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투톱' 삼전닉스에 저당 잡힌 한국 경제와 자본시장
입력 2026.07.09 07:00

Invest Column
"韓 대규모 투자, 종말의 시작" 'AI 고점론'에서
다시 랠리 기대된다며 주가 변동성 고도로 높아져
삼성전자 호실적에도 주가는 다시 하락세
800조 호남 투자 등 정치도구화된 반도체
반도체에 쏠린 유동성에 여타 산업들은 무관심
삼전닉스 사이클 하락 대비할 '플랜B'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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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가의 명운을 단 하나의 산업에 전부 건 듯하다.

    6월 말, 이재명 정부는 서남권 반도체 생산기지 조성을 공식화하며 축포를 터뜨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800조 원을 투입해 메모리 반도체 팹 4기를 구축하는 메가 프로젝트다. 정부는 전폭적인 인프라 지원을 약속하며 이를 국가적 치적으로 내세웠다. 반도체 산업 육성이 철저한 경제 논리를 넘어, 거스를 수 없는 '정치적 명분'으로 자리 잡은 형국이다.

    그런데 정부 발표문이 채 식기도 전에 글로벌 자본시장의 시그널은 정반대를 가리켰다. AI 인프라 투자를 주도하던 메타(Meta)가 데이터센터의 남는 연산 자원을 외부로 돌리는 클라우드 사업 진출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어 AI 반도체를 매입하던 빅테크마저 컴퓨팅 자원의 공급 과잉을 겪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서브프라임 사태를 예견했던 마이클 버리는 한국의 대규모 반도체 투자를 성장의 신호가 아닌 '정점(Peak)'으로 해석했고, 골드만삭스 역시 AI 인프라에 투입된 1조 달러가 적절한 투자수익률(ROI)을 증명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모건스탠리도 고객들에 발송한 보고서에서 반도체주의 실적 모멘텀이 정점을 지났고 추가 조정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며 "단기적으로 반도체 비중을 줄이라"고 조언했다.

    시장을 지배하던 'AI 반도체 수요의 무한 팽창'이라는 대전제에 금이 가면서 국내 반도체 투톱의 주가는 직격탄을 맞았다. 물론 반도체 산업이 장기적으로 우상향 궤적을 그릴 것이란 전망 자체를 부정하긴 어렵다. 어닝시즌을 맞아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와 애플의 분기 영업이익을 단숨에 넘어서는 89조 원대의 호실적을 기록했지만, 주가는 제자리를 찾기는커녕 오히려 변동성을 키우는 모습이다. 방향성을 좀처럼 읽을 수가 없다.

    주가 우상향 과정에서 수반되는 폭등과 폭락의 잦은 변동성을 시장이 언제까지 감내할 수 있을지 명심해야 한다. 이미 우리 주식시장은 상반기에만 수십 차례의 사이드카가 발동되는 비정상을 경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극심한 리스크를 철저히 외면한 채 정치적 도구화에만 앞장서고 있다. 한때 님비(NIMBY)의 대명사였던 반도체 공장 유치에 지자체들이 사활을 걸면서, 호남권 투자 역시 산업적 합리성보다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정치적 할당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첨단 팹 가동에는 원전 수기에 맞먹는 전력과 하루 100만 톤 이상의 초순수가 필요하다. 기존 수도권 산단조차 인프라 확보에 난항을 겪는 마당에, 기반이 취약한 서남권에 단기간 내 거점을 닦겠다는 계획의 실현 가능성에는 의문 부호가 붙는다.

    자본시장의 왜곡은 한층 더 심각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유가증권시장에서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은 최근 55.3%로 치솟았고, 거래대금 비중은 63.5%에 달한다. 시중 유동성이 반도체라는 단일 테마로 빨려 들어가면서 개인 투자자들은 매일같이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변동성에 베팅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거래 쏠림 현상을 경고하고 나섰지만, 국민성장펀드조차 포트폴리오 분산이라는 기본을 잊고 반도체 섹터에 편중되면서 시장의 정상적인 자금 배분 기능은 마비된 상태다. SK하이닉스의 ADR이 나스닥에 상장되면 관련 파생상품이 또 늘어날테고, 그만큼 변동성은 더 커질 거라는 전망들이 수두룩 하다. 기관투자가들 사이에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주식을 사면 되지, 힘들게 딜을 따내면 뭐하나"라는 자조적인 반응이 시장을 뒤덮었다.

    TSMC라는 단일 기업에 국가 역량을 집중한 대만의 현주소는 우리의 훌륭한 선행 지표다. 대만은 경제성장을 TSMC에 의존한 대가로 극심한 전력·용수 부족을 상시 겪고 있으며, 국가의 모든 자본과 우수 인재가 편중되면서 타 산업의 펀더멘털이 고갈되는 '산업 생태계 양극화'가 고착화됐다.

    우리 역시 이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국가 산업 포트폴리오 다변화는 철저히 시장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중국의 저가 공세에 치인 석유화학 산업, 막대한 친환경 전환 비용을 떠안은 철강 산업, 캐즘에 직면한 이차전지 산업 등 뼈를 깎는 체질 개선 논의는 자취를 감췄다.

    반도체 쏠림이 빚어낸 왜곡은 실물 경제와 사회 전반으로도 전이됐다. 두 기업이 쏟아내는 막대한 현금성 보상은 사업장 인근과 서울 집값을 기형적으로 끌어올리는 뇌관이 됐고, 타 IT 업계의 도미노식 성과급 인상 투쟁을 촉발했다. 지급 여력이 없는 전통 제조업과의 임금 격차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벌어졌다. 이 막대한 사회적 갈등 비용 역시 국가 전체가 단 두 개의 기업에 집중된 결과다.

    국가 경제와 자본시장, 정책 역량 전체가 사실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두 기업에 '저당' 잡힌 꼴이다. 거시 경제를 지탱하는 국가라면 산업 사이클 하락기(Downturn)에 대비한 헤지(Hedge) 전략을 갖춰야 하지만, 현재로선 실패했을 때의 퇴로가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의 맹목적인 치적 쌓기와 자본시장의 기형적인 쏠림이 방조한 이 거대한 저당물은, 산업 사이클이 고꾸라지는 순간 고스란히 국가와 국민이 감당해야 할 막대한 부채로 청구될 것이다. 장기적 성장에 대한 맹신만으로 단기적 충격을 방치하는 '올인(All-in)'은 투자가 아니라 도박이다. 국가 산업과 자본시장의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을 냉정하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