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들어오는데 나갈 문은 닫혔다…'여신 족쇄'에 갇힌 은행권
입력 2026.07.14 07:00

주담대 문턱 높이는 은행들…가계대출 사실상 '셧다운'
생산적금융 몰리지만…기업여신은 '나눠 먹기'
법인자금에 정기예금까지…불어나는 은행 곳간
채권 향하는 여유자금…'조달 줄이고 운용은 짧게'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은행들이 가계대출 관리에 한층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은행권에는 기업예금 등을 중심으로 자금이 유입되면서 수신과 여신 간 미스매치가 심화하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돈은 있지만 굴릴 곳은 마땅치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5대 은행 가계대출 목표 80% 소진…은행들 잇단 조이기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지난 10일부터 수도권과 규제지역 주택구입자금 대출의 최대한도를 기존 6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춘 데 이어, 별도 상한이 없던 비규제지역에도 3억원 한도를 적용했다. 정부가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최대 6억원으로 제한한 상황에서 시중은행이 자체적으로 한도를 절반까지 낮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른 은행들도 가계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하나은행은 오는 9월 실행되는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에 대해 대출모집인을 통한 접수를 중단했다. 신한은행도 대출모집인 접수 채널을 닫은 데 이어 모기지보험 가입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줄였다.

    은행들이 잇달아 대출을 조이는 것은 연간 가계대출 증가 목표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5대 은행의 정책성 대출을 제외한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9일 기준 648조3607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3조3907억원 증가했다. 올해 연간 증가 목표인 약 4조3400억원의 80%가량을 이미 사용한 셈이다. 5대 은행 중 3곳은 개별 목표치를 넘어섰고, 한 은행은 증가액이 연간 목표의 약 1.3배에 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은행권에서는 가계대출이 사실상 '중단' 단계에 들어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최근 주택과 주식시장 관련 대출 수요는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 정책에 부응하려면 신규 취급을 줄이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설명이다.

    기업대출로 몰리지만 개별 은행 증가분은 분산

    은행들은 대출자산의 다른 한 축인 기업대출 확대에 나서고 있다. 정부의 생산적금융 기조에 맞춰 기업 자금 공급을 늘려야 하는 데다 가계대출을 대신할 운용처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은행권 기업대출은 5조1000억원 증가해 잔액이 1413조4000억원으로 늘었다. 상반기 전체 증가액은 49조5000억원으로, 대기업대출이 25조5000억원, 중소기업대출이 24조원 증가했다. 회사채 시장에서는 상반기 중 14조4000억원이 순상환되면서 회사채 대신 은행 대출을 찾는 대기업 수요도 일부 유입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기업대출도 개별 은행 차원에서는 크게 늘리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반도체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면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위해 적극적으로 대출받을 만큼 경기 상황이 좋지 않은 데다, 가계대출이 막힌 은행들이 모두 기업여신으로 몰리면서 한정된 수요가 여러 은행으로 분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대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마진도 낮아지고 있다. 우량 대기업은 회사채 등 다른 조달 수단도 갖추고 있어 은행들이 낮은 금리를 제시해야 하고, 중소기업이나 신용도가 낮은 차주로 대출을 확대하면 건전성과 충당금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시중은행 자금부 한 관계자는 "회사채 발행보다 은행 대출이 유리해지면서 대기업 자금 수요가 일부 넘어오는 흐름은 있다"면서도 "가계대출 규제로 모든 은행이 기업대출에 집중하고 있어 수요가 여러 곳으로 분산되는 만큼 개별 은행에서 자금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기업자금 중심으로 수신은 증가…역머니무브 판단은 일러

    반면 수신 측면에서는 은행권으로 자금 유입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은행 수신은 28조8000억원 증가했다. 수시입출식예금은 가계자금 유출에도 반기 말 법인자금 유입 등에 힘입어 12조2000억원 늘었고, 정기예금도 은행들의 기업자금 유치 영향으로 14조2000억원 증가했다.

    은행권에서는 개인자금이 증권사 등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이어졌지만, 수출 호조 등으로 늘어난 법인 잉여자금이 기업예금으로 들어오면서 전체 수신은 아직 '플러스'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5대 은행의 기업 단기자금 예치 수단인 MMDA 잔액은 6월 말 기준 148조4527억원으로 상반기에만 21조1145억원 증가했다.

    최근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도 다시 늘고 있다. 지난 9일 기준 잔액은 961조8122억원으로 6월 말보다 12조4124억원 증가했다. 시장에서는 증시 변동성 확대에 따라 일부 차익 실현 자금이 유입됐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다만 은행권에서는 이를 본격적인 역머니무브로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보고 있다. 증시에서 나온 자금이 정기예금에 장기간 머무르는 것인지, 다른 종목이나 금융상품으로 이동하기 전 잠시 대기하는 자금인지 아직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성 자금은 만기가 짧아 은행이 이를 장기 대출이나 채권으로 운용하기도 어렵다.

    은행채 줄여왔지만 발행계획은 채워야

    은행 입장에서는 사실상 ‘돈은 있지만 쓸 곳은 많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대출 증가세가 제한된 가운데 기업예금 등 수신이 유입되면서 상반기 시중은행의 은행채 발행도 비교적 많지 않았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다만 은행채 발행을 실제 자금 수요에 맞춰 계속 줄이기도 어렵다. 은행들은 연초 일괄신고서를 통해 연간 발행예정액을 신고하는데, 계획 대비 감액은 신고 금액의 20%까지만 허용된다. 사실상 예정 물량의 80%는 발행해야 하는 구조다. 이에 은행권은 자금 수요에 따라 발행 물량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에 규제 완화를 요청한 상태다.

    일부 은행들은 지난 4월 이후 여유자금을 활용해 채권 운용을 조금씩 확대하고 있다. 다만 기준금리 인상 폭과 최종 금리 수준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만큼 장기채보다는 2~3년물 공사채와 은행채 등 단기 우량채를 만기까지 보유하며 이자수익을 확보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금리가 고점에 근접했다는 인식은 있지만 기준금리 인상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불확실해 장기채에 적극적으로 들어가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은행들도 금리 하락에 따른 매매차익보다는 2~3년물 우량채를 만기까지 보유하며 이자수익을 확보하는 쪽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에서는 하반기에도 자금 운용처가 크게 늘어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최근 국민은행이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축소하면서 다른 은행에 수요가 몰릴 경우 추가로 한도를 낮추는 은행이 나올 수 있어 가계대출 증가 폭은 더욱 제한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가계대출은 총량 규제로 추가 확대가 어렵고, 기업대출도 경기와 은행 간 경쟁을 감안하면 개별 은행이 크게 늘리기 쉽지 않다"라며 "법인자금은 누적으로 플러스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변동성이 커진 데다 개인자금의 은행 복귀도 아직 뚜렷하지 않아 하반기 자금 운용 여건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