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위험자산 100% 허용에 '제동'…"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시즌2 우려"
입력 2026.07.08 07:00

'위험자산 70%룰' 완화 '난망'…당국 '소비자보호' 내걸고 신중모드
연금사업자 '동상이몽'…규제 완화에 ETF 수혜업권 시장 '독식' 우려
"단순 한도 조율 비효율적"…가입자 포폴 '질적 관리 체계' 강화 시급

  • 정부 주도로 급물살을 타던 퇴직연금 위험자산 투자한도 규제(70%룰) 완화 논의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등 자금 쏠림에 대한 증시 변동성 리스크가 연금 시장에서 재현될 수 있다는 업계와 당국의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에만 여섯 차례나 서킷브레이커(지수 8% 이상 급락시 20분간 매매 정지)가 나오는 등 변동성이 커진 상황이라 규제당국의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다만 퇴직연금 시장 내 실적배당형 상품에 대한 수요는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규제와 수요 사이의 간극이 더욱 벌어지는 모양새다.

    8일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실적배당형 적립금 규모는 123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64% 급증한 수준이다. 퇴직연금 전체 적립금 규모가 연간 약 13%대의 성장률을 보이는 것을 감안하면, 퇴직연금 가입자의 투자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증시 호황에 힘입어 다양한 투자 전략을 구상할 수 있는 ETF 투자 수요가 높다. 지난 2023년 9조원에 머물러있던 퇴직연금 내 ETF 잔액은 지난해 기준 48조7000억원까지 불어났다. 이는 2023년부터 연평균 130%가 넘는 적립금 증가율을 기록한 결과다.

    금융당국은 지난해부터 거시 경제·금융 변화에 따라 늘어난 퇴직연금 가입자의 자산운용 수요를 반영해, 퇴직연금 자산배분 규제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인 바 있다. 이어 지난 10일 고용노동부가 기존 퇴직연금 내 위험자산 비중을 70%로 제약하는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며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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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그간 퇴직연금 '70%룰'은 규제 우회가 가능하고 투자 수요를 과도하게 억제한다는 점에서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제기된 바 있다. 특히 채권혼합형 ETF와 TDF(타깃데이트펀드) 상품을 통해 위험자산을 최대 90% 이상까지 끌어올리는 등 '우회 투자' 행태가 감지되기도 했다.

    문제는 최근 들어 심화한 ETF 투자 쏠림 현상에 따른 주가 변동성이다. 특히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등 고수익·고변동 상품 수급에 따라 개별 상장기업 주가가 크게 출렁이며 감독당국과 정부 부처 모두 규제 완화에 신중한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이찬진 금감원장의 소비자보호 기조 아래 규제 개선 동력이 꺾였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자산관리에 미숙한 일부 연금 가입자에 대한 우려가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최근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이른바 '개미 투자자'의 레버리지 등 고위험 투자에 대한 쏠림 현상이 연금 시장에서 벌어지지 않게 '70%룰'이라는 '자산 배분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그간 퇴직연금 위험자산 한도 완화에 대한 업계의 목소리를 고용노동부에 전달한 상태"라며 "정책 방향성이 정해진 후에 후속 조치를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하우스별 이해관계에 따라 퇴직연금 규제 개선에 대한 시선이 엇갈린다. ETF 상품 판매 증가로 수혜를 입을 증권·자산운용사에 대한 은행·보험업권의 반발을 넘어, 최근에는 ETF 주력 운용사와 TDF(타겟데이트펀드)나 전통적 펀드 주력하는 중소형 운용사들의 규제 완화에 대한 셈법도 엇갈리는 모습이다.

    중소형 운용사 입장에서는 TDF나 BF(밸런스펀드) 시장 축소에 따른 대형 운용사로의 자금 이탈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업계 해석이다. 투자 목표 시점에 맞춰 위험자산 비중을 조절해 주는 TDF는 퇴직연금 위험자산 한도가 사라질 경우 투자자 수요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운용업계 일각에서는 위험자산 투자한도를 늘릴 경우, 연금 자금이 해외 자산으로 쏠리는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기존 퇴직연금 계좌의 세제 혜택에 자금 규제 문턱까지 낮아지면 시장 불균형이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ETF 시장이 커질수록 증권사 LP(유동성공급자)의 호가 부담과 리밸런싱 시 발생할 괴리율 리스크를 어떻게 제어할지에 대한 고민도 부재한 상황이다.

    한편, 업계 전문가들은 위험자산 투자한도를 명목상 수치로 제한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꼬집는다. 금융사들이 한도 준수 여부만 확인하고, 한도 초과 시에만 기계적인 안내를 할 뿐 포트폴리오의 질적 관리는 하지 못하는 '수동적 체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모습이다.

    이에 자산비중을 수치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산 구성을 질적으로 들여다보는 '고객 밀착형 자산관리 체계'의 강화가 대안으로 제시됐다. 특정 섹터에 자산 편중이 심한 가입자, 또는 수년간 리밸런싱을 하지 않은 가입자를 체계적으로 분류해 금융사가 밀착 컨설팅을 제공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에 따른 리스크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리스크의 집중도를 해소해 분산 투자를 유도하는 방향성의 규제가 필요하다"며 "퇴직연금은 노후자산의 특성이 있는 만큼 수익률 제고뿐만 아니라 기업 및 개인을 위한 안전장치가 섬세하게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