반도체 5공장 시설자금을 빌리기로 했지만 실제 인출 시기는 늦어지고 있다. 분기에 수십조원을 벌어들이는 입장에선 저금리 대출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성장펀드의 주요 지원 대상은 AI, 반도체, 에너지 인프라 등인데 이런 사업은 대부분 삼성, SK 등 대기업이 진행하니 자금이 여러 번 들어가게 된다"며 "대기업에 자금을 몰아준다는 여론이 신경 쓰이다 보니 한 그룹 내 사업 중에서도 우선 지원 순위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간 금융사들은 생산적 금융 실적을 쌓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새로운 테마로 100조원 이상의 실적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보니, 대부분 경상적인 기업 투자나 대출로 실적을 채우고 있다. 투자처 확보 부담이 심화하면서 '사업 목적'과 다소 동떨어진 사례들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일부 금융지주는 시니어하우징 투자 방안을 검토 중이다. 부동산 업계에선 임대주택 공급과 장기 운영형 개발사업을 생산적 금융의 한 축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다만 이는 AI와 첨단산업 등 정부가 정의하는 생산적 금융과는 거리가 멀다. 부동산 자금을 자본시장으로 돌린다는 정책 취지와도 결이 다르다.
CJ CGV는 자회사 CJ 4D플렉스에 국민성장펀드 자금을 유치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콘텐츠는 펀드 지원 분야이긴 하지만, 벤처기업 육성이라는 당초 방향성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사 사이에선 극장산업 침체 여파로 향후 투자회수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적 목표와 사업성을 두고 저울질이 이뤄질 전망이다.
국민성장펀드 사업 초기 정부와 각 참여 주체들이 적극 나서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이런 분위기가 얼마나 지속될지 미지수다. 관 주도 사업은 후반부로 갈수록 동력이 약화하는 경우가 많다. 금융업계에선 향후 부담이 줄어들 것을 감안하고 초기에 짐을 더 지겠다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이 과정에서 집행된 투자와 대출에 대한 평가는 몇 해 뒤 이뤄질 수 있다. 정부는 '고의·중과실'이 아니라면 금융사의 국민성장펀드 관련 투융자 손실을 문제삼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면책을 확신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산업은행과 민간 금융사 모두 절차적 정당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간접투자 분야에 대한 전망 역시 엇갈린다. 국민참여형펀드는 정부가 국민투자금의 20%를 재정으로 후순위 출자하기로 했다. 시장에선 '후순위 LP가 있다고 모든 프로젝트 펀드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란 평가가 따랐다. 이전 관제펀드들의 성적표가 마땅치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 효과는 '소득공제'에 그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PEF 시장은 국민성장펀드 출범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이전에는 국민연금과 산업은행이 핵심 LP로 나서고 이후 민간 금융사들이 펀드 결성을 지원했다. 그러나 현재 산업은행은 기존 출자 여력 상당 부분을 국민성장펀드 쪽으로 돌렸다. 다른 금융사들도 생산적 금융과 위험가중자산(RWA) 분배 문제로 국민성장펀드 외엔 눈을 두기 어렵다. 1차 운용사 선정을 두고 GP간 마타도어가 줄을 이었다.
작년 금융사에서 한 푼도 출자받지 못한 한 GP는 1차 사업에 선정된 후 금융사의 출자 러브콜이 이어졌다. 펀드 매칭 자금 전액을 금융사에서 조달하기로 했다. 반면 작년부터 블라인드펀드 결성에 나선 다른 GP는 올해 자금 조달에 애를 먹었고, 결성 규모를 당초 목표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다.
1차 사업에 선정된 GP들은 하반기 중 펀드를 결성하고 투자에 나설 전망이다. 대규모 자금이 한꺼번에 시장에 나오기 때문에 투자대상 기업들의 몸값도 높아질 전망이다. 앞으로 5년간 국민성장펀드가 순항하고 돈이 계속 풀린다면 올해 결성한 PEF들이 양호한 성적표를 거두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고점 투자에 물릴 가능성도 있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예전이면 펀드 결성에 1년이 걸렸다면 1차 운용사에 선정된 곳들은 대부분 구두 약정으로 하루 만에 자금 조달을 마쳤다"며 "올해는 비슷한 시기에 인기 섹터에 집중하는 펀드들이 대거 결성되기 때문에 향후 회수 성적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