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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SK하이닉스가 여유자금으로 채권 매입을 확대하면서 크레딧 시장의 주요 매수 주체로 떠올랐지만, 은행채 시장에서는 기대만큼의 온기가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은행들과 SK하이닉스의 만기 선호가 맞지 않아 적극적인 발행으로 이어지기 어렵고, 시장금리 상승으로 발행 비용 부담이 커진 점도 은행들이 SK하이닉스 수요에 쉽게 올라타지 못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SK하이닉스는 AA급 이상 우량채를 중심으로 채권 매입을 이어가며 채권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올해 들어 매수한 증권채와 회사채 규모는 약 2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SK하이닉스는 일주일 단위로 채권 매수 여부를 검토하며 여유자금을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가 매입을 검토하는 채권은 공사채와 은행채, 증권채, 여전채 등으로 다양하다. 업계에서는 지난 6월 회사채 시장이 사실상 '발행 절벽'에 가까운 시기를 겪으면서 SK하이닉스가 어려운 시장에 단비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은행채를 발행하는 은행들도 SK하이닉스가 수급 측면에서 일정 부분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은행들은 미리 신고한 일괄신고서상 발행 규모 등을 고려해 일정 물량을 발행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은행채를 받아줄 투자자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SK하이닉스와 같은 대형 매수 주체가 등장하면 발행금리 상승 압력을 일부 완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금리가 계속 올라가다 보니 수급 측면에서 하이닉스를 제외하고서는 수요처가 마땅치 않은 게 사실"이라며 "하이닉스가 매수하는 규모 자체가 크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일정 수요가 확인되면 발행금리가 더 높아지는 것을 방어하는 효과는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시중은행들이 SK하이닉스 수요를 고려해 은행채 발행을 적극적으로 늘리는 분위기는 아니다. 공사채나 여전채 등이 SK하이닉스가 원하는 만기에 맞춰 발행되면서 관련 수요를 적극적으로 흡수하려는 흐름을 보이는 것과는 다소 대조적이다.
가장 큰 이유는 만기 차이다. SK하이닉스는 내후년 성과급 지급 시점 및 용인 클러스터 공사 대금 지급 시기 등을 고려해 2년 전후 특정 만기의 채권을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은행들은 최근 시장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조달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1년 안팎의 은행채 발행을 선호한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원하는 만기는 은행 입장에서는 다소 긴 편"이라며 "은행채 발행 비용 자체가 다른 조달 수단에 비해 메리트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SK하이닉스가 원하는 만기에 맞춰 적극적으로 발행하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은행권 다른 관계자도 "SK하이닉스가 원하는 구간으로 은행채를 발행하면 금리가 4%대를 넘어서는데, 은행 입장에서는 그 구간에서 발행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며 "절대금리 자체가 내려오면 발행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은행들은 SK하이닉스의 수요를 고려해 2년물까지는 아니더라도 1년 9개월~10개월 정도로 만기를 조정하고 있다. 그러나 은행들이 정기예금 상품을 연 단위로 구성하는 경우가 많고, 은행채 발행 역시 연 단위 만기가 정형화돼 있던 만큼 아직까지는 일부 사례에 그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SK하이닉스의 매수 방식 또한 은행채 발행 조건을 맞추기 어려운 배경으로 꼽힌다. 은행채는 시장에서 꾸준히 발행되는 채권인 만큼 안정적으로 물량을 받아줄 투자자가 필요한데, SK하이닉스의 매수는 주간 단위 검토를 거쳐 특정 시점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설명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SK하이닉스가 특정 요일을 정해 자금을 집행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최근에는 여러 제약 요인 때문에 요일과 관계없이 집행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그동안은 일주일 중 특정 요일을 정해 집행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올해 시중은행의 은행채 발행 규모는 지난해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책자금 집행 필요성 등으로 특수은행채 발행은 늘어나는 흐름이지만, 상반기 일반 은행채 발행은 예년 대비 크지 않았다.
통상 하반기로 갈수록 은행채 발행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지만, 올해는 가계대출 증가세가 제한된 데다 은행들이 기업대출 중심으로 자산 성장을 도모하고 있어 발행 수요 자체가 예년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회사채 발행 금리가 높아지면서 기업들의 자금조달 수요가 은행권 기업대출로 일부 이동하고 있지만, 은행 간 기업대출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자금 수요가 분산돼 개별 은행별로는 대출 증가분이 크지 않을 거란 설명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은행에 기업예금이 늘어나고 있어 은행채 발행 수요가 크지 않은 상황"이라며 "SK하이닉스는 은행채 매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하반기 시중은행들의 일반 은행채 발행이나 SK하이닉스의 만기에 맞춘 은행채 발행이 크게 늘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