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 시장 동맥경화에 캐피탈들이 다시 '과감'해졌다
입력 2026.07.09 07:00

RWA 규제에 지갑 닫던 캐피탈사들
양질의 딜 사라지고, 조달금리 상승하자
출자 규모 최소 300억원 단위까지 상향
금리 눈높이 낮추고 규모 늘려 수익성 방어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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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난해까지만 해도 적극적으로 출자에 나서지 못했던 캐피탈사들이 최근 들어 조금 다른 양상을 띄고 있다. 과거 높은 금리에 출자 대상과 방식이 제한적이고 타 업권과 비교해 투자 규모가 작은 편이었다면, 최근엔 투자 규모가 늘고 금리 조건도 다소 느슨해졌단 평가를 받는다.

    인수합병(M&A) 및 부동산 시장이 위축하고, 금융업권 전반적으로 투자 대상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 몰리자 '돈이 될만한 거래'에 집중하는 모습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가계 대출시장이 급랭하고 굵직한 프로젝트가 자취를 감춘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비교적 높은 금리와 소규모 출자만으론 생존이 어렵단 판단이 깔려 있기도 하다.

    물론 투자 시장을 위축시킨 RWA 규제는 캐피탈사들에도 여전히 동일하게 적용된다. 다만 금융지주회사 내에선 캐피탈사들이 은행을 비롯한 주력 계열사들에 비해 RWA 한도에 다소 여유가 있고, 금융당국의 감시망도 상대적으로 느슨하단 점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수 있게 된 배경이란 설명이다.

    최근 수도권 데이터센터 개발 사업에 국내 한 지주계열 캐피탈사는 총 1000억원의 출자를 승인했다. 해당 사업 대주단의 총 여신 규모는 6000억~7000억원 수준이다.

    금리와 수수료 등 제반 비용을 모두 더해 차주에 적용한 금리는 6% 내외. 해당 캐피탈사는 출자금의 1.2%가량의 수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번 거래는 국내 한 대기업이 해당 데이터센터를 마스터리스(통임차)하기로 확정하며 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검토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 투자시장에 가장 관심도가 높은 데이터센터 개발이라고 할지라도, 개발 사업 자체에 캐피탈사가 1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출자하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상대적으로 조달 금리가 높아 여신 금리 역시 다른 업권에 비해 높게 형성될 수밖에 없는데, 차주 입장에선 캐피탈사를 비롯해 고금리 자금을 많이 끌어 쓸수록 수익률이 낮아지는 영향이 생긴다.

    캐피탈사들의 출자금액은 최근 하한선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단 평가도 있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한두달 사이에 투자시장의 분위기가 변한 게 확연하게 느껴진다"며 "과거 컨소시엄을 구성해 최대 100억~200억원을 출자하던 캐피탈사들의 최소 출자 한도가 최근엔 300억원 수준으로 급증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출자 단위가 확연하게 달라진 건 조달금리의 상승이 가장 큰 요인이다. 높은 금리로 조달한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마땅한 투자처가 많지 않다. 개인과 기관을 막론하고 우리나라 증시로의 자금 쏠림이 심화하자, 수신 기능을 갖춘 금융사들은 전반적으로 예금 금리를 속속 올리며 대응하고 있다. 캐피탈사들이 발행하는 여전채(금융기관채 AA+ 3년물)의 금리는 연 4.2%를 넘었는데, 여전채 금리가 4%대를 넘어선 것은 2023년 이후 약 3년만이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상향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는 상황에서 조달 비용에 대한 캐피탈사들의 부담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높은 조달금리에 맞대응 할 수 있는 고금리 투자 대상이 시장에 많다면, 수익률 방어에 보다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지만 현재는 이런 투자처가 많지 않다. 특히 여전사들이 주요 투자처로 물색했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은 개인 대출 규제가 강화하며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

    현재는 정부가 부실 PF사업장을 정리하겠단 취지에서 내놓은 후속조치인, 자기자본비율 제도 개선 방안도 일각에선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오는 2027년부터 PF사업에서 시행사의 자기자본비율을 5%로 시작해 4년에 걸쳐 20%까지 단계적으로 끌어올리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실제로 상호금융권 일부는 여신 조건으로 자기자본을 20%까지 채울 것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 자본 여력이 있는 대형 시행사들의 경우, 임차인을 확보한 비교적 안정적인 PF 사업장엔 자기자본 비율을 50% 이상까지 맞추는 경우도 등장했다. 대주단 전반적으로 조달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상황에서, PF 사업에 대출 비중이 높으면 그만큼 사업의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이 그 배경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회사들은 RWA 규제, PF 사업에선 대출규제 등 복합적인 제약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나면서 금융사들이 안전 자산에 더 많은 자금을 출자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PF 시장에 우량 사업장이 몇 곳 안되다 보니 여전사들까지 합세해 대주단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며 캐피탈사들 역시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단 부동산 시장뿐 아니라, M&A 시장(PEF 출자, 인수금융) 등에서도 캐피탈사들은 지난해와 조금 다른 양상을 띄고 있다. RWA 규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던 1~2년 전만해도 캐피탈사들이 지갑을 닫으며 건전성 관리에 나섰다면, 최근엔 신한·산은·JB 등 금융지주사 계열 캐피탈사를 중심으로 출자 검토가 다시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내 PEF 운용사 한 대표급 관계자는 "현 시점 범금융권에서 금융당국의 압박이 그나마 가장 덜 받는 곳이 캐피탈사들이다 보니, 지주사 차원에선 은행이나 보험보단 차라리 캐피탈사에서 출자하는게 낫다는 기조가 있다"며 "금리 상승기에 투자처가 마땅치 않은 캐피탈사들이 보다 양질의 거래를 찾아 나서려는 움직임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